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조국 사태’에서 불거진 언론불신을 점검·성찰하는 토론회에서 “한국언론은 사실에 충실하면 그것으로 충분한 이유가 되고 변명이 된다는 자기기만에서 깨어나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25일 ‘취재 보도 관행과 저널리즘 원칙의 성찰’이란 주제의 특별세미나에서 “오늘날 주류언론이 제공하는 뉴스란 공중이 자신의 정보환경을 구성하기 위해 활용하는 수많은 재료 중 하나일 뿐”이라고 지적한 뒤 ‘조국 사태’에서의 언론 보도를 가리켜 “한 언론사나 특정 정파의 문제가 아니다. 언론 전체 관행의 문제이고 실천의 문제이고 실천을 지배하는 이념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언론에 대한 불신이 지난 10년간 지속적으로 악화되어 왔다고 설명하며 “언론계에는 사실이면 뉴스가 된다는 명제가 있는데, 이 명제는 참일 가능성이 높지만 이 명제가 무차별적인 성찰 없는 보도 행위의 근거가 된다”고 우려했다. 예컨대 이준웅 교수는 조국 전 장관 딸의 동양대 표창장 관련 보도를 전형적인 문제적 보도로 가리키며 “표창장 보도할 때 나왔던 수많은 증언과 사실들이 남김없이 뉴스가 되었다. 모두가 표창장을 쫓아다녔다”고 꼬집었다. 

이 교수는 “한국언론은 ‘사실이면 뉴스가 된다’는 명제가 과도하다. 그 결과 한 조각의 사실도 보도한다. 발생적 사건의 주요한 사실이 아닌 경우가 많다. 또 검찰 등 공무원들이 흘리는 모든 발언은 사실이며 뉴스라고 배워왔다. 사실을 보도하는 게 뉴스지만 이제는 그것에만 의존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언론의 문제는 몰아치기다. 사실의 일부를 선별적으로, 윤색적으로 쓴다. 이 같은 관행은 공중의 이해를 돕기보다는 언론이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쓰는 수법이다”라고 비판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지난 9월2일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진행하며 기자들 앞에 인사하는 모습. ⓒ연합뉴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지난 9월2일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진행하며 기자들 앞에 인사하는 모습. ⓒ연합뉴스

이 교수는 “미국에서 매카시즘이 등장한 것은 의견과 사실의 분리라는 객관주의 실천 관행을 미국언론이 준수한 결과다. 지금은 권력 비판과 해석적 언론, 분석적 언론이 주류가 되었다”며 “한국언론이 왜 몰아치는 보도, 노골적으로 자신의 당파성을 실천하는 보도를 할까 생각해보면 아직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 뒤 “권력 비판을 위해 단순 사실을 모으는 것보다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 교수는 “기사의 훌륭함은 사회적 기능에 있고, 주제의 중요성에 있고, 구성이 짜임새에 있고, 묘사의 절묘함에 있고, 이야기로서 전개와 반전에 담겨있다”면서 “한국언론은 사실 보도라는 사소한 성취에 만족하는 버릇을 버려야 한다. 사실확인이라는 가짜 목표를 버려야 한다. 사실에 충실하면 그것으로 충분한 이유가 되고 변명이 된다는 자기기만에서 깨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언론인이면서 언론을 혐오하고, 언론의 배경이 되는 공중을 불신”하는 언론계의 분위기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박영흠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는 이날 발제에서 △한국일보 ‘조국 딸, 두 번 낙제하고도 의전원 장학금 받았다(8월19일) △채널A ‘부산대 의전원 소개서 5만원에 팔아’(8월21일) △TV조선 ‘조국母, 손녀 유급 직후 그림 기증…다음 학기부터 장학금 받아’(8월21일) △조선일보 ’빠른91년생 조국 딸, 의전원 지원한 해 주민번호 바꿔 생년월일 7개월 늦춰(8월22일) △한국경제 ‘조국 딸 유급위기 때 동기 전원 이례적 구제’(8월22일) △SBS ‘동양대 “조국 딸 총장상 자료 없다”…맞춤 수여 의혹’(9월4일) △SBS ‘조국 아내 연구실 PC에 총장 직인 파일 발견’(9월7일) △KBS ‘검찰 “봉사기간·날짜 등 표창장 내용도 거짓”…조력자 추적’(9월7일) △조선일보 ‘조국가족의 동양대 표창장 위조 수법, 영화 기생충과 닮았다’(9월17일) △채널A ‘정경심 처음 봤다던 병원장은 서울대 동기였다’(9월21일) 등을 문제적 기사로 꼽았다. 

검찰 출입기자 경험이 있는 박영흠 교수는 언론계의 단독경쟁 문화를 비판하면서도 “KBS법조팀이 김경록PB 인터뷰 이후 검찰에 확인한 취재 관행에 대한 비판은 과도하다. 8월20일 동아일보의 조국 후보자 딸의 의학논문 1저자 보도도 문제가 없었다. 이후 무차별적인 의혹 보도가 문제”라고 지적했으며 “언론이 검찰 관점에서만 사건을 보도한다는 문제도 많지만 검찰 취재 전부를 싸잡아 비판해선 곤란하다”고 밝혔다. 

이날 토론자로 나선 성한용 한겨레 기자는 “독자와 시민들에게 죄송하다”고 말하면서 “취재가 부족했던 부분은 반성하지만 알릴레오처럼 우리가 그런 주장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나 한겨레 독자들은 그런 걸 요구한다”며 현장에서의 고민을 전했다. 박건식 전 한국PD연합회장은 “과거부터 유지해온 언론의 생산자 관행이 문제다. 출입처가 핵심이다. 출입처는 감시해야 하는 권력과 동화·유착되는 곳이다”라고 주장하며 검찰기자들이 권력화되었다고 비판했다. 이날 토론회는 한국언론정보학회가 주최하고 MBC가 후원했다. 언론정보학회 측은 “이번 토론회 섭외과정에서 11명이 거절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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