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현 정부가 인공지능 정부가 되겠다고 밝혔다. 4차산업혁명 시대의 미래 먹거리와 무한한 발전 가능성을 지원하겠다는 의미다. 재정적 지원 보다 가장 큰 지원은 제도적 지원이다. 이를 위해 정부 뿐 아니라 집권 여당까지 나섰다. 데이터 3법(빅데이터 3법)으로 불리는 개인정보보호법 정보통신망법 신용정보법 등 3법 개정안의 연내 통과다.

심지어 조선일보도 말의 성찬은 집어치우고 법이나 개정하라고 촉구한다. 도대체 이 법안을 개정하면 어떤 길이 열리길래 여야 심지어 조선일보까지 법을 개정하라고 한목소리일까.

이 법안의 핵심은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에 있다. 현재 본인 동의를 얻지 않은 상태에서는 개인정보를 임의로 처리하거나 제3자에게 제공할 수 없게 돼 있다. 그런데 이 규정에서 개인정보를 ‘가명정보’로 특정개인을 식별하기 어렵게 처리하면 과학적 연구 등의 목적으로 당사자 개인의 동의없이 제공해도 된다는 취지다. 한마디로 개인정보의 기술적 처리로 법의 빗장을 열어젖히고 마음 껏 개인정보를 이용하게 한다는 의미다. 그 이용자는 기업이다.

이 때문에 시민단체는 물론이고, 국가인권위원회까지 여당의 법개정안에 우려를 표시했다.

그런데도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30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빅데이터경제3법’ 통과”라며 “행안위에서 아직 논의 중이라고 하는데 이번 정기국회에서 반드시 통과시킬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인영 같은당 원내대표도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데이터산업을 법과 제도가 아직 제대로 뒷받침하지 못해 집권당 원내대표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올해 내 데이터3법을 처리할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하겠다”고 했다.

국회에 개인정보 보호법이 2017년 10월 개정된 이후 30여 건의 추가 개정안이 올라와 현재 행정안전위원회에서 법안심사소위에서 19개의 개인정보 보호법 개정법률안이 논의되고 있다. 이 가운데 핵심 법안은 인재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개정안이다. 사실상 정부안이기 때문에 행안위에서는 이 법안을 중심으로 심사가 이뤄지고 있다.

인 의원 법안을 보면, 개인정보의 정의에 가명정보와 가명처리를 추가했다. 이 개정안은 개인정보를 “가명처리함으로써 원상태로 복원하기 위한 추가 정보의 사용·결합없이는 특정 개인을 알아볼 수 없는 정보”라고 추가 설명했다. 가명정보란 한마디로 개인을 구성하는 여러 정보 가운데 예를 들어 이름과 주민번호 휴대폰번호 거주지 등 핵심정보를 제거한 정보를 뜻한다. 이것만을 보면 누구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어느 직장에 근무하는 40대 남성이라고 할 경우 대부분은 그를 알 수 없지만 그 직장의 구성원을 아는 사람은 그를 알아낼 수도 있다. 이를 다른 제거한 부분 정보들과 결합하면 그가 누군지 더욱 파악하기 용이해진다. 이를 정보의 결합이라 하고 법에서는 ‘정보집합물’로 표현한다.

과학적 연구를 두고 인 의원 등은 “기술의 개발과 실증, 기초연구, 응용연구 및 민간 투자 연구 등 과학적 방법을 적용하는 연구를 말한다”고 했다.

신설할 28조2의 1항은 “개인정보처리자는 통계작성, 과학적 연구, 공익적 기록보존 등을 위하여 정보주체의 동의 없이 가명정보를 처리할 수 있다”고 정했고, “가명정보를 제3자에게 제공하는 경우에는 특정 개인을 알아보기 위해 사용될 수 있는 정보를 포함하여서는 안된다”고 규정했다.

인 의원은 이런 가명정보를 통계작성, 과학적 연구, 공익적 기록보존 등을 위해 개인정보처리자간 정보집합물의 결합할 수 있게 했다(28조의3). 보안시설을 갖춘 전문기관이 수행하며 이를 외부로 반출하려면 완전히 알 수 없는 ‘익명’정보로 만든 뒤 전문기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또한 핵심은 개인정보보호위원회(7조)를 총리가 위원을 임명하는 정부조직법 상 중앙행정기관으로 둔다는 점이다.

