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비상한 각오로 엄중한 경제 상황에 냉정하게 대처하되, 근거 없는 가짜뉴스나 허위 정보, 과장된 전망으로 시장의 불안감을 키우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문재인 대통령, 지난 13일 국무회의에서) 

“가짜뉴스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진실’은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진실을 향한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면 언론의 자유는 커지고, 그만큼 우리 공동체도 발전할 것입니다.”(문재인 대통령, 지난 16일 한국기자협회 창립 55주년 기념식 영상축사에서)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거듭 ‘가짜뉴스’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서면서 향후 청와대 반응과 청문회를 준비하는 관계부처 장관들에게도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18일 국민일보 보도에 따르면 청와대 민정수석실 산하 반부패비서관실 직원들은 최근 산업통상자원부와 통일부, 방송통신위원회와 국방부 등 4개 부처 대변인실을 방문해 언론 대응 방안 실태를 조사한 것으로 밝혀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반부패비서관실의 고유하고 일상적인 업무수행 일환으로 오보 대응 실태점검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국민일보는 ”청와대 내부에선 가짜뉴스의 폐해가 심각하며 관련 대책을 속히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면서 “청와대는 향후 한상혁 방통위원장 후보자가 청문회를 통과하면 가짜뉴스 근절을 위한 구체적인 밑그림을 짤 계획”이라고 전했다.

▲ 한상혁 방통위원장 후보자가 지난 12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부근에 마련된 임시사무실로 출근해 기자들과 만나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KBS 현장영상 갈무리.
▲ 한상혁 방통위원장 후보자가 지난 12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부근에 마련된 임시사무실로 출근해 기자들과 만나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KBS 현장영상 갈무리.

이 같은 청와대의 의중을 가장 먼저 수렴한 장관급 내정자도 한상혁 방통위원장 후보자였다. 지난 9일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이 개각 발표에서 한 후보자에게 “건전한 인터넷 문화의 조성을 기대한다”고 당부하자 그는 내정 소감을 통해 “ 건전한 인터넷 문화 조성을 저해하는 허위조작정보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개선책을 고민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한 후보자는 12일 기자들을 만나 “어떤 정보를 의도적 허위조작정보와 극단적 혐오표현이라 볼지 정의 규정부터 필요하다”고 전제를 뒀다. 하지만 한 후보자가 방통위원장이 되면 “표현의 자유 보호 범위 밖에 있는 의도적 허위조작정보와 극단적 혐오표현을 규제할 제도 정비에 나설 것”을 시사하면서 야당을 비롯해 언론, 시민사회의 우려 목소리도 나온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12일 성명에서 “지금 방통위에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 과연 이른바 가짜뉴스 근절 대책의 수립인가? 방통위가 이 문제를 주요 업무로 받아 안아 표현의 자유의 범위를 논하자는 것이 합당한가?”라며 “청와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답을 내놨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유튜브와 SNS 등을 통한 허위조작정보의 확산이 날로 심각해지고 있고, 특히 내년 총선을 앞두고 더욱 득세할 것이라는 게 현 정부·여당의 인식이다. 특히 문 대통령이 가짜뉴스 문제를 반복해 언급한 마당에 향후 법무부와 방통위를 중심으로 한 허위조작정보 대응이 일사불란하게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언론사 오보처럼 의도하지 않게 실수로 만들어진 ‘잘못된 정보’(misinformation)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조작해 만든 ‘허위정보’(disinformation)를 구별해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양정애 한국언론진흥재단 선임연구원은 지난 2월 발간한 미디어이슈웹진 [일반 시민들이 생각하는 ‘뉴스’와 ‘가짜뉴스’]에서 “언론은 자신들이 돈벌이 목적으로 생산해내는 각종 질 낮은 기사들과 충분한 사실 검증을 거치지 않아 만들어내는 오보까지도 ‘찌라시’, ‘페이크뉴스’와 같은 급으로 사람들에게 인식되고 있음을 염두에 두고 기사의 품질을 높이는 데 더욱더 힘을 쏟아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16일 오전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있는 서울 종로구의 한 건물로 출근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16일 오전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있는 서울 종로구의 한 건물로 출근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 후보자는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측 법률대리인으로 언론사와 정정·반론보도 소송을 전담했을 정도로 오보 대응에는 전문가다. 하지만 방통위원장 자리는 언론사 오보에 대응하는 자리가 아니며 정부가 허위조작정보를 제재하더라도 이를 심의해 시정요구(삭제 또는 접속차단)할 수 있는 기구는 방통위가 독립성을 보장해야 할 방송통신심의위원회다. 

한 후보자는 지난 2014년 지난 9월16일 당시 대통령이었던 박근혜씨가 “대통령 모독 발언이 도를 넘고 있다”고 말한 후 검찰이 사이버 유언비어 엄단 계획을 발표하자 민주언론시민연합에 기고한 칼럼에서 “단순한 허위사실의 유포는 처벌 규정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반대했다. 허위사실의 유포가 개인의 인격권 침해로 이어지고, 피해자가 이를 인식해 시정을 요구한 경우에만 공권력을 발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도 지난 2012년 9월 발표한 논문 ‘일부 허위가 포함된 공적 인물 비판의 법적 책임–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죄 판례 비판을 중심으로’에서 “자신에 대한 허위 사실이 공표, 유포 당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공적 인물인 경우에는 법적 제재를 가동하는 것은 극도로 조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 후보자는 “진실과 허위는 일도양단식으로 선명하게 나뉘지 않는다. 일상 시민의 표현에서 진실과 허위는 섞여 있는 경우가 많다”면서 “시민이 공적 인물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부분적으로 허위사실이 제기됐다는 이유로 그 시민에게 법적 제재가 내려진다면 표현의 자유는 심각하게 위축될 것이 명약관화하다”고 했다. 

조 후보자는 또 “허위사실유포죄처럼 허위사실 유포로 침해되는 법익이 추상적인 경우는 그 위험성이 더욱 커진다”며 “진실과 허위에 대한 최종 판단이 법에 의해 이뤄질 때 그 판단자는 국가권력, 특히 특정 시기 집권을 하고 있는 지배세력일 것이기 때문”이라고 우려했다. 

이처럼 지난 정권에서 정부를 향한 비판과 허위의 주장을 할지라도 표현의 자유를 억압해선 안 된다고 했던 조국·한상혁 두 후보자가 청문회에서 어떤 답변을 내놓을지 언론은 주목하고 있다. 이들은 허위조작정보에 대한 판단을 행정부가 할 수 있는지, 이를 어떤 방식으로 규제할 것인지 딜레마를 풀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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