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가 최승호 신임 사장을 뽑은 2017년 12월 7일. 손석희 JTBC 보도담당 사장은 사내 이메일을 통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앞으로의 2년 내지 3년은 회사 안팎에서 많은 변화의 요구들이 있을 것이고, 각자의 방향을 정하면서 동시에 경쟁력을 갖추는 것은 개인과 조직 모두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예측은 정확했다. 대응은 어떠했나. 

각종 지표는 JTBC의 ‘실패’를 가리킨다. 지난 10월27일~30일 실시한 미디어오늘·리서치뷰 공동 여론조사결과 조국 사태를 가장 공정하게 보도했다는 방송사는 MBC 19%, TV조선 17%, JTBC 14% 순이었다. 청와대가 조국 전 민정수석을 법무부장관으로 지명한 8월9일 이후 10월27일까지 80일간 방송사 메인뉴스 시청자 수 분석결과 MBC와 TV조선은 눈에 띄게 상승한 반면, JTBC는 KBS와 함께 뚜렷한 하락세였다. 

시청률 조사기관 닐슨코리아의 수도권 전 연령대 기준 평일 시청자 집계에 따르면 JTBC는 8월 평균 시청자수 57만 명에서 9월 46만3000명으로 10만 명가량 급감했고 10월에도 44만2000명으로 하락세를 이어갔다. 한국갤럽의 10월 선호채널 조사에서도 JTBC는 16%를 기록하며 3분기(22%)에 비해 떨어졌다. 동시에 “선호하는 뉴스 채널이 없다”는 응답은 30%로 조사 이래 역대 최고 수치를 기록했다. 

지난 9월 시사인의 언론 신뢰도 조사에서 가장 신뢰하는 언론매체를 두 곳 답해달라는 질문에 JTBC가 19.9%로 1위, 유튜브가 16.4%로 2위를 나타냈다. 지난해 32.2%를 기록했던 JTBC로서는 눈에 띄는 하락이었다. 손 사장도 하락세를 피하지 못했다. 가장 신뢰하는 언론인 조사에서 지난해 35.5%를 기록했지만 올해는 21.6%에 그쳤다. 

탄핵을 이끌었던 시민들은 JTBC에서 새 정부의 탄생을 지켜봤다. 지난 대선 오후 6시~12시 개표방송 20~49 시청자수에서 JTBC는 분당 평균 124만1000명으로 KBS1TV(58만4000명)를 여유 있게 앞섰다. 그랬던 시청자들이 분화되어 일부는 TV조선·채널A로, 일부는 MBC·tbs교통방송으로, 일부는 TV를 떠났다. 언젠가는 겪어야 할 일이었다. 3년 전 역사적 태블릿PC를 JTBC 기자에게 넘겨주었던 과거 ‘더블루K’ 건물관리인 노광일씨는 지난 13일 통화에서 “8월28일부터 JTBC를 안 본다”고 말했다. 그는 하루도 안 빠지고 서초동집회에 나갔다고 했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국정농단 국면에서 보수성향 시민들이 촛불집회에 나왔던 것처럼 조국 사태에서 정치적 분화가 일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국정농단 국면을 주도하며 유례없는 비현실적 신뢰도·영향력 지표를 나타냈던 만큼, 시간이 지날수록 신뢰도·영향력의 완만한 하락세 역시 예측 가능했다. 문제는 지표 너머에 있다. 

조국 사태에서 지상파·종편에서 볼 수 없는 JTBC만의 관점 있었나

▲서울 상암동 JTBC사옥. ⓒJTBC
▲서울 상암동 JTBC사옥. ⓒJTBC

손석희 사장은 “우리는 지상파도 아니고 종편도 아니며 단지 JTBC여야 한다”는 말을 자주 했다. 과연 조국 사태에서 지상파·종편에서 볼 수 없는 JTBC만의 관점이 있었나. BBC 맥락 저널리즘에 가장 근접했다는 평가를 받았던 JTBC는 조국 사태에서 ‘한 걸음 더 들어간 뉴스’로 사건의 총체적 맥락을 드러내고 새로운 관점, 혹은 현명한 관점을 제공했던가. 

