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마항쟁 국가기념일 지정, 습격당했던 KBS MBC
부마항쟁 국가기념일 지정, 습격당했던 KBS MBC
10·26 열흘전 박정희 유신독재 항거…국무회의서 의결 ‘박정희 불법 군출동 지시, 고문 폭행 등 밝혀져’

정부는 40년 전 박정희 유신독재에 항거해 들고 일어난 부마민주항쟁 발생일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했다. 행정안전부는 지난 17일 국무회의에서 부마민주항쟁 기념일 제정을 주요내용으로 하는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 일부개정령안’이 심의‧의결됐다고 밝혔다.

부마민주항쟁 기념일은 10월16일이다. 부마민주항쟁은 부산과 마산의 시민과 학생들이 유신독재에 항거하여 발생한 날을 기념일로 정했는데, 올해가 40주년이 되는 해이다. 부마민주항쟁은 4·19혁명, 5·18광주민주화운동, 6·10민주항쟁과 함께 한국 현대사의 4대 민주항쟁의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당시 부산과 마산지역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부마항쟁 직전엔 정치적으로 1979년 5월 최연소 신민당 총재로 당선된 김영삼 전 대통령이 해외 언론과 인터뷰에서 유신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그해 9~10월 제명당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8월엔 YH무역 노동자 200여명 신민당 당사에서 점거농성하는 일이 벌어졌다.

부마민주항쟁 진상규명 및 관련자 명예회복심의위원회가 펴낸 ‘부마민주항쟁 진상조사보고서(안)’를 보면, 박정희 군부는 당시 항쟁에 참여한 학생 시민들을 불법적으로 연행, 검거한 뒤 고문과 폭행한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다. 부마항쟁의 시작은 1979년 10월16일 부산대 교내 시위였다. ‘유신철폐, 독재타도’ 등을 외치며 교내에서 시위를 전개하던 부산대생들이 시내로 몰려나오자 동아대학교, 고려신학대학 등 부산 지역 대학생들이 동참했다. 여기에 시민들까지 가세하면서 시위는 걷잡을 수 없이 격화됐다. 이틀 뒤인 10월18일 마산의 경남대학교 시위도 이틀 전 시위 소식이 큰 영향을 미쳤다. 

보고서는 부마민주항쟁의 특징으로 학생운동에서 시작해 정치‧경제적 상황과 대통령 직접 선거권을 박탈당한 점에 불만이 컸던 시민들이 동조해 대규모 민주항쟁으로 확산됐다고 평가했다. 참가자들은 학생, 재수생, 공무원, 자영업자, 농부, 회사원, 은행원, 공장 노동자, 단순노무자, 선원, 운전사, 무직자, 실업자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었다.

무엇보다 시위 기간 중 시민학생들은 파출소와 공공기관 뿐 아니라 부산일보, 부산 MBC, KBS 부산방송국 등 언론사를 집중 공격대상으로 삼은 점도 눈에 띈다. 보고서는 10월16일 밤부터 17일 01시까지 약 1만3000여 명의 시위 군중이 부산시청 앞을 비롯한 남포동, 광복동, 부영극장 주변, 국제시장 번화가 일대에서 약 34회에 게릴라 시위를 벌여 파출소 9개소를 파괴했고, 부산일보와 부산MBC 라디오방송국을 습격했다고 전했다. 이튿날엔 동아대생들을 중심으로 저녁 8시55분경 동부경찰서 앞에서도 경찰과 접전을 벌이다 후퇴했는데, 이 과정에서 KBS 부산방송국을 습격했다. KBS 건물 유리창 60장이 깨지고 전화기 2대, TV 1대, TV 중계차가 파손됐다고 보고서는 기록했다.

이를 두고 보고서는 “당시 집권여당이었던 공화당이나 정부의 대변인 역할을 했던 언론사들이 공격 대상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시민들의 정부와 집권 세력에 대한 분노가 상당했음을 알 수 있다”고 평가했다.

▲부산지역에 주둔하고 있던 군 병력 사진이 보고서 140쪽에 실려있다. 사진=부마민주항쟁 진상조사보고서
▲부산지역에 주둔하고 있던 군 병력 사진이 보고서 134쪽에 실려있다. 사진=부마민주항쟁 진상조사보고서

 

보고서는 당시 국내 언론들이 부산 상황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소령급 정훈장교들의 보도검열 탓에 국내 언론은 치안본부 발표문만으로 부산 시위를 소개했다. 다만 보고서는 동아일보만 자세하게 객관적으로 보도했다고 평가했다. 10월18일 동아일보는 치안본부의 발표문과는 별도로 부산지사에서 보낸 기사를 1면에 배치하고 시위의 발단부터 공공기관 습격, ‘유신철폐’, ‘독재타도’ 등 구호를 외쳤다는 내용까지 실렸다.

보고서는 이와 함께 진상규명 활동을 통해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위수령에 의거한 절차없이 특전여단 투입 지시 △부산지역 비상계엄과 마산지역의 병력출동 명령의 적법 절차 위배 △체포권한이 없는 군 병력이 시위참여 민간인을 체포 연행 △합동수사단이 부마민주항쟁 배후로 북한, 야당, 김영삼 등에 짜맞추기식 수사진행 △수사 과정에서 허위 자백 강요와 불법 고문, 폭행 등 가혹행위 존재 △7~15일간 불법 구금 △부산 마산지역 검거 시위자 수 모두 1564명 이상 등의 사실을 새롭게 규명했다고 밝혔다.

한편, 국무총리소속 ‘부마민주항쟁 진상규명위원회’는 관련 지자체, 단체, 각계 전문가 의견수렴을 통해 지난해 9월부터 부마민주항쟁 최초 발생일인 10월 16일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하는 방안을 추진해 왔다. 행안부는 오는 10월 16일 경남 창원에서 제40주년 부마민주항쟁 기념식을 첫 정부행사로 거행할 예정이다.

▲1979년 10월19일 부산역에 집결한 군인들. 보고서 140쪽. 사진=부마민주항쟁 진상조사보고서(안)
▲1979년 10월19일 부산역에 집결한 군인들. 보고서 135쪽. 사진=부마민주항쟁 진상조사보고서(안)
▲부마민주항쟁 진상조사보고서 표지
▲부마민주항쟁 진상조사보고서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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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2019-09-20 21:21:44
역사를 바로잡는 것이 나라의 경쟁력을 키우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