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는 2009년 2월 ‘광우병 의심 LA갈비 시간차 판매’란 제목의 기사에서 일반인 A씨가  ‘미국산 쇠고기를 폐기하지 않고 보관하고 있다가 호주산으로 속였다’는 취지로 보도했다. A씨는 광우병이 우려되는 미국산 쇠고기를 유통 시킨 혐의 등으로 6개월간 구속됐다. 그는 재판에서 무죄를 받았다. 2016년 서울고법은 한국일보에게 600만원 배상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언론은 혐의사실 보도에서 진실성을 뒷받침할 충분한 취재를 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중앙일보는 2009년 6월 “아레사 빈슨의 사인이 인간광우병(vCJD)이 아니다”라며 2008년 MBC PD수첩 ‘광우병’편 방송이 허위라는 검찰 주장을 일방 보도했다. 크로스체크도, PD수첩 제작진 반론도 없었다. PD수첩 제작진이 소송에 나섰고, 서울고법은 중앙일보에 4000만원 배상 판결을 내렸다. 당시 PD수첩 CP였던 조능희PD는 “PD수첩과 관련해 가장 악의적인 보도였다”고 했다. 재판부는 “해당 보도는 수사기관의 제보에서 비롯된 허위의 공표라는 점에서, 공소 제기 전 피의사실을 공표하는 폐해를 모두 가지는 전형적 사안”이라고 판시했다. 

A씨는 자신의 피의사실을 유포했던 부장검사 2명을 2014년 피의사실공표죄로 고소했다. 결론은 모두 짐작하는 대로다. 당시 검찰은 세 차례 A씨를 기소하면서 ‘미국산 쇠고기를 호주산으로 둔갑시켰다’는 내용은 빼고, 전혀 관련 없는 탈세 혐의를 추가했다. PD수첩 또한 당시 중앙일보에게 허위정보를 준 ‘검찰 관계자’를 처벌하지 못했다. 누군지도 알 수 없어서다. 두 사건 공통점은 ‘실시간 수사 중계’로 검찰과 언론이 빚어낸 피의사실 보도가 ‘위험한 칼날’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지금도 ‘검찰발’ 피의사실 보도는 오랜 관행으로 여전히 언론계에 남아있다. 18일 ‘피의사실공표와 언론의 역할’을 주제로 한 언론인권센터 주최 언론인권포럼에서 김하정 언론인권센터 사무차장은 “피의사실공표죄로 처벌된 사례가 최근 10년간 없다. 검찰이 수사·기소권을 모두 가진 구조적 한계 때문”이라고 지적한 뒤 “전부터 형사재판이 불공정해지고, 무죄 추정 원칙이 침해되는 이유로 비판이 많았지만 종합적인 통제방안은 마련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방송 법조 뉴스의 품질연구’(2016년 고려대, 박성호·윤영민) 논문에 따르면 2000년~2014년 지상파3사 검찰 뉴스 710건의 보도 시점은 ‘기소 이전 수사단계’가 89.6%, ‘기소 이후의 재판 단계’는 10.4%에 불과했다. 한국 사회는 피의사실 보도로 가득한 셈이다.

▲ 검찰. ⓒ 연합뉴스
▲ 검찰. ⓒ 연합뉴스

김하정 사무차장은 “수사단계는 단지 의혹을 제기하고 풀어나가는 과정일 뿐, 사실관계를 확정할 수 없다”며 “허위정보가 난무하고 그 파급력이 커진 오늘날 미디어환경에서 사실관계가 드러나는 재판 중심보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언론이 단순히 검찰보도자료 받아쓰면 수사기관의 도구로 전락하고 만다. 언론이 보도 행위로 인권침해 가해자가 되는 위험을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언론위원장 출신의 김준현 변호사는 “피의사실공표죄는 한국사회의 특수성을 반영해 검찰견제를 위한 수단으로서 필요하다. 피의자의 방어권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며 존치 입장을 밝혔다. 김준현 변호사는 “피의사실공표는 혐의를 뒷받침할 증거와 참고인 진술을 공판 전 대중에게 노출 시켜 사실상 공판중심주의를 형해화시키며 법관의 판단에 영향을 준다. 국민참여재판의 경우 배심원에도 영향을 준다”고 우려했다.

김준현 변호사는 이달부터 피의사실공표를 금지한 법무부 훈령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에 “훈령으로 정당화 근거를 두는 것은 법체계상 문제가 있다”며 “별도 법안으로 정비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훈령 규정에 명시된) 예외적 공개사유가 위법성 조각사유인 정당행위의 요건에 근접해 있다, (피의사실 공개 근거가 되는) 국민의 알 권리나 중요사건이라는 규정은 포괄적이며 자의적”이라 현재 훈령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법률로 피의사실공표의 절차와 방식, 공표대상 피의사실을 규정하거나 형법상 피의사실공표죄에 위법성조각사유를 신설하고 공개금지 규정 등으로 구체적 기준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전진한 알권리연구소장은 “과거 군 검찰이 외부압력 없이 수사하려고 시민단체에 피의사실을 제보하기도 했다. 영화 ‘1987’에서 검사(하정우)가 기자를 위해 수사자료를 놓고 가는 것도 부작의에 의한 피의사실공표”라고 설명하며 “우리는 피의사실공표냐, 권력 감시냐를 선택해야 할 때가 있다”고 지적했다. 피의사실공표가 그 자체로 모두 죄가 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는 “권력자들이 피의사실공표 금지를 이용해 수사 못 하게 방해할 수 있다”며 종합적 고민이 필요하다고 지적하는 한편 “검찰이 아닌 경찰에 의한 피의사실공표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피의사실 보도 자체를 문제 삼기보다는 △피의사실 보도의 동기 △피의사실 보도의 크로스체크 여부 △피의사실 보도에서 전지적 검찰 시점에 경각심을 갖는 게 중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전진한 소장은 “기자들이 앞으로는 어떤 방식으로 취재했는지 과정을 공개해야 한다. 일부분 발췌가 본인들 전문성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방법에 문제 제기가 시작됐다”고 지적했다.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피의자가 누구인지는 국민의 알 권리 대상이 아니다. 다만 피의자가 공인인 경우는 다르다”며 “언론이 강조할 국민 알 권리는 수사 중 범죄정보 중계가 아니라 수사기관의 수사절차가 제대로 진행되는지, 수사기관이 직무 유기하거나 권력 남용은 아닌지 여부”라고 지적했다. 이승선 교수는 “조금 늦더라도 균형 있게 전달하는 것이 진정한 국민 알 권리를 위하는 길이다. 재판 중심보도로 언론이 달라져야 한다. 국민도 느린 뉴스를 수용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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