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인터넷 업계에 충격을 준 사건이 발생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이용자 접속 속도를 늦춘 페이스북을 제재했으나 행정소송 결과 제재 처분이 ‘무효’가 됐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자유한국당, 더불어민주당, 바른미래당 의원들은 초당적 협력으로 대안을 찾겠다며 18일 국회에서 정책토론회를 열었다. 

페이스북이 승소한 이유

발단은 페이스북의 접속경로 임의변경 논란이다. 2017년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 이용자들의 페이스북 접속이 원활하지 않아 이용자 불만이 속출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페이스북이 한국 이용자들의 접속 경로를 바꿨기 때문이다. 트래픽 규모가 큰 해외 사업자의 경우 한국 통신사들과 협의를 통해 국내에 캐시 서버를 개설하는 식으로 원활하게 서비스 되도록 운영해왔다.

페이스북은 KT와 계약을 통해 KT에 서버를 만들어 썼고, 다른 통신사 이용자들도 KT망을 통해 접속할 수 있게 했다. 당시 페이스북은 다른 통신사와 서버 증설을 논의하고 있었는데 협상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LG와 SK 이용자 접속경로를 홍콩 서버로 바꾸면서 속도가 느려졌다.

▲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자유한국당, 더불어민주당, 바른미래당 의원들은 초당적 협력으로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며 18일 국회에서 이용자보호제도 마련을 위한 정책토론회를 열었다. 사진=금준경 기자.
▲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자유한국당, 더불어민주당, 바른미래당 의원들은 초당적 협력으로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며 18일 국회에서 이용자보호제도 마련을 위한 정책토론회를 열었다. 사진=금준경 기자.

판결의 최대 쟁점은 페이스북의 행위가 전기통신사업법상 ‘이용 제한’에 해당하는지였다. 방통위는 이용자 피해를 부각했지만 법원은 “이용을 지연하거나 불편을 초래한 행위에 해당할 뿐 이 사건 쟁점조항에서 정한 ‘이용의 제한’에 해당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속도가 늦춰져 이용자의 이익침해가 발생한 건 맞지만 현저하지는 않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근거로 미국의 인터넷 지연 시간이 100ms를 넘는 반면 페이스북의 경우 평균 지연시간이 75ms에 그쳤다고 밝혔다. 또한 법원은 페이스북이 속도를 늦춘 것이 고의성이 있다고 보지도 않았다.

“법원 해석 이용자 관점 빠졌다” 성토

이날 토론회 참석자들은 법원의 판결이 이용자 관점을 반영하지 못했다고 입을 모았다.

최경진 가천대 교수는 “이용자들은 해당 서비스 페이지를 불러오지 못한다는 화면이 뜨고, 페이지가 떠도 콘텐츠가 제대로 안 뜨면 이용이 제한된다고 생각한다. 법원은 단순한 응답 속도만 갖고 판단했는데 서비스 본질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최경진 교수는 “재판부는 사전적 의미를 보는 물리적 해석을 했는데 이 법이 왜 만들어졌고, 환경은 어떻게 변화했는지 등 규범적 해석을 해야 한다. 그래서 법률가가 필요한 것”이라고 했다. 

이종관 법무법인 세종 전문위원은 “유럽, 미국 등 국가의 인터넷 속도를 기준으로 ‘이익 침해가 현저하지 않다’고 판결했는데 한국의 인터넷 속도를 고려했을 때 근거로 보기 힘들다”고 반박했다. 인터넷 속도가 빠른 한국의 지연 시간을 미국과 동등비교 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방효창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보통신위원장은 “협상에 유리하게 하기 위해 이용자를 볼모로 잡아 피해를 야기했다는 게 핵심”이라며 “속도가 떨어질 걸 예측 못했다는 건 소가 웃을 일이다. 속도 예측은 기본적인 상식”이라고 지적했다.

▲ 페이스북 모바일 화면. 사진=페이스북 뉴스룸.
▲ 페이스북 모바일 화면. 사진=페이스북 뉴스룸.