김석기 자유한국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개정안에는 아예 시장조사 등 상업적 목적의 통계작성, 서비스개발 등 산업 목적을 포함한 과학적 연구 등의 목적으로 가명처리한 뒤 개인 동의없이 제3자에 제공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이런 가명정보를 결합할 수도 있도록 했다.

이 같은 법안에 국가기관 내부에서도 위험성이 제기됐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8월 전원위원회를 통해 의견표명을 하기로 결정했다. 인권위는 특히 인재근 의원 안을 강하게 비판했다.

국가인권위는 “당초 입법 취지와는 달리 신산업 발전 등의 긍정적 측면 못지 않게 가명정보가 오·남용 되는 등의 위험성이 적지 않다”며 ‘과학적 연구’의 범위를 어디까지 허용하는지 판단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인권위는 “이러한 모호한 개념정의는 자칫 기업·단체 등이 과학적 연구라는 미명 하에 당초의 수집목적과는 다르게 가명정보를 상업적 용도로 이용, 제공, 공유, 심지어 판매하는 등 오·남용하는 행위를 방지하기 어렵다”며 아예 이재정 의원등의 개정안과 같이 범위를 ‘학술연구’와 같이 구체적으로 정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등이 지난 2017년 11월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고객정보를 무단결합한 비식별화 전문기관과 20여 개 기업을 개인정보보호법 등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면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등이 지난 2017년 11월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고객정보를 무단결합한 비식별화 전문기관과 20여 개 기업을 개인정보보호법 등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면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특히 이 개정안의 독소조항으로 국가인권위는 현행 개인정보보보호법의 당사자의 권리보호장치를 제거한 데 있다고 지적했다. 현행 법은 ‘통계작성 및 학술연구 등의 목적을 위해 특정 개인을 알아볼 수 없는 형태로 개인정보를(정보주체 동의없이) 제공하는 경우라 하더라도 정보주체 또는 제3자의 이익을 부당하게 침해할 우려가 있을 때는 제외하도록’(18조2항과 4호) 돼 있으나 인재근 의원의 개정안은 이러한 권리 보호 조건을 삭제하고 단지 정보주체 동의없이 가명정보를 처리할 수 있다고만 규정했다. 인권위는 “사실상 아무런 제약 없이 가명정보의 목적 외 이용 혹은 제3자 제공이 가능하도록 한다”고 비판했다.

국가인권위는 개정안이 ‘개인정보 파기, 정보주체의 개인정보 열람권 및 정정 삭제 요구권 등의 적용’을 배제했다는 점도 지적했다. 보관기간의 제약없이 가명정보를 사실상 영구히 보유·이용할 수 있도록 한 것도 문제라는 비판이다. 국가인권위는 개인정보 보호법 개정안이 개인정보 자기결정권 등 정보 주체의 기본적 인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프로파일링’에 일체의 규정을 두지 않은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우리나라의 경우 주민등록번호가 이동통신 서비스 가입시 실명확인제도, 금융실명거래 제도, 신용정보 집중관리 및 신용평가 제도 등과 결합해 우리나라 국민의 거의 모든 경제·사회 활동에서 신원을 확인하는 수단으로 활용된다는 점도 법 개정안의 위험성을 높인다. 이 같은 개인정보가 대량유출된 전례도 있고, 이미 휴대폰 번호의 경우 현재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엄청나게 매매 유통되고 있다. 국가인권위는 “가명정보의 재식별 및 오·남용 위험성이 더욱 크다는 점도 신중히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오병일 진보넷 활동가는 지난 31일 저녁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과학적 연구를 목적이라고 하지만 연구를 과학적으로 하지 비과학적으로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모호한 표현”이라며 “예를 들어 KT와 네이버가 서로 고객정보를 나누고 보험회사와도 연계하며 고객의 통신이용 패턴과 보험상품 패턴까지 파악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오 활동가는 가명정보를 제공했을 때 식별할 수 없도록 했지만, 이런 기술기반 업체들이 가명정보를 결합해 특정인의 개인정보를 더 구체적으로 파악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고, 어떤 기업이 악의적으로 활용하지 않는다고 확신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그는 “정보주체의 동의없이 고객정보를 판매 공유하고, 자유롭게 결합하도록 해주는 법안인 만큼 언제 어떻게 개인정보 사고가 터질지 모른다”며 “여러 독소조항들을 안고 밀어붙이는 법 개정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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