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계 뿌리깊은 ‘노동 혐오’ 프레임을 해소하기 위해 노동 전문 보도 인력이 필요하고 노동 인권 보도 준칙 보완 등 언론인 스스로 집단적 고민에 나서라는 충고가 나왔다. 노동을 인간의 생존과 분리해 생산비용으로만 보는 편협한 시각이 만연한 점은 근본 과제로 지적됐다.

이같은 평가는 11일 오후 언론인권센터가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주최한 ‘노동인권보도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토론회에서 나왔다. 언론인권센터 모니터팀, 김동원 한국예술종합학교 방송영상과 강사가 발제자로 노동인권 보도를 평가했다. 권오훈 사회공공연구원 이사,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겸임교수 및 이정신 MBC 기자, 전종휘 한겨레 기자가 토론자로 나섰다.

고유명사 ‘민주노총’ 조차 제대로 쓰지 않는 게 현재 언론 수준이다. 민주노총은 경제·보수지를 포함한 대다수 언론에서 민노총이라 표기된다. 김동원 박사는 이를 “‘민주’는 1987년 6월 노동자 대투쟁을 통해 획득해 어용노조와의 분명한 차별성을 드러내고, 임금인상 등 단순 경제적 이익만을 추구하지 않는단 의지 표명”이라며 “민주노총이 거부하는 약칭을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건 특정 목적을 담은 의도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11일 오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언론인권센터가 주최한 ‘노동인권보도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토론회가 열렸다. 사진=손가영 기자
▲11일 오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언론인권센터가 주최한 ‘노동인권보도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토론회가 열렸다. 사진=손가영 기자

 

‘뭘 해도 노조 탓’ 식의 이중잣대는 최근 부쩍 늘어난 보도다. ‘비정규직 정규직화’ 문제가 이슈화되면서다. 예로 지난 6월 MBN 등 일부 언론은 현대중공업 노조가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 노조 가입 운동을 벌이자 ‘세불리기’라 힐난했다. 평소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격차 책임을 ‘대기업 정규직 노조’에 물으면서 노동자 간 갈등을 키우는 동시에,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 노조와 연대해도 비판 보도를 낸다. 

모니터팀은 언론이 쓰는 ‘무소불위 민주노총’ 구호의 허구성도 지적했다. 팀원 임지수씨는 “민주노총이 남용하는 권력이 검찰의 권력과 같을까. 노동계는 20년 전 경영상 이유로 허용했던 파견제도와 외주화 문제로 여전히 씨름하고 있다”며 “공권력이 노조를 제압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근거로 무소불위라고 하는데 법에 허용되지 않은 집회를 했다고 그리 말할 수 있느냐. 무소불위면 파업이나 시위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6월3일 한국경제 1면 "‘무소불위’ 민노총 … 53개 정부委서 국정에 입김" 기사. 디자인=이우림 기자
▲6월3일 한국경제 1면 "‘무소불위’ 민노총 … 53개 정부委서 국정에 입김" 기사. 디자인=이우림 기자
▲2012년 서울 정동 민주노총 건물에 붙은 취재금지 언론사(왼쪽)와 지난달 민주노총 정기대의원대회 기자석에 붙은 취재제한 언론사들. 왼쪽엔 조중동과 4개 종편이 모두 들어갔지만, 오른쪽엔 종편 JTBC가 빠지고 문화일보와 매일경제가 추가돼 있다.
▲2012년 서울 정동 민주노총 건물에 붙은 취재금지 언론사(왼쪽)와 지난달 민주노총 정기대의원대회 기자석에 붙은 취재제한 언론사들. 왼쪽엔 조중동과 4개 종편이 모두 들어갔지만, 오른쪽엔 종편 JTBC가 빠지고 문화일보와 매일경제가 추가돼 있다.

 

김동원 박사는 크게 △노동 보도준칙 무시 △협소한 독자 설정 △노·사 출입처 제도 불균형 등 3가지 문제로 정리했다. 한국기자협회는 인권보도준칙에 ‘노사 관계에 편파적인 보도나 헌법상 기본권(단결·단체행동·교섭권)을 무시하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거나 ‘기업의 입장에서 사용하는 용어를 일반화하지 않는다’는 규칙을 둔다. 민주노총이 발표한 보도준칙은 이보다 더 구체적이고 강경하다. 김 박사는 "인권보도준칙은 언론인 스스로 보도를 평가하는 기준인데 이마저 실행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김 박사는 기자들이 사용자 집단과 회사 데스크, 다른 매체 기자들을 노동보도 독자로 두는 점을 짚었다. 그는 “기자들이 수집된 사실을 누구의 관점을 공유하며 재구성하는가”라 물으며 “노동보도는 뉴스가 될 사건의 아이템을 편견과 가치 판단 개입 없이 정확히 수집해 전달하는 '사실 기반 저널리즘' 조차 잘 지켜지지 않는 분야”라고 밝혔다.

