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인사위원회 1~2심이 갑질과 음주사고, 성희롱 행위 등을 징계 사유로 모스크바 특파원을 해고 결정했지만 양승동 사장이 요청해 열린 3심에서 정직 6개월 감경 결정이 나오자 피해자가 법적 대응을 준비 중이다.

피해자는 KBS 영상취재부 오디오맨으로 근무하다 모스크바 현지 촬영 담당 스태프 채용 공모에 응모해 지난해부터 모스크바에서 근무해왔던 계약직 김아무개 씨다. 김씨는 모스크바 특파원 이아무개 기자로부터 계속 폭언과 욕설을 듣고, 성희롱을 당했다며 KBS 감사실에 신고했다.

김씨에 따르면 이 기자는 지난해 5월8일 노래방에서 김씨 등에게 수 시간 동안 폭언과 욕설을 하고, 당일 저녁 모스크바 대사 관저 초청 행사에서도 음주 사고를 일으켰다. 이 기자는 노래방에서 음주 후 차량 기사와 현지 코디네이터를 대동해 당시 우윤근 러시아 대사 관저로 이동했다는 것. 우 대사가 한국으로 가게 돼 ‘귀임식’을 열어 현지 특파원들을 초청하는 자리였다. 이 자리엔 대사와 영사, 참사관, 주러문화원장, KBS 이 기자, 다른 매체 특파원 등이 참석했다.

행사는 저녁 7~8시 사이 대사 관저에서 열렸는데 음주상태에서 이 기자는 소란을 피웠다는 것이다. 우윤근 전 대사는 3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행사 말미 (이 기자가) 굳이 인사차 오겠다고 해서 봤다. 술에 취해 있어서 대화가 안될 정도였고, 대사관 직원이 음주상태를 지적하자 이를 가지고 실랑이가 벌어져 행사를 조기에 마쳤다. 보기에 따라서 다를 수 있는데 적절치 못한 행동이었던 것은 맞는다”라고 말했다.

이 기자는 지난해 4월 북러 정상회담 취재차 블라디보스토크 출장길에서도 음주 상태에서 갑질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기자는 몸이 좋지 않다고 호소한 김씨를 노래방에서 새벽시간 호출했다. 그 자리에서 이 기자는 김씨에게 해고를 통보했다. 자신의 말을 듣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김씨는 욕설을 포함한 갑질을 더 이상 견딜 수 없다며 다음날 짐을 쌌다. 하지만 이씨는 아무런 일이 없었다는 듯이 김씨에게 촬영을 지시했다. 이 기자는 김씨에게 ‘말을 듣지 않으니 기를 죽이려고 그런 것이다. 이해를 해달라’고 했다고 한다.

이 기자는 갑질 사건이 있었던 다음날에도 촬영을 마치고 혼자 노래방에 갔다. 이 기자는 뉴스 촬영 및 보도를 위해 임대했던 차량 운전기사에게 노래방에 데려다 달라고 한 것뿐 아니라 자신이 노래방에서 나올 때까지 차량 대기를 지시했다. 차량 기사는 새벽 3~4시경까지 이 기자를 기다려야 했다.

KBS는 감사실 조사가 시작되기 전 이 기자의 행위가 문제가 심각하다고 판단해 자체 조사를 벌였는데 이 과정에서 이 기자는 김씨에게 ‘모두 함께 회식를 했다’고 증언하라고 강요했다. 현지 차량 기사의 진술 내용과 이 기자가 김씨에게 증언을 강요한 내용은 녹취돼 자료로 제출됐다.

▲ KBS 본관 전경.
▲ KBS 본관 전경.

KBS성평등센터가 인정한 이 기자의 성희롱 및 성폭력 행위도 최소 6건에 달했다. KBS성평등센터는 성평등위원회를 열어 KBS모스크바 지국 소속 김씨와 현지 코디네이터 러시아인 2명이 이 기자로부터 성희롱과 성폭력을 당했다는 주장을 심의해 사실로 인정했다.

