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비 250억원을 투입한 블록버스터 드라마 SBS ‘베가본드’ 첫 방영일부터 시청자들은 눈살을 찌푸려야 했다. 1시간 분량의 드라마 한 편을 3부로 쪼개 20분마다 유사 중간광고(PCM : Premium Commercial Message)를 넣어서다. 지상파 드라마 한 회 분량을 3부로 나눈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전처럼 정상적인 편성으로는 대작을 방영하기 힘들어진 상황을 방증한다.

지상파 광고매출은 추락하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매년 발표하는 방송사업자 재상상황 공표집을 분석하면 지상파 방송사 광고 매출은 2006년 2조5255억원에 달했으나 2018년 1조3007억원으로 반토막났다. 2006년 지상파는 전체 방송광고시장의 75.8%를 차지했으나 지난해 44.6%까지 떨어졌다. 방송사별로 나눠보면 KBS 광고매출은 2002년 기준 7352억원에서 2017년 3666억원으로 떨어졌다. 같은 기간 MBC의 경우 6584억원에서 2926억원으로, SBS는 5888억원에서 3729억원으로 줄었다. 결국 KBS와 MBC는 ‘적자’로 돌아섰고 SBS의 적자 가능성도 점쳐진다.

▲ SBS 드라마 배가본드 회짜 쪼개기 화면.
▲ SBS 드라마 배가본드 회짜 쪼개기 화면.

가상광고 도입, 간접광고 확대에 이어 2015년 광고총량제 규제완화가 단행됐고 2017년 ‘유사 중간광고’를 도입했음에도 광고 실적 개선은커녕 추락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무리수 광고 넘쳐나고 콘텐츠 경쟁력도 떨어져

정상적인 광고 영업이 안 되니 틈새 곳곳마다 변칙적인 광고가 넘쳐난다. 지상파의 끈질긴 요구에도 중간광고 도입이 이뤄지지 않자 2016년 12월 SBS가 ‘K팝스타6’의 방영시간을 90분에서 110분으로 확대 편성한 후 1부와 2부로 쪼개고 그 사이에 ‘유사 중간광고’를 내보냈다. 이어 MBC와 KBS가 같은 시도를 하기 시작했고 드라마 회차 쪼개기로 이어졌다. 한 프로그램 도중에 광고를 넣는 게 아니라 짧은 프로그램 2회차를 만들기 때문에 방송통신위원회도 제재하지 못한다.

그나마 ‘유사 중간광고’는 콘텐츠 내용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양호한 편이다. 지상파가 방송을 제대로 볼 수 없을 정도로 협찬과 간접광고를 쏟아내면서 콘텐츠인지 광고인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가 됐다.

지상파 드라마 주인공이 집에 있을 때는 어김없이 특정 브랜드의 정수기, 에어컨, 공기청정기, 청소기를 사용하는 모습이 나온다. 극중 상견례를 뜬금없이 돈가스 집에서 해 커뮤니티 유머 게시판에 올라온 적도 있다. KBS드라마 ‘다 잘될거야’는 건강식품 매장이 등장하는데 10여개의 제품을 진열한 모습 뒤로 광고주 기업의 대표를 직접 출연시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제재를 받기도 했다.

▲ 서울YMCA 시청자시민운동본부 모니터 보고서 갈무리.
▲ 서울YMCA 시청자시민운동본부 모니터 보고서 갈무리.

이제 간접광고는 대본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 MBC 드라마 ‘부잣집 아들’의 주 무대는 ‘이바돔 감자탕’ 매장으로 주인공들이 이 곳에서 일한다는 설정이다. KBS ‘하나뿐인 내편’은 주인공이 ‘본죽’의 비서실에서 일한다는 설정이다. 서울YMCA 시청자시민운동본부가 지난해 10월1일부터 14일까지 방영된 지상파 드라마 18개를 모니터링한 결과 14개 드라마 주인공들의 직업이 광고주(협찬 포함)와 관련 있었다.

지상파 관계자 A씨는 “협찬 영업이 업무가 된 지 오래다. 제작진으로서는 부자연스러운 점이 신경 쓰이지만 제작비를 감당하려면 어쩔 수 없다”고 했다. 2016년 한국PD연합회가 지상파3사 PD 32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인식조사에 따르면 지난 5년간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협찬 또는 간접광고 유치를 위해 뛴 적 있다는 PD는 43.7%였다. 지상파3사 PD의 89%는 협찬, 간접광고가 방송 프로그램의 내용과 품질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답했다. 

줄어든 광고가 투자 여력을 줄이고 새로운 실험을 가로막으면서 콘텐츠에도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시청률이 떨어져 폐지설까지 제기된 KBS ‘개그콘서트’의 혁신 방향은 ‘과거 회귀’였다. 10여년 전 방송했던 ‘생활 사투리’ 등 코너를 당시 출연자들과 함께 부활시켰다.  MBC는 밤 10시 시간대에 10년 전 방영된 드라마 ‘하얀거탑’의 리마스터판을 내보냈다. ‘드라마 왕국’을 자부하던 지상파 방송사들은 앞다퉈 제작비가 많이 드는 드라마 편성을 축소하고 있다. 