기업이나 전국경제인연합회 같은 사용자 단체 출입 취재 문화는 활성화됐지만 노동조합이나 비정규직 노동자 영역은 그렇지 않다. 김 박사는 “출입처 관계자들은 기자들과 공식, 비공식적 관계를 맺는데 (노조 등은) 출입처를 운영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언론사도 일상적 출입처라 간주하지 않는다”며 “이 사회적 자본 차이가 언론보도 차이로 이어진다”고 평했다.

인간 없는 노동 “너 없어도 일할 사람 많다”

언론의 노동 분야 취재엔 ‘인간성에 대한 고민이 없다’는 근본적인 지적도 나왔다. “‘젊음은 소중하지만 젊은이는 소중하지 않다’는 말처럼 노동은 생산력에 있어 중요하지만 노동자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너 없어도 일 할 사람 많다"는 흔한 말과도 통한다. 김 박사는 “노동문제는 사회 총자본 내 각 산업 섹터의 연관성, 글로벌 경쟁상황, 해당 산업 내부의 경쟁과 가치 사실 등 다양한 충위 요인이 작동하는 구체적인 현상인데, 노동 정책 보도에선 노동은 노동자가 없는 생산요소, 생산비용으로서만 등장한다”고 비판했다.

토론자 권오훈 이사는 이에 “구의역·강남역 스크린도어 사망사고 당시 시신을 처리하고 사고를 수습하는데 몇 분이 걸렸을까”를 물었다. 강남역 경우 15분, 구의역은 30분이 걸렸다. 30분 이상 열차가 지연되면 열차 사고로 간주돼 경영평가 점수가 깎인다. 권 이사는 “한국은 열차 정시운행률 세계 1위다. 부품 갈아 끼듯, 사람이 죽든 말든 열차가 제 시간에 가야 한다는 식”이라 덧붙였다.

▲11일 오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언론인권센터가 주최한 ‘노동인권보도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토론회가 열렸다. 사진=손가영 기자
▲11일 오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언론인권센터가 주최한 ‘노동인권보도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토론회가 열렸다. 사진=손가영 기자

 

전종휘 기자는 노노갈등 보도와 관련해 “자본의 이윤 추구 욕망을 감추고 노동자의 문제로 모든 걸 설명한다”고 비판했다. 전 기자는 “비정규직 고용은 동일노동 동일임금에서 벗어나 (싸게 인력을 써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의 끊임없는 욕망인데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갈등으로 치환한다”며 “GNI 지수로도 가계 소득이 기업 소득으로 꾸준히 이전된 게 확인되고 노동소득분배율도 줄고 있는데 자본의 문제를 감추는 보도”라 지적했다.

이정신 기자는 기자들이 ‘대란’ ‘불편’ 등 어구를 쓰게 되는 현실을 짚었다. 이 기자는 “파업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않는 것을 분명히 전제로 두면, 실제 노동조합이 ‘대란’이란 표현을 쓰기도 하고, 실제 그만큼 업무가 마비되기도 한다. 노조 협상력에 도움되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김 박사는 대안으로 언론계의 집단적 성찰과 노동 전문 인력 육성을 들었다. 그는 “각 언론사 노조가 이 문제 토론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노동 문제 분석을 위한 다양한 전문가 풀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며 “사회부·산업부 등이 아닌 노동전담팀을 지속적으로 운영하고, 산별노조 차원의 기자 간담회나 소통 채널을 정례화하는 것도 방법”이라 제안했다.

권 이사는 “파업이 아니라 ‘단체교섭’ 자체에 집중하는 보도가 필요하다”며 “파업 발생을 알리는 일기예보식 보도가 많은데, 파업 전의 교섭 과정이나 노동위원회 조정에만 2개월 이상이 걸린다. 언론인들이 이 과정에 충분히 관심을 갖고 연구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그는 또 국가인권위원회와 기자협회가 보도 준칙에 노동 인권 분야를 신설하고, 노동단체들도 언론에 대한 불신을 접고 협력을 강화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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