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천황이 맞는 걸까. 아니면 일왕이 맞는 걸까.

이낙연 국무총리가 오는 22일 열리는 나루히토 일왕 즉위식에 정부 대표로 참석할 예정이다. 경색된 한일관계의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지 주목되는 가운데 자연스레 일왕 호칭 문제도 나온다.

우선, 일왕 호칭 사용에 대한 정부와 언론 보도의 차이가 두드러진다.

정부는 일본 ‘천황’이라는 호칭을 공식 사용했다. 13일 국무총리실은 보도자료를 통해 “이낙연 국무총리는 일본 나루히토 천황 즉위식 행사 참석을 위해 10월22일(화)~24일(목) 간 일본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부분 언론은 보도자료 원문을 그대로 인용하면서도 기사 본문에는 ‘일왕’이라는 표현을 썼다. 심지어 총리실 보도자료에 나온 ‘천황’이라는 표현을 ‘일왕’으로 바꿔 보도한 언론도 있다.

정부가 사용하는 공식 명칭은 ‘천황’이지만 국민 정서를 감안해 언론은 ‘일왕’이라고 표기하는 경향이 강한데 이번 일왕 즉위식 소식에서도 일왕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 것이다.

총리실이 발표한 보도자료를 인용하지 않은 이상 ‘천황’ 즉위식을 ‘일왕’ 즉위식으로 표기하는 것이다. 조선일보도 사설에서 “일왕 즉위식은 한일관계 실타래를 풀어내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한겨레와 중앙일보, 경향신문 등도 사설에서 일왕 즉위식이라고 표기했다. 동아일보는 총리실 보도자료를 인용하면서 “나루히토 천황(일왕식 일본식 표기)”라는 설명을 달기도 했다.

▲ 지난 5월1일 일왕에 즉위하는 나루히토 왕세자(오른쪽)와 부인 마사코 왕세자비.
▲ 지난 5월1일 일왕에 즉위하는 나루히토 왕세자(오른쪽)와 부인 마사코 왕세자비.

 

총리실은 이낙연 총리 일본 방문 동행 취재 여부에 대한 협조 공문 요청을 보낸 공문에서도 “이낙연 국무총리가 10월22일부터 24일까지 2박3일간 천황 즉위식 참석차 일본을 방문 예정”이라면서 “이 총리가 참석하는 공식일정은 10월22일 천황 즉위식 및 궁정연회, 10월23일 아베총리 주최 만찬”이라고 밝혔다.

공문을 받은 언론사 기자들 사이에선 ‘천황’이라는 표현을 대외로 발표되지 않는 공문에서 쓸 필요가 있냐는 문제제기가 나오기도 했다. 한 기자는 “언론 보도에서 되도록 천황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있는데 이런 공문에서조차 천황 즉위식이라고 하는 게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에 총리실 관계자는 “이번에 천황 즉위식에 총리가 참석하는 문제로 저희도 천황이라는 호칭 사용에 대해서 고민을 했다”며 “외교부에 요청해 공식 답변으로 천황으로 호칭하는 것으로 했다. 공문서에서 표기할 때 김대중 정부 당시 입장에 준해 상대국이 불러온 직함대로 국제적인 외교 관례상 쓰기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대중 정부 천황 공식 호칭 사용은 1998년 9월 당시 청와대 대변인이 천황이라는 표현은 일본 내에서 일반으로 사용하는 명칭이고 있는 그대로 호칭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한 것에 따른 것이다.

정부는 해방 이후 천황과 일왕을 섞어 사용해왔는데 김대중 정부에서 천황을 공식 호칭으로 사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정부 공식 호칭으로 굳어졌다. 노무현, 이명박 전 대통령 역시 천황이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취임 2주년 특집 대담 당시 일본 천황이라는 표현을 썼다.

다만, 언론은 천황 대신 일왕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일본에서 사용하는 표현을 그대로 불러주고 가치 판단 없이 일반 명사로 사용하는 게 맞다는 의견도 있지만 전범국가였던 일본의 왕을 결과적으로 높여부르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며 정부 공식 호칭도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천황 호칭 사용은 정치권에서도 논란이 됐다. 지난 11일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는 “일본 천황 즉위식에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참석할 것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이어 기자들이 천황 표현에 대한 질문을 하자 “국가 원수 직위는 그 나라에서 부르는 대로 존중해준다는 뜻이다. 교황을 교왕이라고 부르지는 않지 않나”라고 말했다.

그런데 일부 언론은 손학규 대표의 발언을 전하면서 천황이라는 표현을 일왕이라고 바꿔 보도했다. 발언자의 원문 워딩을 따르지 않고 수정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그리고 손학규 대표는 1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천황 즉위식은 일본 국민 모두가 새 천황 즉위를 축하하고 기쁨을 나누는 행사”라며 문 대통령이 직접 참석할 것을 재차 제안했다. 언론이 바꿔 보도하는 상황에서도 천황이라는 표현을 고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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