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다른 이슈들을 삼키고 있다. 청와대가 조 후보자를 지명한 지난 9일부터 27일 오전까지 포털에서 ‘조국 법무 장관 후보자’를 검색하면 약 3만7000건의 기사가 나올 만큼 언론은 ‘조국’에 집중하고 있다. 

이에 사실상 한 생산공정에서 일하며 다른 처우를 받아 ‘현대판 노예제’로 비판받는 ‘불법파견(위장도급)’ 법원 판결이 최근 3건이나 나왔지만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현대기아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제기한 소송 2건과 아사히글라스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제기한 소송이다. 특히 과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폭력성을 조명했던 보수 성향 신문들은 최근 판결을 아예 외면했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22일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수출용 자동차 탁송·치장 업무를 수행한 사내하청 무진기업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낸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서 이들과 현대차가 파견관계에 있다고 판결했다. 현대기아차 사내하청 비정규직 문제를 불법파견이라고 본 11번째 판결이다.  

▲ 전국금속노조 현대기아차비정규직 6개지회 공동투쟁위원회 등이 22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용노동부가 법원 판결대로 불법파견 인력을 전원 직접고용 명령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진=장슬기 기자
▲ 전국금속노조 현대기아차비정규직 6개지회 공동투쟁위원회 등이 22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용노동부가 법원 판결대로 불법파견 인력을 전원 직접고용 명령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진=장슬기 기자

서울중앙지법은 같은날 현대차 남양연구소에서 예방점검·생산관리 등을 수행하는 서은기업 팀장급 노동자들도 현대차와 파견관계에 있다고 판결했다. 해당 노동자들이 현대차 노동자여야 한다며 그간 현대차 노동자보다 못 받은 임금분도 지급하라는 내용을 포함했다. 

다음날인 23일 대구지법 김천지원은 일본기업 아사히글라스 한국 자회사인 AGC화인테크노의 사내하청 GTS 노동자들이 낸 근로자지위확인소송에서 노동자들 손을 들어줬다. 아사히글라스비정규직지회 소속 노동자들이 해고당한 다음달인 지난 2015년 7월 원청을 상대로 소를 제기한지 무려 4년 만에 나온 1심 판결이다. 

주요 신문사들은 이를 거의 다루지 않고 있다. 경향신문이 지난 22일 현대차 남양연구소 하청노동자 판결, 24일 아사히글라스지회 판결소식을 전했다. 법원 판결은 아니지만 비정규직 투쟁 소식을 다룬 매체는 있다. 한겨레는 지난 20일 노동부가 현대기아차 불법파견 문제를 법원 판결대로 해결하라며 단식 중인 김수억 금속노조 기아차비정규직지회장 인터뷰를 다뤘고, 21일 경향신문·서울신문·한겨레는 아사히글라스지회 노동자들의 기자회견 내용을 전했다.  

소위 ‘조중동’으로 불리는 보수 성향 신문은 그간 불법파견의 구조적인 모순과 사법부 판단조차 따르지 않는 노동당국·검찰의 문제를 다루기보단 노동자들이 항의하는 폭력성만 조명해왔다. 

▲ 지난해 12월28일 조선일보 사회면 기사
▲ 지난해 12월28일 조선일보 사회면 기사

지난 8월2일 조선일보는 “불법시위 민노총 31명 모두 재판에 넘긴 검찰”, 중앙일보는 “검찰, 불법집회 주도 민노총 조합원 31명 기소”란 기사로 현대기아차 비정규직지회 노동자들이 불법집회를 했다고 보도했다. 이들이 왜 집회에 나섰고, 구체적으로 어떤 주장을 했는지는 두 매체 모두 조명하지 않았다. 

지난해 12월28일 조선일보는 민주노총 금속노조 구미지부 아사히글라스지회 조합원들이 대구지검 청사를 점거하다 경찰에 연행당한 소식을 전했다. 한달 전 현대기아차 비정규직 노조가 서울 대검청사에 농성을 벌이다 경찰에 붙잡혀 간 소식 등 노동자들의 과거 점거 소식을 보도했다. 같은날 중앙일보는 한 대학교수의 칼럼과 대구지검 점거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기사로 전했고, 동아일보도 조합원들이 경찰에 연행되는 장면을 사진으로 전했다. 

▲ 지난 26일 한겨레 사회면 기사
▲ 지난 26일 한겨레 사회면 기사

다수 언론이 사회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불법파견 판결까지 외면하는 가운데 추가로 노동자들이 거리에 나오고 있다. 

25~26일 한겨레, 27일 경향신문 보도를 보면 한국지엠 사내하청 노동자가 구조조정 과정에서 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한국지엠 부평공장 앞 철탑에서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27일로 단식 30일을 맞은 김수억 지회장 등 현대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연대단체는 이날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불법파견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22일 서울신문 보도를 보면 오는 29일 대법원은 톨게이트 요금수납 노동자들이 한국도로공사에 제기한 불법파견(근로자지위확인) 소송 최종 선고를 예고했다. 이들은 항소심까지 도로공사 노동자가 맞다는 판결을 받았지만 오히려 해고당해 지난 6월말부터 고공농성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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