왜 지상파 광고가 급감했을까

지상파 광고가 줄어드는 이유는 시청자로부터 외면을 받고 있기 때문이라는 건 누구나 안다. 시청자는 왜 지상파를 외면하고 있나. 지상파는 크게 발전하지 않거나 오히려 퇴보하는 가운데 다른 볼거리가 많이 늘었기 때문이다. 지상파 관계자 B씨는 “규모에 비해 너무 많은 광고 기반 매체들이 짧은 시간 안에 많이 생겨나면서 극심한 레드오션시장이 된 게 핵심”이라고 했다. 

방송 외적인 측면에서는 유튜브로 대표되는 뉴미디어 플랫폼이 급성장했다. 이제는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대기업 광고 콘텐츠를 제작하는 일이 낯설지 않다. ‘2018년 방송통신광고비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인터넷(PC)과 모바일을 합한 온라인광고비는 4조7751억원 규모다. 지상파 방송은 물론 유료방송채널, IPTV 등을 합친 전체 방송 시장 규모보다 크다. 

B씨는 “광고주 입장에서는 온라인서비스는 명확하게 효과 측정이 가능한 반면 방송은 수치로 효과를 보여주기 힘드니 비싸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이 경향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이름 들으면 알만한 대형 광고주들이 더 이상 TV 광고를 하지 않는 경우들이 허다하다”고 토로했다.

▲ 지상파 3사 사옥.
▲ 지상파 3사 사옥.

방송업계 내에서는 한정된 파이를 가져가는 경쟁자가 많아졌다. 지상파를 벗어나 채널을 돌리면 볼 게 없다는 건 옛말이다. 특히 비좁은 방송광고 시장에 종편을 4개사나 출범시키면서 적지 않은 지상파 방송사의 파이가 종편으로 빠져나갔고 CJENM이 궤도에 올랐다. 이들 방송사는 참신하고 차별적인 콘텐츠를 연달아 선보이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2018년 기준 종편4사 광고매출은 4481억원으로 주요 지상파 1개 채널을 압도할 정도다. 또한 CJENM계열 채널의 합산 광고매출은 지상파 방송사와 대등한 규모를 보이고 있다.

시청자들이 종편과 CJENM 콘텐츠를 선호하는 이유는 지상파 콘텐츠가 경쟁력이 떨어지는 탓이 크지만 전부는 아니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같은 조건에서 경쟁하는 게 아니라고 하소연하며 비대칭규제 개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지상파는 유사중간광고를 도입했음에도 줄기차게 중간광고 도입을 요구해왔다.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코바코) 관계자는 “중간광고는 시청자가 가장 궁금해 하는 시점에 잘라  광고를 편성할 수 있다”면서 “반면 PCM은 절반 분량을 인위적으로 자르기 때문에 긴장감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지상파가 유사 중간광고를 하고 있음에도 중간광고 도입을 끊임없이 요구하는 이유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광고 판매 방식도 주요 지상파 방송사에는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CJENM은 광고를 직접 영업한다. 반면 종편과 지상파는 ‘미디어렙’이라는 회사를 통해 영업한다. 이 중에서도 종편과 SBS는 해당 방송사의 자회사를 통해 영업하는 반면 KBS와 MBC는 코바코가 영업을 대행한다. 코바코와 SBS의 미디어렙인 광고 영업 때 지역방송 및 종교방송과 묶어 파는 ‘결합판매’를 하는 반면 종편은 자사의 광고만 팔고 있다. 즉 KBS·MBC, SBS, 종편, CJENM 순으로 광고영업에 제약이 크다. 지상파 관계자 D씨는 “CJENM이나 종편은 여러 채널, 여러 종류의 미디어를 패키지로 묶어서 광고 영업을 할 수 있는 점도 차별적”이라고 지적했다.

경영 문제도 있다. 지상파가 방만하게 운영되는 데다 독점 사업자로서 오랜 기간을 보내다보니 경쟁적 환경에 맞는 역량을 보여주지 못했다. 지상파 방송사들이 임금체계 및 조직개편을 추진하고 있지만 구성원들의 반발을 고려해야 하기에 쉽지 않다. 지상파 관계자 C씨는 “지상파 조직이 운영, 기술쪽 인력이 많은 등 올드하고 비효율적이라 콘텐츠에 힘을 쓰지 못한다”고 했다. 그는 “기본 임금 자체가 높다보니 보상체계가 제대로 안 갖춰진 점도 문제다. 지상파에서 경력을 쌓아서 유료방송에 거액 계약을 하며 떠나는데 잡을 방법이 없다. 인력이 떠나면 콘텐츠 경쟁력이 떨어지고 그러면 광고 경쟁력도 떨어지는 악순환이 이어진다”고 했다.

이 와중에 UHD 방송 도입과 같은 정책 ‘오판’은 불난 데 부채질하는 격이 됐다. 주 52시간제 도입, 외주제작 상생정책이 추진되면서 이전보다 지출이 늘어나게 된 변화도 있다. 이들 정책은 건강한 노동환경을 만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지만 이전 정부 때보다 현 정부에서 지상파 경영진이 더 많은 책무를 요구받는 것도 사실이다.

