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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사 ‘빈공간’ 반민특위, 오늘을 푸는 열쇠”
“근현대사 ‘빈공간’ 반민특위, 오늘을 푸는 열쇠”
경기도 주최 ‘3·1운동 100년 역사콘서트’ 부천 강연, 김삼웅·김진혁·전우용…“반민특위와 3·1운동 가치 제대로 새겨야”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는 하나의 작은 국가였다. 국회가 친일청산을 목표로 입법·사법·행정으로 이뤄진 ‘국가 안 국가’를 따로 만든 셈이다. 대한민국이 일제에선 해방됐지만 미군정 3년을 거치며 독립하진 못한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정체성을 구현하기 위해서다.”

김진혁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전 EBS PD)는 경기도 주최로 25일 경기 부천시청 어울마당에서 열린 ‘3·1운동 100년, 깨어있는 시민의식을 위한 경기도 명사초청 역사 콘서트’에서 2012~2013년 반민특위 후손에 대한 다큐멘터리 제작 소회를 밝혔다. 김 교수는 반민특위에 즈음한 근현대사가 역사교육에서 ‘빈 공간’으로 남아있다며 조직의 위상이 세간에 알려진 것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반민특위는 1948~1949년 민족반역자 조사와 처벌을 위해 국회 주도로 만든 국회 내 특별위원회다. 각 도에서 1명씩 10명의 국회의원으로 조사위원을 꾸렸고, 기소와 재판을 담당할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 특별경찰대도 뒀다. 그러나 친일경찰의 반민특위 관계자 암살음모 사건과 내무차관이 지시한 반민특위 습격 사건, 국회 프락치 사건, 김구 암살을 거치며 사실상 와해됐다. 김 교수는 2013년 EBS PD 재직 당시 다큐프라임에서 반민특위 활동을 담은 ‘나는 독립유공자 후손입니다’ 편을 제작하다 사측 인사 발령으로 진행이 중단된 바 있다. 당시 경영진의 정권 눈치보기라는 비판이 일었다. 

김 교수는 “아마추어(역사학도)로 반민특위가 친일파를 처단하려 만든 특별검사 같은 조직이라 생각했지만, 굉장히 달랐다”고 했다. 반민특위는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가 그린 우리나라의 상이었다. 특검은 대통령이 임명하고 국회가 동의해 꾸려지고 수사 뒤 사건을 사법부에 넘기는데, 반민특위는 특별조사위와 특별감찰부, 특별재판부까지 뒀다. 그는 “반민특위 해체는 그래서 입법부 와해 행위였다. 이는 국회가 대통령 중심 행정부에 종속돼 이후 독재정권이 자리매김하고, 지금까지 제기능을 못한다고 비판받는 것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했다.

▲김진혁 한국에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전 EBS PD)가 경기도 주최로 25일 부천시청 어울마당에서 열린 ‘3·1운동 100년, 깨어있는 시민의식을 위한 경기도 명사초청 역사 콘서트’에서 강연하고 있다. 사진=김용욱 기자
▲김진혁 한국에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전 EBS PD)가 경기도 주최로 25일 부천시청 어울마당에서 열린 ‘3·1운동 100년, 깨어있는 시민의식을 위한 경기도 명사초청 역사 콘서트’에서 강연하고 있다. 사진=김용욱 기자

특히 1949년 반민특위 습격사건은 행정부 지도자가 삼권분립을 폭력으로 넘어선 사건이자, 친일과 독재를 잇는 연결고리다. “쉽게 얘기해 (내무부 차관 주도로, 이승만 대통령 방조 아래) 국회의원회관에 있는 국회의원을 두드려 패서 끌고나왔다. 그게 반민특위 습격사건이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까? ‘해방됐지만 독립되지 못한 상황’임을 생각하면 의문은 풀린다.”

김 교수는 “단적으로 광복 이튿날 일본군은 해방 이튿날 ‘조선 독립만세’를 외친 청년을 철창으로 찔러 중상을 입혔다. 9월 미군환영식에선 미군에게 고맙다고 손을 흔드는 조선인이 일제 경찰의 손에 살해됐다”며 “미군과 일본군이 ‘좌익 난동’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대화를 나눠왔다. 미군정이 일제 시스템을 적극 받아들였다”고 했다.

