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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1987’은 현실과 얼마나 닮았을까
영화 ‘1987’은 현실과 얼마나 닮았을까
자유언론실천재단, 목숨 걸고 기사 썼던 언론인 14명의 취재기 출간

박래부 전 한국일보 기자는 1979년 봄 서울시 교육위원회(지금의 서울시교육청)가 구로공단 주변 7개 야학을 비인가 강습소라는 이유로 폐쇄해 700여 근로 청소년 대부분이 졸지에 배움터를 잃었다는 기사를 썼다. 기사는 몇 번의 고비를 넘긴 뒤 5월23일자 사회면 톱으로 나갔다. 경쟁지였던 조선일보 이원섭 선배 기자도 “오늘 좋은 기사 썼데”라고 칭찬했다. 

그러나 파장은 컸다. 그 기사 탓에 편집국장이 중앙정보부에 끌려갔다. 박래부 기자에게도 긴 하루였다. 교육청 출입하는 선배기자가 홍보기사를 써주기로 하고 겨우 무마됐다. 

국장이 남산에 끌려갔는데도 한국일보 논설실은 견습기자의 기사를 토대로 ‘향학에의 가냘픈 촛불 – 불우 근로청소년의 야학 길 넓혀주자’라는 사설을 썼다. 

박래부 기자가 이 기사를 쓴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박 기자는 입사 전 대학생 때 당시 구로공단에서 제일 컸던 백합야학(백합성경구락부)에서 야학교사로 일했다. 백합은 학생 수 300명에 달하는 대규모였다. 위기가 닥치자 후배 교사들은 선배 박 기자에 공단 야학의 집단 폐쇄를 알렸다.  

야학 폐쇄는 형식상 서울시 교육위원회가 나섰지만 실제론 중앙정보부가 모두 지휘했다. 중정은 공단 야학이 순진한 노동자를 불온한 대학생들이 의식화하는 통로라고 여겼다. 

지금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닌 기사인데 당시엔 목숨을 걸고 써야 했다. 실제 박 기자는 시경캡에게 기사를 넘기면서 “제 목숨을 걸고 넘기는 기삽니다”라고 했단다. 그런 기사를 쓰는 기자는 행복하다. 우리는 이런 기사를 쓴 적이 있던가. 

자유언론실천재단이 박 기자 등 14명의 언론인들에게 ‘내 인생의 취재기’를 모아 출간했다. 책 이름은 ‘기자와 PD, 세상을 기록하다’. 

▲ 내 인생의 취재기 / 강기석 외 13인 지음 / 자유언론실천재단 펴냄
▲ 내 인생의 취재기 / 강기석 외 13인 지음 / 자유언론실천재단 펴냄

조병래 전 동아일보 기자는 거리에서 겪은 6월 항쟁의 기억을 담아 ‘영화 속 1987, 현실 속 1987’이란 글을 실었다. 조 기자는 영화 ‘1987’에 등장하는 동아일보 윤상삼 선배기자와 여러 해 현장에서 같이 뛰어다녔다. 조 기자도 1979년 부마항쟁 때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속돼 박정희가 죽은 뒤 석방돼 학교에 복학했다. 조 기자는 1983년 동아일보에 입사했다. 

87년 6월 항쟁은 이미 1986년부터 준비됐다. 1986년엔 부천서 성고문, 상지대 유인물 조작, 건국대 애학투련 등 굵직한 사건이 잇따라 터졌다. 

1987년 1월16일 새벽 안상수 검사가 경찰 부검의였던 황적준 박사를 대동하고 한양대병원에서 박종철 부검 결과를 직접 브리핑했다. 조간신문 기자들은 이를 회사에 보고했지만 보도되지 않았다. 전두환 정권이 이 사건을 3단 이상으로 싣지 말라는 보도지침을 내린 뒤였다. 

그러나 동아일보는 ‘대학생 경찰조사 받다 사망’이란 제목으로 사회면 사이드에 실었다. 조 기자는 이 기사를 “동아일보가 일제강점기 손기정 일장기 말소 사건과 함께 가장 자랑하는 기사”라고 했다. 

▲ 영화 ‘1987’ 스틸컷
▲ 영화 ‘1987’ 스틸컷

안종주 전 한겨레신문 기자는 1988년 원진레이온 직업병을 보도했다. 한겨레 최초의 특종보도였다. 원진레이온 사건은 1000명 가까운 산재노동자와 수 백명의 사망자를 내고도 30년이 지난 지금도 대한민국 최대 직업병이다.

안 기자의 원진레이온 특종도 개인 이력과 연결돼 있다. 안 기자는 한겨레 오기 직전 서울신문에서 환경 담당기자를 했다. 1987년엔 서울대 보건대학원 환경보건학과에 입학해 산업보건을 체계적으로 배우고 있었다. 안 기자는 대학원 수업에서 레이온(인조견)이 가짜 비단이며 그것을 만드는 과정에 이황화탄소 중독이 이미 유럽에선 1940·50년대 대표적 직업병으로 대두된 사실을 배웠다. 

안 기자는 1988년 7월 공해문제연구소의 전화를 받고 원진레이온에서 일하다 직업병으로 쓰러진 노동자 강희수, 정근복, 서용선씨를 만났다. 기사는 1988년 7월22일자 한겨레 사회면 머리에 실렸지만 대다수 언론은 침묵했다. 오히려 노동부가 일주일 뒤 원진레이온에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했다. 그제서야 다른 언론이 따라왔다. 물론 원진레이온 최고 경영진들이 합참의장과 공군 소장, 육군 소장 등 군 장성 출신들이었고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경영하는 회사라는 사실은 모두 뺀채. 

안 기자는 “이후에도 한국타이어, 삼성 백혈병 등 안타까운 대형 직업병 사건이 지금까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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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2019-12-21 12:03:05
"안종주 전 한겨레신문 기자는 1988년 원진레이온 직업병을 보도했다. 한겨레 최초의 특종보도였다. 원진레이온 사건은 1000명 가까운 산재노동자와 수 백명의 사망자를 내고도 30년이 지난 지금도 대한민국 최대 직업병이다." <<< 과거 한겨레는 이렇게 노동자의 고통을 알리고 파헤치는 좋은 신문이었다. 지금도 진보신문 중에는 제일 낫지만, 정치/사회분야는 ~관계자/검찰발 신문이 돼버렸다. 경향보다는 낫지만, 현재 진보신문은 중립이라면서 다 취재하는 듯하면서, 기득권과 그들의 과도한 권력남용 취재는 거의 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