▲ 방송 광고매출 추이. CJ는 계열채널 종합 (클릭하면 확대된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 방송 광고매출 추이. CJ는 계열채널 종합 (클릭하면 확대된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 광고매출 추이. (클릭하면 확대된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 광고매출 추이. (클릭하면 확대된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새로운 질서가 필요하지만

중간광고가 해답이 아니라는 건 지상파도 알고 있다. 한때 지상파 3사에 연 2000억원까지 추가 수익을 안겨다 줄 것으로 전망되던 중간광고 수입 추정치는 500억원 수준까지 떨어졌다. 지상파 관계자는 “광고가 잘 팔리는 프로그램은 이미 다 PCM을 하고 있다. 중간광고가 PCM보다 효과가 큰 걸 감안해 각 사별 150억원씩 추가 수익이 난다는 전망이 나온다”고 했다. 물론 이 중간광고 도입 여부도 불투명하다.

미디어렙 제도 개선도 ‘지지부진’하다. 사업자 간 이해관계가 치열한 상황에서 ‘현상 유지’가 이어지고 있어서다. 종편에도 결합판매를 하는 방안은 종편이 반발할 가능성이 큰 데다 지상파가 아닌 방송사에 이를 강제하는 것도 쉽지 않다. 방송사에 온라인 광고를 허용하려니 온라인 광고업계의 반발이 있다. 각 사별로 미디어렙을 운영하는 방향으로 규제를 개선하더라도 지상파 내부에서 이해관계가 엇갈린다. 광고 경쟁력이 떨어지는 지역, 종교 지상파 방송사들은 현행 체제를 선호한다. OBS의 경우 SBS미디어크리에이트와 묶이면서 코바코 시절보다 결합판매 비율이 줄어들어 경영난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지상파 방송사 이슈는 정치논리에 묶여 진전을 내지 못하는 면도 있다. KBS가 수신료를 대폭 인상해 상업광고를 편성하지 않으면 공영성을 강화하고 다른 방송사들에게 추가 광고 수입을 안겨다 줄 수 있지만 수신료 인상은 항상 ‘야당’이 반대해왔다. 방통위가 지상파 중간광고 도입을 추진하자 한국당은 중간광고 금지 법안을 내놓으며 제동을 걸기도 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이 2018년 작성한 ‘중장기 방송광고 규제체계 개편 및 관련법령 개선방안 연구’는 방송광고 활성화를 위해 광고규제를 미국처럼 ‘네거티브’ 방식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네거티브’규제는 법이 금지라고 못 박지 않은 광고를 전면 허용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유형의 광고를 적극 도입할 수 있어 지상파 방송사들에도 보탬이 될 전망이다. 그러나 광고의 총량이 늘어나고 시청권 침해 소지가 있고 법 체계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점에서 현실성은 낮다.

지상파 광고 위기는 단순히 개별 정책으로 정할 게 아니라 중장기적인 방송정책의 방향성 설정과 맞물려야 한다. 더 이상 전파로 방송을 보지 않는 시대에 지상파에 지상파로서 책무를 부여하는 게 부적절하다는 지적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아울러 OTT 등 새로운 서비스를 어떻게 규정할지, 이들과 관계를 어떻게 보고 합종연횡을 어디까지 가능하게 할지도 살펴야 한다.

▲ 지난달 방통위의 지상파 사장단 간담회. 한상혁 방통위원장이 양승동 KBS사장·최승호 MBC사장·박정훈 SBS사장과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 ⓒ방송통신위원회
▲ 지난달 방통위의 지상파 사장단 간담회. 한상혁 방통위원장이 양승동 KBS사장·최승호 MBC사장·박정훈 SBS사장과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 ⓒ방송통신위원회

특히 방송의 경우 지상파라는 지상파와 유료방송이 아닌 공영과 민영으로 분류해 수신료 재원 중심의 공영방송을 강화하되 이외의 방송들은 같은 수준의 규제를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강정수 전 메디아티 대표는 지난해 슬로우뉴스 기고글을 통해 방송의 공적 기능을 KBS에 집중하는 대신 민간사업자는 통신사나 인터넷기업과 결합이 가능한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코바코의 소멸도 적극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단순히 지상파를 먹여 살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산업구조 변화에 따른 대응이 필요한 순간이지만 정부가 보이지 않는다. 시행령 개정 권한이 있음에도 중간광고 도입조차 결정하지 못하는 방통위가 큰 그림을 그릴 수는 없다. 박근혜 정부 때 미래창조과학부로 쪼개진 미디어 기구는 통합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방통위 차원에서 방송광고균형발전기구를 마련해 자문을 받고 있지만 매번 비슷한 논의가 반복되고 결론은 나지 않는다. 김대중 정부 때 ‘방송개혁위원회’같은 기구를 만들어 매체 환경 급변 시기 중장기 정책을 논의해야 한다고 언론시민단체들이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는 묵묵부답이다. 

※ 원고는 본지 금준경 기자가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월간 매거진 '신문과 방송' 기고자로 참여해 작성한 글입니다. 신문과 방송 10월호에 실렸습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