복수의 JTBC보도국 관계자들에 따르면 JTBC는 조국 사태 국면에서 검찰발 기사를 비롯해 조국 관련 아이템에 대해 철저하게 보수적으로 데스킹하고 확인된 것만 중립적으로 보도했다. 검찰발 아이템도 검찰의 공식 브리핑 위주로 보도했다. 스모킹건이 될만한 아이템이 아닌 이상 신중하게 게이트키핑했다. 정치부·법조기자들의 불만은 자연스러웠다. 

물론 JTBC는 ‘조국 전 장관’의 입장을 옹호하지도 않았다. 신중함이 거듭됐다. 8월26일부터 9월3일까지는 ‘앵커브리핑’이 멈췄다. 고민의 흔적이었다. 손석희 사장은 9월4일 ‘앵커브리핑’에서 조국 사태 국면을 ‘장마’로 표현했다. 김어준·유시민에 이어 손 사장의 ‘참전’을 바랐던 시민들은 JTBC 보도가 이상하다며 다양한 음모론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모두 근거 없었다. 보도의 전권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손 사장이 갖고 있다.

홍석현 중앙그룹 회장이 설령 JTBC보도에 불만을 가질 수는 있으나 그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중앙일보와 JTBC의 중재자 위치를 자처해왔다. 지난해 말 CBS라디오 ‘정관용의 시사자키’에 출연한 홍 회장은 “중앙일보는 50년간 쌓여온 어떤 문화가 큰 관성을 갖고 움직이고 JTBC는 손석희 사장이 많은 영향을 미치는 조직”이라고 말한 뒤 “(각자) 문화대로 가도록, 그리고 언론의 정도를 가는 것만 내가 신경을 쓴다”고 했다. 

지난 13일자 ‘뉴스룸’ 앵커브리핑에서 손 사장이 밝혔듯 “전 법무부 장관을 둘러싼 논란 역시, 핵심은 불공정이며 카르텔화 된 특권의 성벽에 관한 것들”이었다. 그러나 검찰의 대응 역시 이해하기 힘들 것들이 많았고, 일부 보수언론의 조국 관련 보도에선 일종의 ‘광기’까지 느껴졌다. 조국 전 장관·윤석열 검찰총장을 비롯해 조국 사태의 등장인물 대다수가 자신이 선 자리에서 한 걸음 이상 ‘무리’하며 극단으로 치달았다. JTBC는 이 모든 국면을 총체적으로 전달하는 데 실패했다. 

조국 사태에서 JTBC는 신뢰도·영향력 1위라는 자신의 ‘권위’에 스스로 짓눌릴 수밖에 없었다. 그 어떤 언론사보다 신중해야 했다. 앵커멘트의 뉘앙스 하나에도 감당하기 힘든 각주가 달리던 상황이었다. 판단은 점점 보수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JTBC는 ‘검찰 개혁’ 이슈를 앞서서 끌지도 못했고, 조국 전 장관과 관련한 각종 의혹을 주도적으로 보도하지도 못했다. 시청자들에게 JTBC의 모습은 의도와 관계없이 ‘기계적 중립’으로 비춰졌다. ‘롱폼 저널리즘’과 라이브 중심의 차별화된 뉴스가 강점이었지만 조국 사태에서는 이 같은 강점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JTBC 또한 다른 언론사와 마찬가지로 조국 사태에서 논조를 둘러싼 논쟁과 갈등이 존재했다. 적극적으로 조 전 장관 문제를 보도하자는 쪽, 신중하게 보도해야 한다는 쪽이 있었다. 손석희 사장은 후자였다. 당연히 손 사장의 판단을 비판하는 기자들도 존재했다. 물론 과거에도 보도 방향에 대한 이견은 존재했다. 언론사라면 당연한 장면이다. 다만 과거에는 JTBC의 높은 성과로 인해 적극적으로 표출되지 않았을 뿐이다. 

JTBC의 한 중견 기자는 “더 치고 나가야 한다, 신중하게 가야한다는 의견이 부딪혔던 건 맞지만 어느 보도국에나 있어야 할 논쟁이었다”고 말했다. 이 기자는 “시청률 만회를 위해 특정 진영에 기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며 “내부에 MBC나 TV조선처럼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기자들은 없다”고 전했다. 

