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가 지난 30일 제정한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 훈령에 대해 오늘도 언론의 거센 비판이 이어졌다. 훈령에 따르면 피의자 공개소환과 포토라인이 폐지되고 수사가 진행 중인 사안에 대해 검사나 수사관들이 기자를 접촉하지 못하며, 오보를 낸 기자는 검찰 출입이 제한될 수 있다. 해당 규정은 입법 예고 없이 12월1일부터 시행된다. 보수신문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더욱 정부 비판 공세를 강화하는 모양새다. 자사의 ‘검찰발’ 보도에 대한 성찰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한국기자협회·전국언론노조 등이 강하게 반발하며 논란이 커지자 법무부는 31일 ‘규정 제정 관련 추가 설명’을 발표하며 수습에 나섰다. 법무부는 31일 “출입제한 조치는 인권을 침해하는 중대한 오보가 명백하게 실제로 존재해야 검토 가능하다. 의무 사항이 아니라 재량 사항”이라고 해명했으며, 오보 판단 기준에 대해서는 “각급 검찰청과 검찰청 출입기자단의 자율적인 협의를 통해 ‘인권을 침해하는 중대한 오보가 무엇인지에 대한 기준’이 합리적으로 마련돼 운영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논란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중앙일보는 “국회의 자료제출 관련 법률에 따라 법무부에 특정인에 대한 공소장을 요구할 경우 법무부가 법률이 아닌 훈령으론 이를 거절할 수가 없다”며 “법무부의 이번 조치가 사실상 유명무실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고 지적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국회 법사위 소속 여야 관계자는 “검찰과 법무부가 자료 제출을 거절할 핑계가 생긴 것”이라고 밝혔다. 동아일보는 “검찰 내부에서조차 ‘수사기관에 대한 통제가 불가능하도록 만든 규정이다. 판단 기준조차 명확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보도하며 “법조 출입기자단은 조만간 법무부에 규정에 대한 우려 의견을 전달하고 경찰 출입 기자단과 의견을 조율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경향신문 1일자 4면.
▲경향신문 1일자 4면.

경향신문은 “지난 2년간 경향신문의 서울중앙지검 수사관련 보도를 분석한 결과 대통령, 대법원장, 대기업 고위 임원 등에 관한 보도가 대부분”이라며 법무부의 새 공보 규정이 권력감시를 위축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2017년 11월1일~2019년 10월31일자에 실린 경향신문 지면기사 중 서울중앙지검 수사 기사 532건을 분석한 결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 박병대 전 대법관 등 사법농단 관련자들 기사가 102건(19.1%)으로 가장 많았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정경심 동양대 교수 등 조 전 장관 일가 수사 기사가 68건(12.7%), 이명박 전 대통령 관련 기사가 61건(11.4%) 순이었다. 

뒤를 이어 증거인멸, 분식회계, 편법 경영승계 의혹을 받는 삼성바이오로직스 기사는 27건(5.0%), 삼성전자서비스·삼성에버랜드의 노조 와해사건이 22건(4.1%), SK케미칼·애경 전·현직 임원 등이 재판에 넘겨진 가습기살균제 2차 수사 기사는 19건(3.5%), 2017년 3월31일 구속된 후 검찰이 추가 기소한 박근혜 전 대통령 관련 기사는 17건(3.1%)이었다. 경향신문은 이런 통계를 근거로 “지난 2년간 언론의 취재 대상은 대부분 전·현직 고위공직자 또는 대기업 임직원이었다”고 강조했다. 

한국일보는 ‘법무부 새 공보 규정, 언론의 권력 감시 무력화 시도 아닌가’라는 제목의 이날 사설에서 “수사 과정의 피의사실 공표는 법정에서 유무죄를 다투고 법원의 판단이 내려지기도 전에 피의자에게 범죄자 낙인을 찍어 인권을 침해한다는 지적이 계속 제기돼왔다. 검찰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수사 정보를 언론에 흘려 여론재판 분위기를 주도하는 행태를 막으려면 정보 공개도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밝히면서도 “문제는 이런 규제를 통한 피의자 인권 보호가 언론 자유나 국민의 알권리와 동전의 양면이라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일보는 “검찰에 대한 취재를 극도로 제한하면 권력형 비리 등 국민적 관심이 큰 수사가 제대로 진행되는지, 수사 과정에 인권 침해 행위는 없는지, 검찰이 내부 비리를 유야무야한건 아닌지 언론이 감시할 기회가 크게 제약받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특히 ‘오보’를 한 기자에 대해 검찰청 출입을 제한하겠다는 규정은 검찰이 언론을 통제하는 빌미가 될 수 있다. 오보의 기준을 누가 어떻게 판단할지 알기 어렵고, 여차하면 검찰 수사에 대한 비판을 검사나 수사 종사자의 명예훼손으로 간주해 취재를 차단할 수 있다는 뜻”이라고 우려하며 “이번 규정은 여론을 더 수렴해 손질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중앙일보 1일자 1면.
▲중앙일보 1일자 1면.

