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대구시엔 ‘대구판 버닝썬’이라 불린 사건이 터졌다. 대구 경찰들이 지역의 오랜 성매매 집결지 ‘자갈마당’ 업주와 조직폭력배로부터 수년간 금품·향응을 받았다는 증언이 나오면서다. 고발인들은 전·현직 경찰 10명의 명단과 내용을 진정서에 써 대구지방경찰청에 접수했다.

수사 결과는 어땠을까. 유착 혐의가 인정된 경찰은 아무도 없다. 수사대상 11명 중 3명만 피의자로 입건됐다. 이 중 2명은 증거불충분에 따른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됐다. 유일하게 기소 의견으로 송치된 1명은 유착 혐의와 무관한 건으로 송치됐다. 6개월 간의 수사 결과다.

최수호(41) 연합뉴스 대구본부 기자는 “누가 봐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든 결과”라며 “고발자들은 처벌을 감수하고 증언했다. 경찰의 ‘제 식구 감싸기’라며 지역 언론도, 주민들도 황당해했다”고 말했다. 최 기자는 지난해 4월 자갈마당 조폭 피해·경찰 유착 의혹을 처음 보도하며 지금까지 취재를 이어왔다. 대구에서 반향을 일으킨 이 보도는 지난해 대구기자협회가 주는 올해의 기자상으로 뽑혔다.

▲최수호 연합뉴스 대구본부 기자가 자갈마당 관계자와 인터뷰하는 모습. 사진=최수호 기자 제공.
▲최수호 연합뉴스 대구본부 기자가 자갈마당 관계자와 인터뷰하는 모습. 사진=최수호 기자 제공.

대구 중구 도원동에 있는 자갈마당의 역사는 110년이 됐다. 1906년 이곳에 일본식 유곽 설치가 결정된 후 1909년 공창으로 영업을 시작했다. 자갈마당 별칭은 ‘성매매 여성들이 자갈 밟는 소리 때문에 도망을 가지 못하도록 바닥에 자갈을 깔았다’는 데서 나왔다. 지난해 강력하게 폐쇄정책을 추진한 대구시는 2023년까지 이곳에 1142세대 규모 주상복합단지 5개 동을 건립하는 민간개발 사업계획을 승인했다.

철거가 일방 추진되면서 시행사, 건물주, 세입자, 그리고 마땅한 이주 대책이 없는 성매매업소 종사자 간 갈등이 터졌다. “시행사가 어떤 건물주엔 1평 당 1700만원을 주고, 어떤 건물주엔 3000만원을 줬다”는 말부터 “권리금 등으로 영업 기간 수억 원을 썼다”, “현재 남은 성매매 여성들은 이곳이 철거되면 당장 갈 곳이 없다” 등의 요구가 터져나오며 자갈마당 이주대책위원회도 만들어졌다.

갈등은 자갈마당 조폭 피해·경찰 유착 의혹 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난 계기가 됐다. 최 기자는 “만약 재개발이 이뤄지지 않았다면 이 문제는 드러나지 않을 사안이다. 업주들은 계속 영업해야 하는 사람들이고, 단속하는 경찰들과 이들 간 문제는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문제이기도 했다”며 “금전 문제에서 갈등이 불거지면서 깊숙한 문제까지 다 터진 것”이라 말했다.

조폭의 강압 행위가 먼저 드러났다. 제보를 받고 피해자들을 만난 최 기자는 자갈마당을 관리한 조직폭력배들이 금품을 갈취하거나 이들을 폭행했다는 증언을 들었다. ‘관리를 명분으로 업소 수십 곳에서 매달 30~50만 원씩 가져갔다’거나 ‘이곳에서 장사를 하려면 가입비 500만원에 매달 협회비 35만원을 어쩔 수 없이 냈다’ 등의 말이다. 이밖에 성매매 여성 인권을 유린한 행위가 있었다는 주장도 있었다. 대구지방경찰청은 6월 공갈 등 혐의로 조직폭력배를 포함한 3명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현재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

경찰과 업주, 조폭 간 유착은 곧이어 폭로됐다. 자갈마당 이주대책위는 지난 수년간 전·현직 경찰들에 준 금품 내용을 정리해 대구지방경찰청에 진정서를 냈다. 최 기자는 “경찰의 날, 명절 등 기념일에 수시로 업주들이 돈 봉투를 모아 경찰에게 줬고, 만약 직접 주지 못하면 자갈마당 인근 금은방에 맡겨놨다는 등 구체적 증언들을 확인해나갔다. 한 조폭은 동해안에 놀러갈 때 경찰이 ‘그 지역 해산물 좀 보내라’는 식의 요구를 자주 했다고 밝혔다”고 말했다.

이들은 ‘경찰이 가져온 승용차에 타 돈 봉투를 운전석에 떨어트려 줬다’는 증언도 했다. “A 경찰관이 2016년 3월 주점, 2018년 가을 호텔 룸살롱에서 고가의 향응을 접대받았다”거나 “B 경찰관은 2012년 홍삼, 자연산 전복, 가리비 등을 수시로 보내라 강요했고 한 퇴직한 경찰은 2013년 1000만 원을 수수했다”는 구체적 진술도 나왔다. 명단엔 포함되지 않지만 한 경장급 경찰도 금품을 받았다 지목됐다.

최 기자는 취재 도중 조폭의 감시를 받기도 했다. 이들이 최 기자가 취재원을 만나는 모습을 몰래 찍어 특정인과 공유하거나 동선을 미리 파악해 공유한다는 사실이 최 기자 귀에 들어왔다. 함께 취재하던 김선형 기자도 같은 일을 당했다.

최 기자가 이 보도를 위해 만난 사람은 20명은 족히 넘는다. 일방에 치우치지 않고 사실을 파악하기 위해 사건 관계인을 두루 만났다. 보도 당시만 해도 ‘불법 성매매 업주 말을 어떻게 믿느냐’는 불신도 팽배했다. 이 말은 최 기자가 경찰을 취재하면서 더 많이 들었다.

그는 “그들이 불법을 저지른 사람은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 말까지 거짓이라 단정하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내가 만나본 업주나 종사자들은 ‘깨지기 쉬운 유리같은 이’에 가까웠다”며 “사회와 오래 단절된 탓에 글을 잘 못 쓰거나 일반적인 대화가 쉽지 않은 분이 많았고, 항상 겁에 질려 있거나 어떤 생각을 갖고 있어도 화를 확 내면 마음을 바꾸거나 마음을 닫아버리는 분도 뵀다”고 말했다.

최 기자는 “편견으로 접근했다면 지난 보도도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며 “우리의 일은 귀를 열고 사람들의 말이 맞는지 확인하고, 판단이 서면 보도하면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은 계기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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