해리 해리스 주한미국 대사는 지난 16일 외신과 인터뷰에서 자신의 콧수염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했다. 해리스 대사는 “내 콧수염은 어떤 이유로 여기에서 일종의 상징이 됐다”고 말했다. 일본계 어머니와 주일 미군이었던 아버지 사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자란 해리스 대사. 그는 자신이 일본계 미국인 출신 배경이라는 점, 그리고 일본 총독을 연상케한 콧수염 때문에 한국에서 인종 차별적인 비난을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해리스 대사 인터뷰 이후 외신은 그를 인종차별의 피해자로 그리며 때아닌 콧수염 논란을 확산시켰다. 처음부터 일본계 미국인을 미국 대사로 임명한 것이 한국의 국가적 자존심을 건드렸다는 분석이 나왔고, CNN은 “최근 미국 대사에게 쏟아진 비난 중 가장 이상한 비난”이라며 콧수염 논란을 인종차별 공세라고 지적했다.

해리스 대사 콧수염이 언급된 것은 지난해 12월 29일 공개된 코리아 타임스와의 인터뷰가 최초인 것으로 보인다. 코리아 타임스는 일본계 미국인인 그의 콧수염이 일제강점기 조선 총독을 연상시킨다는 평가가 있다고 질문했고, 해리스 대사는 “나의 경력을 통틀어 혈통을 문제 삼은 것은 태평양사령관으로 하와이에 있던 시절 중국인들과 이번 한국인들뿐”이라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해리스 대사와 외신은 그의 콧수염이 일종의 상징처럼 되고 있고, 일본계 미국인으로서 인종차별을 받은 것이라고 했지만 그런 주장은 단편적이다 못해 본질을 가리고 있다.

‘일본 총독’과 비슷하다는 비판은 그의 콧수염과 별개로 그가 일국 대사의 권한을 넘어서 월권으로 비춘 언행이 계속되고 국가통수권자의 강한 의지가 반영된 한 정부의 정책을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그동안 해리스 대사의 발언에 화가 난 한국 시민들이 그의 콧수염을 언급할 순 있지만, 콧수염 자체 그리고 일본계 미국인 출신이라는 점을 가지고 인종차별을 했다는 것은 무리가 있다. 한 누리꾼은 “해리스의 콧수염에 관심이 없다. 일개 대사 주제에 주권국에 내정간섭을 서슴지 않는 망발에 화가 났던 것”이라고 비판했다.

▲ 지난 7일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의 KBS 인터뷰 화면.
▲ 지난 7일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의 KBS 인터뷰 화면.

당장 16일 외신과 인터뷰에서 해리스 대사는 우리 정부의 남북관계 개선 방침에 대해 “한미가 긴밀하게 협의해야 한다”며 사실상 반대 의사를 밝혔고, “제재를 촉발할 수 있는 오해를 피하려면 한미 워킹그룹을 거쳐야 한다”며 허락받지 않은 남북협력 사업에 대한 제재 가능성까지 시사했다. 일국 대사가 우리 정부의 방침에 대해 위협적인 태도를 고수하면서 오히려 외교 갈등의 당사자로 드러난 게 이번 논란의 본질이다.

해리스 대사의 주권 침해적 발언은 이번 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9월 여야 의원이 있는 자리에서 “문 대통령이 종북 좌파에 둘러싸여 있다는 보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비상식적인 발언을 했고, 국회 정보위원장을 관저로 불러 방위비 분담금과 관련해 노골적으로 ‘50억 달러’를 수차례 언급하며 압박했다.

우리 언론도 해리스 대사가 콧수염 논란을 일으켜 본질을 가리고 있다고 정면 반박하는 모습이다. 한국일보는 사설에서 “이런 비판들이 ‘일본계 미국이라는 출신 배경 때문’이라고 했다는 그의 아전인수격 발언에는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며 “해리스 대사의 거듭된 발언 논란은 그가 군 출신이라서 외교 감각이 부족하다는 이해를 일찌감치 벗어났다. ‘대북 정책은 대한민국 주권’이라면서도 이를 무시하는 발언을 이어가는 해리스 대사의 행태를 납득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서울신문 부설 서울평화연구소 임병선 사무국장은 “해리스 대사 콧수염이 아니라 군림하려는 발언이 문제”라는 제목의 글에서 “(해리스 대사는) 미국 행정부의 도장을 받으라는 식으로 마치 일제 시대 조선 총독마냥 군다”며 “일제 총독 8명이 모두 콧수염을 길렀다는데 그래서 우리 국민들은 분노하고 그의 콧수염을 조롱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콧수염 같은 지엽적인 문제를 놓고 갈등하면 본질을 가리고 있다는 지적도 내놨다.

해리스 대사가 자신의 무례함과 주권 침해적 발언에 대한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지 못한다면 콧수염을 깎아도 그에 대한 비난은 계속될 수 있다. 콧수염이 문제가 아니라 그의 태도가 문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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