김 교수는 반민특위 해체가 반공주의와 빨갱이 프레임과도 관련이 있다고 했다. 만주에서 밀정으로 활동하며 민족해방운동가들을 잡아들인 이종형은 반민특위 재판정에서 자신은 친일파가 아니라 ‘빨갱이’를 잡은 애국자라고 주장했다. 그가 해방 직후 만들어 운영한 ‘대동신문’은 친일극우 신문의 원조 격으로, 극우 성향 집회 동원의 시조라 할 수 있다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그는 “다큐프라임을 연출하면서 광복 뒤 한국전쟁 전까지 해방공간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알아보게 됐고, 그러다 보니 우리가 현재까지 겪고 있는 문제의 기원이 상당부분 반민특위 해체와 관련 있다는 결론에 다다랐다”고 말했다.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이 경기도 주최로 25일 부천시청 어울마당에서 열린 ‘3·1운동 100년, 깨어있는 시민의식을 위한 경기도 명사초청 역사 콘서트’에서 강연하고 있다. 사진=김용욱 기자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이 경기도 주최로 25일 부천시청 어울마당에서 열린 ‘3·1운동 100년, 깨어있는 시민의식을 위한 경기도 명사초청 역사 콘서트’에서 강연하고 있다. 사진=김용욱 기자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은 이날 강연에서 ‘3·1운동’이란 명칭을 ‘혁명’으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제군주제에서 민주공화제로 전환하는 계기가 됐고 △계층과 종파, 남녀노소 무관하게 참여해 신분 해방 성격이 있으며 △세계 피압박민족 해방투쟁의 봉화 역할을 했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중국신문도 ‘기미혁명’ ‘3·1혁명’이라 쓰고 이승만 박사도 망명 시절 ‘혁명’ 표현을 썼는데, 1948년 헌법 초안을 쓰는 과정에서 이승만을 비롯한 일제 세력의 제안을 받아들여 표현을 바꿔 적었다”고 말했다.

전우용 한국학중앙연구원 객원교수는 대한민국 헌법 전문이 국가의 핵심가치로 천명한 △정의 △인도(주의) △동포애 표현이 3·1운동 당시 쓰인 기미독립선언서에서 비롯한다며 헌법에 새겨진 3·1운동의 가치를 되새겨야 한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사회진화론을 따라 일어난 제국주의에 대한 믿음이 퍼졌고, 그 결과는 1차 세계대전이었다. 기미독립선언서는 인류 평등의 대의를 처음으로 명료하게 제시하면서 힘으로 모든 걸 지배하자는 시대 논리에 맞섰다”고 했다.

▲전우용 한국학중앙연구원 객원교수가 경기도 주최로 25일 부천시청 어울마당에서 열린 ‘3·1운동 100년, 깨어있는 시민의식을 위한 경기도 명사초청 역사 콘서트’에서 강연하고 있다. 사진=김용욱 기자
▲전우용 한국학중앙연구원 객원교수가 경기도 주최로 25일 부천시청 어울마당에서 열린 ‘3·1운동 100년, 깨어있는 시민의식을 위한 경기도 명사초청 역사 콘서트’에서 강연하고 있다. 사진=김용욱 기자

강연들은 ‘경기도 온라인 평생학습 지식사이트(www.gseek.kr)’에서 다시 볼 수 있다.

경기도 명사초청 역사콘서트 다음 일정은 오는 30일 고양 아람누리 아람극장에서 최태성 역사 강사, 주진오 역사박물관장, 싱어송라이터 안예은씨의 강연으로 이어진다.

행사 홈페이지 www.history100.kr
행사 사무국 문의-3·1운동 100년, 깨어있는 시민의식을 위한 경기도 명사초청 역사 콘서트.
전화 : (02) 2644-9944 (내선번호 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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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2019-11-26 19:21:13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이 그냥 툭 튀어나온 언어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