조국 사태가 가져온 보도국의 내상은 적지 않아 보인다. 최근 JTBC 기자들의 신뢰를 한 몸에 받던 보도국 간부마저 건강상 이유로 돌연 사표를 제출해 뒤숭숭한 분위기가 계속되고 있다. 손 사장이 지난해 말 대표이사로 승진하고 과거보다 기자들과 커뮤니케이션이나 스킨십 빈도가 줄어든 것도 사소해 보이지만 소통에 영향을 주고 있다. 과거 보도 담당 사장실은 보도국이 있는 5층에 자리잡고 있었지만 지금 사장실은 5층에 없다. 

“돌아오라 손석희” 팻말에서 무엇을 배워야 할까 

▲9월28일 JTBC '뉴스룸' 보도화면 갈무리.
▲9월28일 JTBC '뉴스룸' 보도화면 갈무리.

9월28일 서초동 집회현장을 생중계하던 JTBC 화면 뒤로 “돌아오라 손석희”라는 팻말이 잡혔다. JTBC 취재진은 광화문뿐만 아니라 서초동에서도 야유를 받고 수모를 당했다. 문제는 ‘수모’ 그 자체가 아니다. 수모는 스스로 떳떳하면 감수할 수 있다. 만약 JTBC 기자들이 양쪽에서 야유를 받은 것을 두고 “우리가 진영언론이 아니라는 증거”라며 안도했다면, 그것이 진짜 문제다. 양쪽에서의 야유는 JTBC의 ‘공정함’을 반증하는 장면이 아니다. 

한 명의 장관후보자를 둘러싼 유례없는 갈등과 폭발적 보도량을 둘러싼 논란은 복잡했다. 피의사실 공표도, 국민의 알 권리도, 실은 자신이 서 있는 정파의 이해관계에 따라 그 잣대를 고무줄처럼 늘였다 줄였다 했던 일이 역사적으로 존재한다. 사태의 본질은 정파적 대결이었다. ‘조국’과 ‘검찰’을 중심으로 각자 상대 정파를 공격했다. 한국언론은 고질적인 정치 병행성 문제가 있다. 조국 사태에서 상당수 언론은 정치구조를 반영해 자유한국당 성향 언론과 더불어민주당 성향 언론만 남아 ‘사실’을 놓고 다투어야만 했다. 저널리즘적 한계는 불가피했다. 

그 한계 속에서 JTBC는 대안 언론으로서 고품질의 담론을 제공하는데 사실상 실패했다. 대다수 언론이 서초동과 광화문에 집중할 때 서초동과 광화문 모두 갈 수 없는 사람을 대변하는 리포트는 충분했을까. 서초동 집회에서 “조국 수호” 구호를 외치지 않고 “검찰 개혁”만 외친 시민의 입장, 조국 장관 임명이 문제라고 생각했지만 광화문 집회현장은 근처도 가지 않았던 시민의 입장은 충분히 대변됐을까. 

지난 10월1일, 조국과 검찰개혁을 주제로 2시간 동안 JTBC에서 난상토론이 벌어졌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이날 “진영논리가 왜 나쁘냐”고 말하면서 토론 진행자였던 손석희 사장을 향해 “손석희 앵커만 진영논리를 안 따르시면 돼요”라는 말을 했다. 모두가 진영으로 나뉘어 각자의 땅을 밟고 서도 되지만, 손 사장은 혼자 한가운데 외딴 섬에 서 있으라는 얘기다. 이는 ‘존중’이 아니다. 한쪽을 선택하지 않으면 고립된다는 ‘형벌’의 경고에 가까웠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신문과방송’ 9월호에서 “한국에서 이념보다 훨씬 더 중요한 기준은 정파성”이라고 주장하며 현재와 같은 ‘승자독식’ 체제에서 “언론은 정파성을 최상위 가치로 여기는 상황으로 내몰리게 된다”고 우려했다. ‘TV조선이나 MBC가 가지 않은 길’을 가는 것이 JTBC만의 노력으로 완성되기 어려운 구조임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JTBC는 현재 뉴스룸에서 한 단계 진화해야 한다. “언론과 국가는 늘 긴장 관계에 있어야 한다”는 손 사장의 철학을 바탕으로 아직 ‘뉴스룸’에 남아있는 충성도 높은 시청자를 만족시킬 뉴스를 내놔야 한다. ‘돌아오라 손석희’라는 팻말을 그저 유별난 집회참가자의 돌발행동으로 치부해선 안 된다. JTBC 구성원 모두 자문해야 한다. 최근까지 JTBC가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간 것인지, 혹은 제자리에 머물렀던 것인지, 혹은 뒷걸음질 쳤던 것인지. 만약 어딘가로 돌아가야 한다면, JTBC가 돌아갈 곳은 어디인지. 

