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광장에 있을까, 타워 아래에 있을까
우리는 광장에 있을까, 타워 아래에 있을까
[서평] 광장과 타워 / 니얼 퍼거슨 지음/ 홍기빈 옮김 

“우리는 모두 네트워크의 세상 속에 살고 있다. … 음모 이론가들은 여러 엘리트 네트워크가 공식적인 권력 구조들을 은밀하게 또 뜻대로 조종한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나의 연구로 볼 때 전혀 그렇지 않다. … 역사에서 벌어지는 가장 큰 변화들은 비공식적으로 조직된 집단들의 성과물인 경우가 많고, 그 경우 남겨진 문서는 아주 드물 수밖에 없다. … 역사에서 위계의 시기와 네트워크의 시기를 구분해내는 것이 이 책의 의도다.”

위계는 ‘타워’, 네트워크는 ‘광장’이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은 ‘광장과 타워’다. 하버드대 역사학과 교수인 니얼 퍼거슨이 쓴 이 책은 소설처럼 술술 읽힌다. “우리 모두는 필연적으로 하나 이상의 위계 구조에 성원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누군가에게 보고를 해야 한다면, 당신은 위계 조직에 들어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위계 조직보다 더 많은 네트워크에 소속되어 있다. 위계조직들의 세계와 네트워크들의 세계는 서로 만나고 또 상호작용한다.”

▲광장과 타워 / 니얼 퍼거슨 지음/ 홍기빈 옮김
▲광장과 타워 / 니얼 퍼거슨 지음/ 홍기빈 옮김/4만5000원. 

저자가 말하는 역사상 첫 번째 네트워크 시대는 15세기 말 유럽에서 구텐베르크의 활자 인쇄가 도입된 직후 나타나 18세기 말까지 지속됐다. 두 번째는 우리의 시대로 1970년대 이후 시작됐다. 1790년대 말부터 1960년대 말까지는 정반대의 경향이 나타나 위계적 제도가 스스로의 통제력을 확립하고 여러 네트워크를 폐쇄하거나 자기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위계적으로 조직된 권력이 정점에 달한 시점은 20세기 중반으로, 전체주의 체제와 ‘총력전’의 시대다. 

예컨대 총력전의 시대였던 독일 나치 시대에 대한 저자의 평가는 이러하다. 하이퍼인플레이션의 여파로 많은 투표자들이 중도우파 및 중도좌파 정당에서 이탈했다. 히틀러는 1930~1933년 바이러스처럼 퍼졌다. 나치즘은 기존 결사체들의 네트워크였으나 정당은 점점 위계적 조직으로 변해갔다. 1943년 당시 나치 제국은 43명의 주 지도자들, 869명의 군 및 구 지도자들, 2만6103명의 조직 지도자들, 10만6168명의 세포 지도자들, 그리고 60만 명의 동네 지도자들이 존재했다. 

스탈린은 강박에 가깝게 당 조직 피라미드의 통제력에 집착한 반면 히틀러는 혼돈에 가까운 통치 스타일을 선호했다. ‘다중 지배의 혼돈’ 시스템이었다. 떨어지는 명령도 애매했고, 관할 영역이 겹치기 때문에 총통이 정말 뜻하는 바를 만들겠다고 경쟁하면서 ‘누적적 급진화’가 야기됐다. 그 결과 유대인에 대한 공격은 거세졌다. “전체주의 체제는 당과 국가의 위계적 제도들 바깥에 존재하는 모든 사회적 네트워크를 불법화시키고, 마비시키며, 아예 그 성원들을 다 죽여버리는 방법으로 성공했다.” 

이처럼 저자가 위계와 네트워크 관점으로 바라보는 역사는 나치만이 아니다. 메트로폴리스, 페이스북, 일루미나티 등 각각의 집단 또는 역사적 키워드를 ‘광장’과 ‘타워’로 바라보는 대목에서 새로운 관점을 가질 수 있다. 저자는 “역사가들이 네트워크를 무시하게 된 부분적 이유는 전통적인 역사적 연구가 국가와 같은 위계적 기관들이 생산한 문서들에만 크게 의존해왔다는 점에 있다. 네트워크들도 기록을 남기지만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며 자신이 이룬 ‘학자로서의 성과’를 자평한다. 충분히 자랑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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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2019-09-14 08:01:00
아베의 역사수정주의에 대해 경계를 가져야 하는 이유가 이 책에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