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광고가 성차별 인식을 무분별하게 재생산한다는 비판이 나오면서 광고 심의 사각지대가 도마에 올랐다. 특히 유튜브 같은 신생 플랫폼은 ‘무법지대’라 불릴 정도로 규제가 헐거워 선정적인 광고도 쉽게 노출되고 있다. 플랫폼 광고 규제장치를 마련하고 기존 지침도 구체화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온다.

서울YWCA는 18일 오후 서울 명동 YWCA 다목적실에서 대중매체 양성평등 내용 분석 토론회 ‘그 광고가 왜 성차별적이냐구요’를 열고 광고 속 성차별 실태를 토론했다. 황경희 서울YWCA 간사가 현황을 분석했고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 부교수가 해외 규제 사례를 소개했다. 박정화 인디CF 대표, 우유니게(필명) 페미니스트 디자이너, 편도준 한국광고자율심의기구 실장이 토론에 참여했다.

한국 광고는 전통적 성 역할 고정관념을 답습하고 있다. TV광고 863편(4·9월)과 유튜브 광고 524편(10월)을 모니터링한 서울YWCA는 “여전히 광고 속에서 여성은 육아, 가사를 담당하고 남성에게 뭔가를 사달라고 요구하는 사람으로, 남성은 기술에 관심이 많고 돈을 벌어오는 사람으로 그려져 이분법적인 젠더 재현이 반복된다”며 “온라인 곳곳에서 쏟아지는 다양한 광고의 성차별은 더더욱 심각하다”고 밝혔다.
성 역할 고정관념은 TV광고에서 두드러진다. 8월24일~9월24일 간 방영된 TV광고 482편의 모니터링 결과 아이나 타인을 돌보거나 가사노동을 하는 등장인물은 17명 중 16명(94%)이 여성이었다. 또 여성은 전체 346명 중 103명이 ‘상품을 소비하는 사람’으로 나왔고, 남성은 397명 중 91명이 ‘상품을 설명하는 사람’으로 가장 많이 등장했다. ‘일해서 돈을 버는 사람’ 역할엔 여성이 39명, 남성이 80명으로 집계됐다.

▲ 서울YWCA 발간 대중매체 양성평등 내용 분석 토론회 ‘그 광고가 왜 성차별적이냐구요’ 자료집 중 성상품화 및 성차별 사례로 지적된 유튜브 광고.
▲ 서울YWCA 발간 대중매체 양성평등 내용 분석 토론회 ‘그 광고가 왜 성차별적이냐구요’ 자료집 중 성상품화 및 성차별 사례로 지적된 유튜브 광고.

 

유튜브 광고 경우 여성의 몸을 성적으로 부각하는 선정성이 가장 심각했다. 서울YWCA가 뽑은 유튜브 성차별 광고 32건 중 11건이 성적대상화 유형이었고 모두 게임·어플리케이션 광고였다. ‘팬덤시티:극실사 미녀 게임’(게임제작사 nxuinc) 광고엔 여성의 가슴 위에 음식을 올려놓고 이를 젓가락으로 가리키는 장면이 나온다. 게임 ‘염왕이 뿔났다’(x.d.글로벌) 광고의 여성 캐릭터들은 몸에 딱 붙는 옷을 입고 가슴과 엉덩이를 부각하는 포즈를 취하거나 신체 대부분이 노출되는 비키니를 입고 있다.

노골적인 성적대상화 광고 중엔 12세 이상 이용가 게임도 있다. 게임 보스레이브(think fly)는 전투 게임이지만 전투와 무관하게 노출이 심한 의상을 입은 여성이 광고에 나온다. 여성 캐릭터들은 엉덩이를 드러나는 의상을 착용하거나 침대 위에 속옷만 입은 채 옆으로 누워있다.

김수아 교수는 “문화지체 현상처럼, 광고가 변화하는 사회, 성역할 고정관념, 성차별 인식 등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비판은 오래 제기됐다”며 “광고주나 제작자 입장에서 여자에게 강인함, 의지력 등의 남성성을 갖게 하는 것이 남자에게 부드러움, 친절함 같은 여성성을 갖게 하는 것보다 공감을 얻기 어렵다는 편견이 작용한 탓으로 여성을 남성과 동등하게 그리는 것에 거부감이 있는 것”이라 분석했다.

유튜브 광고 선정성 심각, 규제는 무법지대

한국 광고의 지체 속도는 해외보다 느리다. 김 교수는 덴마크, 프랑스, 노르웨이, 영국 등 세부 지침으로 성차별 광고를 규제하는 사례를 소개했다. 덴마크 경우 △젠더를 비하적 의미로 재현하거나 △누드 혹은 에로티시즘이 관련된 젠더를 비하하고, △성 역할이 사회·경제·문화적으로 다른 성(젠더)에 종속됐다거나 △평등하게 수행이 가능한 업무에 한 성별이 적절하지 않다고 그리는 것을 금지한다.

