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에선 노동문제를 주로 노동이 아닌 기업 관점에서 다룬다. 29일 통계청과 기획재정부 발표를 보면 8월 기준 정규직 노동자가 1307만8000명, 비정규직 노동자가 748만1000명 등 노동자가 2000만명이 넘는데도 그런다. 

비정규직은 해고당하기 쉽다. 노동자 입장에서 보면 고용안정성이 떨어지는 일이지만 기업 관점에선 노동시장 유연성이 올라가는 일이다. 정당한 시장경제라면 고용안정성을 포기한 비정규직들은 이에 대한 보상을 받아야 하고, 기업은 노동시장 유연성을 얻은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즉, 비정규직은 그 일이 정규직일 때 받을 수 있는 임금보다 높은 임금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한국 언론에선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태생부터 별개 노동시장으로 존재했던 것처럼 다루고 있다. 정규직용 일자리가 따로 있어 정규직이란 신분과 비정규직 신분 사이에 건널 수 없는 강이 흐른다. 

정규직은 고학력·숙련 노동자이며 비정규직은 저학력·비숙련 노동자라는 것도 발명된 사고방식에 불과하다. 고학력의 상징인 대학 교수 자리조차 우연히 비정규직 채용시기일 때 들어가면 비정년 교수가 되고 정규직 채용시기일 때 들어가면 정년 교수가 될 뿐이다. 그렇게 신분이 결정되면 그에 맞게 약간의 업무 차등을 둔 뒤 신분을 정당화한다. 한국도로공사 톨게이트 노동자들 투쟁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듯 비정규직 차별은 기업이 임의로 만들고 정부가 승인한 불합리한 신분제다.  

▲ 30일 서울신문 만평, 노인인구가 증가하는 가운데 노인일자리가 늘었다는 비판이다.
▲ 30일 서울신문 만평, 노인인구가 증가하는 가운데 노인일자리가 늘었다는 비판이다.

비정규직 문제를 다룰 때 이런 문제들을 외면한 채 그나마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가 너무 커지는 게 문제라는 정도의 비판이 종종 나올 뿐이다. 

30일 한겨레 “비정규직 월급, 정규직의 55% 격차 143만원6천원 ‘역대 최대’”란 기사를 보면 정규직 월평균 임금이 316만5000원이고, 비정규직 172만9000원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모두 임금은 지난해 보다 5.2% 늘었다. 물론 같은 비율이 늘었으니 정규직 임금이 더 많이 올랐고 격차도 커졌다. 2011년 이후 8년 만에 최대라고 한겨레는 전했다. 이번 통계청 발표 이후 정규직-비정규직 격차를 따로 지적한 몇 안 되는 기사다.  

▲ 30일 한겨레 3면 기사
▲ 30일 한겨레 3면 기사

이날 아침신문들은 통계청 발표를 전하며 “정규직이 2011년 이후로 처음 감소(35만3000명)했으며 1년 전보다 비정규직 86만7000명이 늘었다”며 정부 비판에 초점을 뒀다. 강조점은 신문마다 차이가 있었지만 내용은 신문 성향과 무관했다. 

조선일보는 1면 “비정규직 87만명 폭증, 거꾸로 가는 일자리” 기사에서 “‘비정규직 제로(0)’를 ‘대통령 1호 지시 사항’으로 추진하고 일자리 정부를 표방해 온 문재인 정부에서 도리어 비정규직이 폭증하는 일자리 참사가 벌어졌다”며 “‘고용의 양과 질이 개선되고 있다’던 정부 주장도 힘을 잃게 됐다”고 비판했다. 

이 신문은 “전문가들은 비정규직이 급증한 이유에 대해 ‘불황과 친노조 정책,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민간 일자리가 얼어붙으면서 계약직이나 시간제 알바라도 취업하려는 사람이 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고 전했다. 

정부는 ‘통계작성 방식변경’을 이유로 들었다. 강신욱 통계청장은 “고용 예상 기간 질문이 추가되면서 과거 기준으로 정규직에 포함됐던 35~50만명이 이번에 비정규직에 들어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근거로 해도 비정규직이 늘어난 건 사실이다. 

기승전‘최저임금’ 탓이다. 동아일보는 2면 “기업들, 최저임금 등 부담에 정규직 줄여…고용의 질 나빠졌다”에서 “최저임금 인상과 경기 부진으로 기업들이 정규직 채용을 줄이고 시간제와 기간제 근로자를 늘린 때문으로 풀이된다”며 “정부가 노인 일자리를 중심으로 한 공공근로를 늘리면서 비정규직 채용이 증가한 측면도 있다”고 주장했다. 

▲ 30일 동아일보 2면
▲ 30일 동아일보 2면

한겨레는 최저임금을 하나의 원인일 수 있다는 정도로만 썼다. 한겨레 기사를 보면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은 “상시지속적 일자리 증가, 정규직화 등이 지난 대선 주요 일자리 공약이었는데, 정부 대책이 공공부문에 한정된 측면이 있었다”며 “최저임금 인상과 노동시간 단축, 자발적 유연근로제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친 결과로 보인다”고 말했다. 

힘든 건 비정규직인데 해법은 ‘기업 기살리기’였다. 중앙일보는 4면 “최저임금 급격한 인상 따른 악순환…기업 기살리는 정책 절실”에서 박영범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 신문에 “일방적인 친노동정책은 시장을 왜곡하고 부작용만 양산한다”며 “근로자를 고용하는 주체는 기업인만큼 기업의 기를 살리는 쪽으로 일자리 정책의 전면적인 전환이 절실하다”고 했다. 

세계일보는 현 정부정책을 반시장정책으로 규정했다. 사설 “역대 최대 비정규직 통계 보고도 反시장정책 고수할 텐가”에서 “이런 고용 성적표는 반기업 정책이 초래한 ‘일자리 참사’임이 분명하다”며 “진단이 정확해야 기업 투자를 일으켜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정책 쇄신이 가능할 게 아닌가”라고 했다. 

기업의 기를 살리는 건 해법이 될 수 없다. 기업 입장에서는 노동자를 저임금으로 고용하면서 해고도 쉽게 하고 싶다. 시장원리에 상충하는 두 가지를 모두 해주자는 뜻이다. 여기서 착취가 발생한다.

정부가 친노동·반기업 정책을 폈는지도 의문이다. 정부가 친노동정책을 폈다면 노동자들이 자유롭게 정규직과 비정규직, 고용안정성과 노동유연성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비정규직이 높은 임금을 받고 퇴직하면 상당기간 실업급여나 재교육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비정규직을 옥죈 기업 편을 더 들어주자는 모순이다.  

다음은 30일 아침종합신문 1면 머리기사 제목이다. 

경향신문 “보잉737 ‘기체 균열’ 전 세계서 53대 발견”
국민일보 “비정규직 87만명 급증 정부가 시장 못이겼다”
동아일보 “의원 30명 늘어나면 세금 700억 더 든다”
서울신문 “27만명 대출부담 덜어주려다가 새 주담대 ‘이자 비용’ 늘어난다”
세계일보 “정규직 줄고 비정규직 폭증…고용 역주행”조선일보 ‘탈원전 한전 “1조 전기료 할인 폐지’”
중앙일보 “‘비정규직0’한다더니 1년새 86만명 늘었다”
한겨레 “비정규직 87만명 급증 ‘숨은 50만명’ 드러났다”
한국일보 “美, 한국군 훈련 각본에 ‘美日정상 통화’ 이례적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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