성평등위원회 심의 결과 통보 문건에 따르면 이 기자는 2019년 1월 노래방에서 현지 코디네이터에게 “내가 러시아 여자와 사귀는 걸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봤다. 2월엔 노래방에서 코디네이터에게 노래를 강요하고 어깨를 쓰다듬었다. 4월 두 차례에 걸쳐 여성 유흥종사자가 나오는 노래방에 김씨를 데려갔다. 그리고 5월 8일 현지 코디네이터에게 불필요한 신체적 접촉을 했다. 김씨에게 춤을 따라 추라고 강요하고 옷을 벗으라고 지시했다. 노래방에 있었던 4시간 동안 폭언과 욕설한 것도 사실로 인정했다.

성평등위원회는 “인정 사실들은 모두 점심 식사, 저녁 회식 자리, 퇴근 후 술자리, 출장 중에 발생한 일들로 피해자들이 지국장(이아무개 기자)의 제안을 쉽게 거절하기 어려운 위치에 있었던 점 등을 고려할 때 업무 연관성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여성 유흥종사자가 있는 노래방에 김씨를 데려간 것도 “‘의지와 상관없이 여자를 착석시켜 수치스런 기분이 들었다’고 김씨가 진술하는 등 피해자가 노래방에서 성적 수치심과 모멸감을 받은 것이 충분히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성평등위원회는 “위계와 연관된 강압적 분위기 아래 가해 행위가 이루어진 점 등을 종합하여 볼 때 성적 수치심과 혐오감을 충분히 느낄 행동으로 판단된다”며 성희롱 및 성폭력 여부에 대해 사실로 인정한다고 결론 내렸다.

KBS는 감사실 조사 결과와 성평등위원회 심의 결과를 바탕으로 인사위원회를 열어 1~2심에서 이 기자에게 모두 해고를 결정했다. 그런데 2심 결정이 나오고 두달 뒤 이례적으로 3심이 열렸고, 이 자리에서 정직 6개월로 감경됐다. 3심이 열린 건 양승동 사장의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

피해자 김씨는 이 기자의 징계 결과를 제대로 통보조차 받지 못했다고 했다. 김씨는 지난해 9월 KBS 감사실에 문자로 연락해 문자로 진행상황을 들었다고 했다. 이후 김씨는 KBS 성평등센터로부터 12월10일 3심이 열리게 됐다며 피해자 의견서를 한번 더 작성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후 김씨는 12월20일 성평등센터로부터 가해자가 정직 6개월로 처리됐다는 것을 문자로 전달받았다.

김씨는 “3차 인사위에서 뒤집을만한 내용이 없었는데도 정직 6개월의 결과가 왜 나왔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며 “결국 제 식구 감싸기라고 본다. 변호사와 어떻게 대응할지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과거 이 기자는 여러 차례 양승동 사장과 자신이 친하다고 말했다”며 “이번 감경도 사장과 친분이 작용한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주장했다. KBS 관계자는 이 기자와 양 사장의 친분에 대해 “친분 관계가 있을 사이가 아니다. 사적으로 이 기자와 양 사장이 대화한 것은 전혀 없다”고 했다.

김씨는 갑질과 성희롱 피해 부분에는 이 기자를 상대로 민사 소송을 진행하고, 3심이 열려 정직 6개월로 감경된 부분에는 KBS를 상대로 절차상 문제가 있다며 1~2심 결정인 해고 징계 확정을 확인하는 소송을 준비 중이다.

KBS는 3심 감경 논란이 벌어질 당시 “징계사유는 소문과 상이한 부분이 있고 심의과정에서의 판단은 인사위원들이 조사결과와 관련 규정에 따라 합리적으로 판단했다”며 “특별인사위원회는 KBS구성원이 아닌 외부인사 2인도 참가해 운영되고 있어 판단에 신중을 기하고 동 징계 건은 이견이나 기타 의견 없이 만장일치로 결정된 사안임을 알려드린다”고 밝혔다.

KBS 관계자는 “12월 중순 징계가 확정됐지만 성희롱 사안이 포함돼 있어 피해자에게 어떤 내용과 형식으로 통보할지 등에 대해 신중한 검토와 고려가 필요했다”며 “가해 당사자의 사과는 2차 피해를 불러올 우려가 있어 KBS는 피해자가 사과 받을 의사가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 조만간 피해자에게 통보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기자는 징계 사유와 김씨가 주장한 피해 사실에 입장을 묻는 미디어오늘 요청에 답을 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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