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중고 12년 교육체계를 개편하자는 주장이 종종 나온다. 그 이유가 사교육비를 줄이기 위해서라면 타당할까. 교육기간 12년을 10년으로 줄여 12년간 쓸 사교육비를 10년만 쓰자는 주장이다. 첫 취업 시기가 빨라진다는 ‘장점’까지 따라붙는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교육정책을 이렇게 단순하게 손 봐도 괜찮을까.  

매일경제는 지난 4일자 기사 “사교육비 부담 줄여 중산층 늘리려면… 초중고 12년→10년 단축”에서 사교육비가 중산층에게 짐이 되고 있다며 교육 기간을 줄이자고 제안했다. 이 신문은 “과거 ‘교육’은 모든 국민이 오를 수 있는 사다리였는데 최근 천정부지로 오르는 사교육비 때문에 중산층을 억누르는 짐이 되고 있다”며 학제체계 개편을 제안했다. 

해당 기사는 지난 1일부터 시작한 신년기획 ‘중산층이 희망이다’ 시리즈 마지막 기사로 중산층 부담을 줄이는 방법을 제시했다. 매경에 따르면 박남규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12년에 걸친 교육 시간을 초등학교 5년, 중·고등학교 5년으로 줄여서 실질적으로 10년에 마치도록 해야 한다”며 “이럴 경우 교육에 들어가는 실질적인 소비가 15% 이상 줄어들 수 있다”고 했다. 

▲ 매일경제는 4일 사교육비가 중산층에게 짐이 된다며 현행 초중고 12년을 10년으로 줄여 사교육비 부담을 15% 줄일 수 있다고 보도했다. 사진=pixabay
▲ 매일경제는 4일 사교육비가 중산층에게 짐이 된다며 현행 초중고 12년을 10년으로 줄여 사교육비 부담을 15% 줄일 수 있다고 보도했다. 사진=pixabay

 

청년들이 눈을 낮춰 빨리 취업해 돈을 벌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매경은 “이렇게 되면 본격적으로 사회 활동을 시작하는 시간 역시 2년 이상 빨라진다”며 “첫 취업이 늦어질수록 재산 형성 기회가 박탈되고, 눈높이 상승과 기회비용을 유발해 취업을 더 어렵게 한다는 악순환이 생긴다”고 보도했다. 

대선을 앞둔 지난 2017년 2월 안철수 전 바른미래당 대표도 비슷한 제안을 했다. 안 전 대표는 당시 만 3세부터 유치원 2년·초등학교 5년·중학교 5년으로 개편하자며 “대학입시로 왜곡된 보통교육을 정상화하고 사교육을 혁명적으로 줄이기 위해서”라고 했다. 

만 15세가 되면 보통교육을 마치고 직업학교에 갔다가 일찍 취업하거나 대학 진학을 택하도록 하겠다는 안이었다. 매경의 제안과 조금 차이가 있지만 학업기간, 즉 사교육비가 발생하는 기간을 줄이고 청년을 빨리 취업시장에 내놓겠다는 아이디어는 비슷하다. 

안 전 대표가 당시 내놓은 학제개편안이 큰 주목을 받지 못한 이유부터 살펴보자. 4차산업혁명, 창의인재육성, 입시로 왜곡된 교육 바로잡기 등 학제개편에 필요성을 말하긴 쉽다. 현 6-3-3 학제는 1951년 미국의 영향을 받아 만들었으니 70여년이 흐른 현 한국사회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이것이 곧 초등5년·중등5년 학제로 개편해야 하는 이유가 될 순 없다. 

현실적으로 학제개편은 전문가가 중심이 돼 탑다운으로 정할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학습자, 교육자, 교육당국, 시민사회 등 다양한 주체의 의견을 모아야 한다. 이를 위해 정치인이 ‘왜 그 안을 선택했는지’ 이유를 상세히 밝혀야 하고 언론 역시 마찬가지다. 안 전 대표는 당시 왜 현 3년인 중학교 과정을 5년으로 개편해야 하는지 그 이유조차 말하지 않았고 매경 역시 그랬다. 

현행 초중등교육법을 보면 각 학교의 교육목적을 규정했는데 초등학교는 국민생활에 필요한 기초교육, 중학교 교육은 중등교육, 고등학교 교육은 중등교육 및 기초 전문교육을 목적으로 한다. 학제는 교육의 총량을 배분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각 교육과정과 특성과 연결해 연장과 축소의 필요성을 설득해야 한다. 또 민주시민으로 교육한다는 목표에 실제 교육내용이 어울리는지 등을 검토할 필요도 있다. 

▲ 매일경제 4일 신년 기획기사
▲ 매일경제 4일 '중산층이 희망이다' 신년 기획기사

 

다른 나라의 학제를 참고할 필요도 있다. 한국인의 해외 유학, 외국인의 한국 유학이 빈번해질 뿐 아니라 북한이탈주민을 포용하는 문제, 길게는 한반도 통일까지 염두에 둬야 한다는 연구자들이 있다. 또 많은 교육이슈가 고등학교와 대학의 연결지점에서 발생하는데 이런 고민을 생략한 학제개편이 얼마나 무게감을 가질지도 의문이다. 그 외에도 학제개편에 다양한 논점들이 있다. 

해당 제안이 사교육비 감소에 효과가 없을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구본창 정책국장은 6일 미디어오늘에 “성공의 조건 1, 2위가 재력과 인맥”이라며 “재력은 차치하고, 특권고교와 대학이 서열화돼 있는 상황에서 대학 서열효과와 인맥효과를 위해 사교육비라는 군비경쟁을 하는 상황”이라고 사교육 과열현상을 진단했다. 

구 국장은 “이 문제에 대한 직접 해결책 없이 초중고 학제를 12년에서 10년으로 줄인다고 사교육비가 줄어든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명문대 입학을 위해 재수·삼수·N수가 거듭되는 현실”이라며 “대입을 정점으로 사교육에 참여하는 기간은 줄지 모르지만 단기간에 많은 교육과정 내용을 배워야 한다는 부담에 사교육비용을 늘릴 가능성도 존재한다”고 우려했다. 

같은 논리라면 학제를 10년이 아니라 더 줄이고 청년들을 더 일찍 노동시장으로 내보내면 학부모들의 부담은 더 줄어든다. 이때 한국사회는 일찍 노동시장에 나온 청년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을까. 과연 교육기간이 짧아지면 그만큼 눈이 낮아져 질 낮은 일자리에도 청년들이 몰릴까. 만약 그렇게 되더라도 그 모습이 언론이 제시할 만한 한국사회의 미래인지도 의문이다. 

※ 참고문헌
김희규, 미래의 학교교육을 위한 학제 개편 방향 탐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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