지난 7월 아동 상품화로 논란이 된 배스킨라빈스 광고는 영국에선 규제 대상이다. 영국은 우선 어린이·청소년으로 하여금 성 역할에 대한 상상력을 제한시키는 이미지를 규제한다. 나아가 △아동을 성적 이미지로 활용하는 문제 △소년과 소녀의 특성으로 무언가를 제시하는 광고 △모델이 18세 이하로 보일 경우(실제 나이 불문) 그가 성적 방식으로 묘사되는 문제 등에 주의를 준다.

한국도 심의 기준은 있으나 일반론적이고 사전 규제와 사후 처벌 수준도 약한 편이다. 한국광고자율심의기구 규정, 방송광고심의규정,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 온라인광고심의규정 등은 성별, 인종, 종교, 계층 등을 차별해선 안된다는 조항을 두고 있으나 가이드라인 수준의 지침은 없다.

지상파, 종합편성채널 등 방송법이 적용되는 방송사는 사전에 광고를 자율 심의하고 문제가 발생하면 방송통신위원회의 법적 심의를 받는다. 사전 심의는 방송사 자체 심의팀을 통하거나 방송법이 정한 심의 기관 3군데에 위탁할 수 있다. 배스킨라빈스 경우는 방송사의 자체 심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결과다.

▲ 서울YWCA는 12월18일 오후 서울 명동 YWCA 다목적실에서 대중매체 양성평등 내용 분석 토론회 ‘그 광고가 왜 성차별적이냐구요’를 열었다. 사진=손가영 기자
▲ 서울YWCA는 12월18일 오후 서울 명동 YWCA 다목적실에서 대중매체 양성평등 내용 분석 토론회 ‘그 광고가 왜 성차별적이냐구요’를 열었다. 사진=손가영 기자
▲ 서울YWCA는 12월18일 오후 서울 명동 YWCA 다목적실에서 대중매체 양성평등 내용 분석 토론회 ‘그 광고가 왜 성차별적이냐구요’를 열었다. 사진=손가영 기자
▲ 서울YWCA는 12월18일 오후 서울 명동 YWCA 다목적실에서 대중매체 양성평등 내용 분석 토론회 ‘그 광고가 왜 성차별적이냐구요’를 열었다. 사진=손가영 기자

 

편도준 실장은 “방송사 내 심의담당자가 차별적 요소가 많다고 보고한다. 상사는 ‘그게 얼마짜리인지 아냐’고 질타한다. 거기서 담당자가 ‘죽어도 안된다’ 해도 다른 경쟁사에서는 문제 광고가 나간다. 실제로 들은 이야기다. 구조적 한계가 있다”며 “정부의 사후 규제가 제대로 작동될 필요도 있다. 솜방망이로 봐주지 말고 법에 있는 대로 판단하고 제재를 내릴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더 큰 문제는 유튜브다. 10대 경우 1인당 유튜브 시청에 월 평균 41시간을 할애하고, 동영상 광고 시장은 2018~2019년 새 41.4% 성장했다. 유튜브는 어린 아이도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영향력도 점점 높아지지만 규제는 헐겁다. 방송사는 전파라는 공공재를 사용하는 기관으로서 방송법의 규제를 받는 반면 유튜브 광고를 규제할 법적 근거는 마련되지 않았다.

편 실장은 “한국광고자율심의기구가 ‘방송 불가’라 심의한 광고가 유튜브에서는 버젓이 나온다. 업체들이 온라인 용을 따로 만드는 사례가 적지 않다. 유튜브가 무법지대라 불리는 이유는 지금 이 문제에 아무도 손을 못대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 유관 기구들이 하루 빨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박정화 인디CF 대표는 소비자의 행동이 기업에 영향을 줄 것이라 지적했다. 박 대표는 “업계에서 광고주는 광고 ‘주님’이라 불릴 정도로 영향력이 막강하다. 라면 광고에서 출연자가 라면을 몇 번 먹는지까지 결정할 정도로, 광고엔 광고주 세계관이 그대로 반영된다”며 “광고주 만족도를 위해 모든 광고 제작과 집행이 진행되며, 광고주의 궁극적 목적은 매출 증대다. 사회적 기대를 강제하기 어렵다. 문제 광고로 돈을 못 벌게 하면 된다. 소비는 자본주의의 투표인 셈이니 대중의 직접 행동이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디자이너 우유니게씨는 “등장인물의 성별을 바꿔 본 후 자연스럽다는 판단이 들면 통과시킨다”는 스스로의 규칙을 소개했다. 여성 출연자 얼굴에 남성 출연자 얼굴만 대입해보면 자신의 창작물이 성차별적인지 여부를 쉽게 알 수 있단 얘기다. 그는 또 여성을 묘사할 때 “다중이 있을 때 성비가 남성에 치우치지 않는지, 많은 여성들이 공감할 수 있는 모습인지, 사회적 미용 기준에 치우치진 않았는지, 가슴을 드러내거나 이상한 포즈로 몸을 꺾고 있진 않은지 등을 검토한다”고 밝히며 창작자들의 의지를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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