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가 MBC 계약직 아나운서 사건을 직장 내 괴롭힘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은 MBC 사측의 형식적 조치만 보고 ‘면죄부’를 준 것이라며, MBC에 대한 근로감독과 시정조치가 이뤄져야 한다는 요구가 나왔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이정미 정의당 의원은 4일 노동부 판단 이후에도 당사자들에 대한 피해가 이어지고 있다며 이 같이 지적했다.

MBC 계약직 아나운서 7명은 직장내괴롭힘금지법 시행 첫날인 지난 7월16일 전국에서 가장 먼저 진정서를 제출해 ‘직장내괴롭힘 1호 사건’으로 주목 받았다. 지난해 MBC로부터 계약해지를 통보받고 ‘일방적 해고’라 주장했던 이들은 지난 5월27일 근로자지위보전 가처분신청이 인용돼 복직했으나 MBC가 △업무 미부여 △아나운서실(9층) 아닌 별도 사무공간(12층) 배치 △사내 인트라넷 차단 등 조치를 취하자 고용노동부 서울서부지청에 사건을 진정했다.

그러나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은 지난 26일 “회사 조치가 명백히 불합리하다 보여지지 않기에 이를 직장 내 괴롭힘이라 보기 어렵다고 판단돼 사건을 행정종결한다”고 밝혔다. △MBC가 신고 이후 조사위를 구성해 조사를 실시 △조사위 권고안 발표 이후 개선을 꾸준히 시도 △경영상 필요성·인사질서·작업환경 변화 등을 고려할 때 괴롭힘에 해당할 정도로 불합리하지 않다는 이유를 들었다. 노동부가 ‘개선 시도’로 본 것은 MBC가 7월31일 자체 조사위 권고에 따라 2020년 한글날 다큐멘터리 기획 업무를 배정하고, 진정인들을 9층으로 보내는 대신 기존 아나운서실을 사용하던 인원은 12층으로 보내며, 인트라넷 차단을 해제하도록 한 것 등이다.

▲ MBC 계약직 아나운서들이 지난해 5월22일 오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 MBC 계약직 아나운서들이 지난해 5월22일 오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이정미 의원은 “최초 발생한 괴롭힘에 대해서는 어떠한 법률적 판단도 하지 않고 회사 측의 형식적 조치만 보고 괴롭힘이 해소됐다고 판단하여 괴롭힘 사건에 대한 면죄부를 주는 나쁜 선례를 만들었다”며 “괴롭힘으로 인한 신체적 정신적 고통의 유무는 기본적으로 피해자가 판단할 문제인데, 고용노동부는 이를 간과하고 회사 측 조치만을 따졌다”고 비판했다. “고용노동부가 다른 사건들도 이렇게 처리하면 어렵게 통과시킨 직장내 괴롭힌 방지법은 무용지물이 되고 말 것”이라는 우려다.

게다가 진정인들에 대한 괴롭힘은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우선 계약직 아나운서 7인은 아나운서 본연의 업무라 할 수 있는 방송 업무에서 배제돼있다. 아나운서국 소속 39명 중 시사·교양 프로그램 진행은 물론 라디오·숙직 뉴스 등 일체 방송을 하지 않는 인원은 계약직 7인 뿐이다. 이 의원은 과거 MBC에 직접적 물의를 빚었던 인물들조차 마이크를 잡고 있다며 “MBC는 사실상 계약직 7인에는 어떤 경우에도 마이크를 주지 않겠다는 것”이라 지적했다. 실제로 전임 사장 시절 ‘블랙리스트’ 작성해 6개월 정직 처분 받았던 신아무개 아나운서, 부당노동행위 등으로 퇴진요구를 받은 김장겸 전 MBC 사장을 지키고자 자유한국당 주최 토론회에 참석해 “MBC가 없다면 한국당 존재 의미 없다. 태극기 애국단체와 정보도 주고 받고 있다”고 말했던 이아무개 아나운서도 라디오뉴스를 진행 중인 사례를 들었다.

계약직 아나운서들에게 배정된 ‘한글날 특집 다큐멘터리 기획’은 명목상 아나운서국 업무일 뿐 아나운서국 누구도 한 적 없는 업무로 파악됐다. 이 의원실에 따르면 계약직 아나운서들에게 배정된 ‘한글날 특집 다큐멘터리 기획’은 올해 MBC 자회사인 MBC C&I가, 지난해에는 외주제작사(이큐미디어)가 기획·제작을 맡았던 업무다. 이 의원실은 “계약직 아나운서들이 이에 항의하자 MBC 측은 라디오뉴스에 한해서만 현장교육 및 평가 후 성과에 따라 방송에 투입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입사할 때 이미 역량평가를 받았고 입사 후에는 실무교육을 받았으며 실제로 지난 해까지 현업에서 방송을 해 왔던 이들을 다시 평가를 받게 해 쓸지 말지를 결정하겠다는 것은 사실상 고의적인 모욕”이라 지적했다.

▲ 이정미 정의당 의원. 사진=이정미 의원 블로그
▲ 이정미 정의당 의원. 사진=이정미 의원 블로그

앞서 법원은 지난 2014년 근로자지위보전가처분신청이 인용돼 복직한 기자에게 기자실 출입을 금지하고 노트북 제공을 하지 않은 신문사에 기자 업무를 방해했다며 배상을 명령했다. “사용자가 근로자의 의사에 반하여 정당한 이유 없이 근로자의 근로제공을 계속적으로 거부하는 것은 이와 같은 근로자의 인격적 법익을 침해하는 것이 되어 사용자는 이로 인하여 근로자가 입게 되는 정신적 고통에 대하여 배상할 의무가 있다”(2014.7.10.선고 2013라299)는 것이다.

이 의원은 “계약직 아나운서들의 괴롭힘이 실질적으로 해소될 수 있도록 MBC에 대한 근로감독을 실시하고, 판례와 가이드라인에 따라 시정 지시를 명령할 것”을 고용노동부에 요청했다. 또한 MBC를 향해 “(본인은) 지난 10년간 MBC의 정상화를 누구보다 기원하고 이명박 박근혜 정부 당시 MBC 노동조합의 파업에도 연대의 뜻을 함께 해 왔다”며 “계약직 아나운서 문제는 상시지속 업무인 아나운서 직에 비정규직을 채용한 김장겸 사장 등 전대 경영진의 잘못인 만큼 MBC 정상화를 목표로 내건 최승호 사장과 경영진이 이 문제를 전향적으로 해결해 줄 것”을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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