“완벽한 저널리즘은 없으며, 그것을 추구하는 과정이 있을 뿐이다” 

▲손석희 JTBC 사장. ⓒJTBC
▲손석희 JTBC 사장. ⓒJTBC

JTBC는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취재가 되면, 기사를 써왔다. 하지만 이제는 기사 작성 원칙에 대해 세부적으로 새로운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JTBC ‘뉴스룸’의 슬로건인 ‘사실·공정·균형·품위’를 현 국면에 맞게 재해석할 필요가 있다. 

‘비욘드뉴스-지혜의 저널리즘’의 저자인 뉴욕대 저널리즘 담당 교수 미첼 스티븐스는 ‘지혜의 저널리즘’을 위한 조건으로 △사실을 ‘이해할 수 있게’ 만들기 △숨겨진 진실 드러내기 △관점 제공하기 △세계관 확장하기 △대중이 느끼는 것을 표현하기 △좀 더 큰 원칙 찾기를 꼽았다. 그는 “결론을 내지 말도록 훈련받은 기자들은 통찰력을 발휘하라는 요구를 받게 되면 출입처나 저녁 파티에서 나온 합의된 의견을 앵무새처럼 되뇌었다”고 지적하며 “저널리즘 조직은 매일 그날의 주요 기사 각각에 대해 적합한 전문성을 갖고 있는 해석 저널리스트를 최소한 한 명 배치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지난달 25일 ‘취재 보도 관행과 저널리즘 원칙의 성찰’이란 제목의 토론회에서 “한국언론은 사실 보도라는 사소한 성취에 만족하는 버릇을 버려야 한다. 사실확인이라는 가짜 목표를 버려야 한다. 사실에 충실하면 그것으로 충분한 이유가 되고 변명이 된다는 자기기만에서 깨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처음부터 긴 호흡의 기사를 지향하면서 워싱턴발 정치 이슈보다 정책 문제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다양한 상향식 기사, 즉 시민의 관점에서 보도하는 미국 NPR의 사례를 참고하거나 최근 전 세계 언론의 화두가 된 ‘솔루션 저널리즘’에 주목할 필요도 있다. 

피에르 아스키 국경없는기자회 회장은 최근 한국을 방문해 “오늘날 모든 의견은 양극화되고 있다. 누군가 사회여론을 양극화시킬 때 가장 먼저 하는 것은 언론과 언론인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것”이라고 지적하면서도 언론의 신뢰 하락에는 언론의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저널리즘이 불평등의 피해자들에게 오랫동안 기득권의 일부로 비추어진 것이 사실”이라며 “존재를 인정받기 위해 최선을 다해 우리의 전문성을 세워야 한다. 끝없는 자기반성 속에서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억울하고, 답답할수록, 첫 마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지난 10월의 어느 날, JTBC 기자들이 손석희 사장에게 받았던 문자의 한 대목은 이러했다. 

“언론은 늘 야단을 맞는 대상입니다. 어느 한쪽으로부터, 혹은 양쪽으로부터 모두 말입니다. 가끔 억울하게 느껴질 때가 있어도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완벽한 저널리즘은 없으며, 그것을 추구하는 과정이 있을 뿐이니까요. 우리가 3년 전 태블릿PC를 보도한 직후 제가 보냈던 메일을 기억하지요? 겸손하고 또 겸손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건 마찬가지입니다. 현장에서 혹 격한 비난이 있다 해도 묵묵히 견뎌냅시다. 그러는 과정에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저널리즘의 정도가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공유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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