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병원과 경북대병원에 이어 강원대병원 노사가 간접고용 노동자를 직접고용해 정규직 전환키로 합의한 가운데, 공공의료기관의 직접고용 전환 흐름이 노동에 ‘급’을 나누려는 인식에 제동을 걸었다는 지적이 나왔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는 26일 ‘서울대병원·경북대병원 간접고용 비정규직 직접고용 정규직화의 의미와 교훈’을 주제로 서울 정동 민주노총 교육원에서 토론회를 열었다. 국립대병원 노동자와 연구자들은 서울대병원과 경북대병원 노동자들이 직접고용 합의에 이른 과정을 돌아보고 그 의미를 짚었다.

서울대병원 노사는 지난 9월 파견‧용역 비정규직의 직접고용 정규직 전환에 합의했다. 병원은 당초 자회사 설립을 통한 정규직화를 내놓았으나, 원·하청 노동자가 한목소리로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였다. 이에 병원은 공공기관으론 처음으로 자회사안을 철회했다. 이에 따라 환경미화·소아급식·경비·운전·주차·승강기 안내 노동자가 서울대병원 소속으로 같은 임금체계와 복리후생을 적용 받는다. 이어 경북대병원이 지난달 22일, 강원대병원도 지난 22일 같은 방식의 정규직 전환에 합의했다.

이상윤 연구공동체 건강과대안 책임연구위원은 이날 토론문에서 공공의료기관부터 비정규직을 줄여야 하는 이유를 “언젠가부터 사회적 논의 장에서 횡행하는 필수-부수 업무, 본질-부차 노동을 나눠 접근하는 경향에 제동을 걸었다”고 밝혔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는 26일 ‘서울대병원·경북대병원 간접고용 비정규직 직접고용 정규직화의 의미와 교훈’을 주제로 서울 정동 민주노총 교육원에서 토론회를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는 26일 ‘서울대병원·경북대병원 간접고용 비정규직 직접고용 정규직화의 의미와 교훈’을 주제로 서울 정동 민주노총 교육원에서 토론회를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병원 대부분이 진료보조와 환자급식, 청소, 시설관리, 경비, 주차관리 등을 간접고용한다. 90년대 중반까지 이들은 정규직이었지만 IMF 구제금융 이후 비정규직이 늘고 병원 간 경쟁이 심해지면서 외주화됐다. 병원은 청소와 주차 등 환자 진료와 ‘직접 관련’이 낮다고 본 부문부터 차례로 외주를 줘, 최근에는 진료보조와 환자 급식까지 간접고용 대상이 됐다.

병원에선 모든 노동이 환자 치료와 안전을 위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 업무 하나 하나가 환자 안전과 의료서비스 질에 영향을 준다. 이상윤 위원은 “의료와 간호는 환자의 질병을 고치는 다양한 돌봄노동의 총합”이라며 “(병원이 외주화한) 진료와 간호 보조인력도 넓은 의미에서 간호 관련 인력이고, 이들의 규모와 질은 간호의 질과 연동된다”고 했다.

급식을 외주화하면 질이 떨어진다는 실증 증거가 많아,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영양사와 조리사를 직접고용한 병원에 인센티브를 준다. 병원 청소는 감염관리의 시발점이다. 감염 부서의 통합관리를 받으며 전문 가이드라인에 따라 진행하고, 병원 내 다른 노동자와 소통해야 한다. 이 위원은 “병원 내 외주업체를 두면 의사소통과 업무통제가 따로 이뤄지고, 필연적으로 (환자 안전과 의료서비스에) 문제가 생긴다”고 했다.

엄진령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집행위원은 서울대병원과 경북대병원 합의를 두고 공공부문 ‘자회사 전환’ 흐름 속에서 그 한계를 지적해 사측의 철회를 이끌어낸 점을 성취로 꼽았다.

엄진령 위원은 “공공기관 대다수가 자회사 전환을 추진했고, 인천공항과 잡월드 등에서 자회사 고용을 막지 못하며 더 이상 거스를 수 없는 흐름으로 인식됐다”며 “국립대병원 노동자들이 이번 합의로 (다른 노동자들이) 직접고용 정규직화를 요구할 국면을 열었다”고 했다.

정부는 공공부문의 간접고용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방식으로 ‘자회사 설립’안을 들고 나왔다. 자회사 안은 노동자들이 공공기관에서 일하면서도 다른 업체에 소속되는 간접고용 문제를 해소하지 못한다. 자회사가 인력공급 용역업체 구실을 하는 구조가 여전해 임금과 처우개선이 뒤로 밀려난다. 공공기관과 자회사의 용역계약 해지 가능성 탓에 고용불안도 그대로다.

엄 위원은 병원 원·하청 노동자가 노사합의 과정에서 단일 목소리를 낸 점을 두고 정부가 자회사안 근거로 ‘정규직 반발’을 드는 데 반증으로도 뜻깊다고 했다. 엄 위원은 “정부는 정규직 노동자를 비정규직과 이해가 대립하는 일방 당사자로 상정했다. ‘정규직 노동자들의 반발 탓에 직접고용만 고집할 수 없고, 자회사 전환 방식을 열어둬야 한다’고 변명해왔다”며 “두 병원의 합의는 자회사 전환을 주장하는 논리에 반대 선례로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다.

엄 위원은 “철도공사 정규직 노동자도 자회사 노동자와 공동파업을 펴고, 서울교통공사는 끊임없이 토론한 끝에 합의점을 찾았다”며 “오히려 정부가 노동자 간 갈등을 구조화하고 이를 정책의 배경으로 삼아 이런 흐름을 가로막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 정규직화가 모든 노동자의 권리를 위하는 방향임을 명확히 인식하고 조합원을 설득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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