 

국회 “강력한 해외사업자 규제해야”

정부와 정치권은 막강한 해외 사업자가 이용자 피해를 야기한다는 점에서 ‘대응’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변재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대형 글로벌 CP(콘텐츠 사업자) 로부터 이용자를 보호하고 명쾌한 처벌을 위한 법·제도 정비가 시급하다”고 했고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비례)도 “글로벌 CP의 불공정 행위와 이용자 이익침해 행위를 규제할 수 있도록 이용자 중심 보호체계를 확립할 필요성이 높아졌다”고 했다.

박선숙 바른미래당 의원은 “해외 디지털 경제 강자로부터 우리 이용자 권리, 디지털 주권을 지키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경진 무소속 의원은 “크고 힘이 센 황소들을 어떻게 우리 말을 잘 듣도록 할지 끊임 없이 노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최경진 교수는 “유럽연합의 규제 집행력이 강력한 것은 끊임없이 이용자 보호 관점에서 규제를 하고 과징금을 부과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개입한 규제를 확대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해외 대응을 살펴보고 유형화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대리인제 지정을 개인정보 뿐 아니라 전반적인 영역으로 확대하고 국가별 협조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4월 박선숙 의원은 통상마찰 우려를 해소하면서도 이용자 보호 전반에 국내 담당자 역할을 하는 대리인제를 적용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20대 국회는 구글, 페이스북 등 글로벌 IT기업이 사실상 국내 수준의 규제를 받도록 하는 입법을 해왔다. 정부 입법 및 박대출 자유한국당 의원 발의 법안으로 마련된 개인정보 대리인제는 해외 대형글로벌 사업자들이 개인정보보호 담당자를 국내에 두도록 하는 내용이다. 구글 등 글로벌 기업이 부가가치세를 국내에 납부하는 부가가치세법 개정안도 통과됐다. 

인터넷 기업측 “망 사용료 비싼 점도 고려해야”

인터넷 기업측은 해외 사업자 대응 관점이 아닌 통신사와 콘텐츠 제공 사업자 양자 간의 관계에서 사안을 바라봤다. 박성호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사무총장은 “이용자 보호라는 관점에서 보면 아무도 반대하지 않을 것이지만 법원의 신중한 태도도 이해가 간다”고 했다.

그는 “감정적으로 글로벌CP를 제재해야 한다고 접근하기 보다는 배경을 봐야 한다”며 “상호접속고시로 인해 한국이 세계추세에 비해 망 비용이 굉장히 높아 협상이 잘 안 된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판결 직후인 지난달 26일 네이버, 카카오, 구글, 페이스북, 넷플릭스, 티빙, 왓챠 등 국내외 7개 인터넷 사업자들이 공동성명을 내고 “망 비용의 지속적 상승구조를 초래하는 현행 상호접속고시를 국제적 기준에 맞게 개정해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 국내외 CP 사업자들. 디자인=안혜나 기자.
▲ 국내외 CP 사업자들. 디자인=안혜나 기자.

상호접속고시는 통신사끼리 데이터를 주고 받을 때 데이터 발신자 부담 원칙을 골자로 한다. 통상 통신사 간 데이터를 주고 받을 때 별도로 비용을 정산하지 않는 국가가 많은데 한국은 예외적으로 적용했다.

페이스북 접속경로 변경도 상호접속고시와 관련이 있다. 국내 페이스북 접속은 KT가 캐시서버를 만들어 운영했고 LG와 SK는 KT망에 접속해 페이스북에 접속하게 했다. 이 경우 KT가 서버를 제공하고도 비용 부담을 갖게 됐고 KT가 페이스북에 망 이용료를 요구하면서 갈등이 빚어진 맥락이 있다.

박성호 사무총장은 “이용자 보호는 CP(콘텐츠 사업자)와 ISP(통신사)가 공동 주체다. CP가 네트워크를 통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에, 망 품질 유지를 위한 책임을 CP에만 지우는 건 과도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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