중앙일보는 ‘졸속 제정’을 비판하며 다시금 조국 전 장관을 겨냥했다. 이 신문은 “(이번 훈령은)법에 ‘40일 이상’으로 규정된 입법예고 기간을 무시하고 두 차례에 걸쳐 단 9일간의 입법예고만 진행됐다”며 “당장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관련 수사에 대해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검사장 출신의 변호사 입을 빌려 “40일 이상 입법예고를 하지 못하는 ‘특별한 사정’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수사 외엔 없는 것으로 보인다. 국민 인권과 검찰 수사에 직접적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안을 이렇게 졸속으로 처리해선 안 된다”고 비판했다. 

조선일보는 법무부의 이번 조치를 “조국 보도에 대한 보복”이라고 주장했다. 이 신문은 ‘조국 파렴치 보도했다고 언론에 보복하는 정권 법무부’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이 훈령은 사실상 수사기관이 불러주는 대로 언론이 받아쓰라는 것이다. 무엇이 ‘오보’인지도 저들 마음대로 정한다고 한다. 재판 공개는 헌법 원칙인데 기소 후에도 사건 내용을 대부분 비밀로 하고 불기소 사건은 아예 공개하지 않는다고 한다. ‘밀실 수사’를 벌이고 정권 비리는 그대로 덮어버릴 수 있다는 뜻”이라며 “보도 지침이 횡행하던 독재 시대에도 없던 발상이자 언론 자유와 국민 알 권리에 대한 심각한 침해”라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수많은 기자가 발로 뛰어 조국 일가의 표창장 위조, 입시부정, 펀드 불법 투자, 교사 채용 뒷돈 수수 등 위법 혐의와 파렴치 위선 행태를 고발했다. 조국씨와 법무부는 그때마다 사실이 아니다라고 했지만 거의 모두 사실로 드러났다. 법무부 훈령대로라면 그 보도를 한 기자들은 검찰 취재도 못 하게 되고 출입처에서도 쫓겨나게 된다”며 이번 훈령을 가리켜 “인권 보호는 핑계일 뿐 조국 비리를 파헤친 언론에 대한 보복이자 비리가 드러나는 것을 막기 위해 권력을 남용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선일보 1일자 사설.
▲조선일보 1일자 사설.

동아일보 역시 ‘법무부 취재 봉쇄 훈령, 언론자유 침해 넘어 통제 수준이다’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이번 훈령을 가리켜 “민주주의 체제에서 나온 것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시대착오적이다. 검찰이 밀봉된 검찰청사 내에서 ‘살아있는 권력’의 비리를 눈감아주거나 편파적인 수사를 해도 견제할 길이 사라진다. 검찰의 수사 담당자가 자의적으로 오보 여부를 판정하고 이를 근거로 기자의 취재를 막을 수 있다는 규정도 명백한 독소 조항”이라고 주장했다. 

동아일보는 “검찰이 발표하는 수사 결과가 이후 재판에서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는 경우도 적지 않은데 모든 언론이 취재가 봉쇄된 상태에서 일방적인 발표에만 의존해 기사를 썼다가 후일 오보로 판명난다면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라고 되묻기도 했다. 법무부의 31일 해명을 두고는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규정을 급조해 발표해 놓고 하루 만에 대충 고치면 된다는 식의 무책임한 자세”라고 비판했다. 

이런 가운데 한겨레는 ‘조국 그 이후 언론개혁을 말하다’라는 주제의 좌담회 지면을 구성했다. 한겨레는 이날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검증 보도를 계기로 ‘언론개혁’이 우리 사회 화두로 다시 떠올랐다. 속보·단독 경쟁을 일삼으며 검찰이 흘린 정보에 기대 검증 없이 기사를 쏟아내는 언론의 취재 관행은 이번 사태를 통해 그 문제점을 극명하게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좌담에 참여한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이번 기회에 언론사들이 보도 준칙이나 강령을 정비하고 조국 보도와 관련해 백서를 만들어 자성과 재발 방지를 위한 기록을 남기는 작업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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