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중재위원회가 ‘2018년 언론관련판결 분석보고서’를 펴냈다. 2018년 각급 법원이 선고한 언론관련 민사판결 224건을 분석했다. 미디어오늘은 보고서에 언급된 주요 판결 사례 가운데 2018년 확정 판결된 7건의 사건을 추렸다. 언론중재위원회는 매년 언론사 또는 언론인을 상대로 제기된 소송들을 수집·분석한 보고서를 내고 있다. 언론 관련 판결은 언론분쟁의 양상과 추이를 파악할 수 있는 객관적 자료로서 언론계에 유용하다.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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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방송된 채널A '먹거리X파일'의 한 장면. 

① 생사람 잡은 채널A ‘먹거리X파일’

채널A는 2015년 4월 ‘먹거리X파일’에서 A씨 식당에서 파는 소고기가 유통기한이 한 달이나 지났고, A씨가 제대로 해명하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정육식당의 꼼수’란 제목의 방송이 나간 뒤 식당은 폐업했다. A씨는 명예훼손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나섰는데, 1심 재판부는 채널A 방송의 허위성을 인정하며 A씨에게 30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후 서울고법이 양쪽의 항소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취재 당시 A씨가 구입한 소고기의 포장지 라벨에 표시된 한우 개체 식별번호가 잘못 표시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제작진은 개체 식별번호에 의해 검색된 유통기한이 맞는지 여부를 추가적으로 검증한 바 없고, A씨가 반대증거로 제시한 자료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고 판시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채널A 제작진이 문제의 소고기 포장 상자에서 확인한 소고기 유통기한은 아직 지나지 않은 상태였으며, 결정적으로 제작진과 동행했던 경찰이 조사 결과 유통기한이 지난 소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고 더 이상 수사하지 않았다. 그러나 방송에는 이 같은 내용이 반영되지 않았다. 취재일로부터 방송일까지 한 달간의 시간이 있었지만, 사실 검증은 부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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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MBC 'PD수첩' 예고편. 

② PD수첩에 소송 걸었던 전직 MBC 시사교양국장 

MBC는 2017년 12월12일, 최승호 사장 취임 직후 방송된 ‘PD수첩-MBC의 몰락, 7년의 기록’편에서 2012년 7월 당시 김현종 시사교양국장이 ‘제작진 분위기 쇄신’을 이유로 ‘PD수첩’ 프리랜서 작가들을 전원 교체했다고 보도하며 그의 얼굴을 내보냈다. 제작진은 그에게 “6명을 한꺼번에 해고했는데 혹시 국정원과 공모한 것이냐”고 묻기도 했다. 

방송 당시 목포MBC사장이었던 김현종씨는 PD수첩 방송이 자신의 명예를 훼손하고 초상권을 침해했다며 정정보도 및 30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PD수첩 보도는 국정원 문건이 발견돼 지난 정권에 의해 공영방송인 MBC를 장악하려는 방안이 실행된 것을 국민에게 알리고, 그 과정에서 무력할 수밖에 없었던 MBC 구성원들의 반성적 성찰을 보여줌으로써 언론의 독립성에 대한 국민적 경각심을 고양하기 위한 공익적 목적이 있다”며 김현종씨 주장을 기각했다. 

재판부는 또한 “원고(김현종)는 오랫동안 피고(MBC)에 근무한 언론인으로서 공인으로 볼 수 있고, 피고(MBC)에 근무하면서 자신이 결정한 사안에 대해서 의혹이 있으면 어느 정도는 문제 제기를 허용하고 공개토론을 감수할 필요가 있다”며 초상권침해 주장도 기각했다. 지역MBC 사장이 MBC 시사프로그램에 소송을 제기했던 이 사건은 이명박-박근혜정부 ‘MBC잔혹사’를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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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23일자 아시아경제 1면. 

③ 박근혜정부 인사의 “천황폐하 만세” 보도 결말은 

2016년 6월23일 아시아경제는 국무조정실 산하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 이정호 센터장이 한 워크숍에 참석해 스스로를 친일파라 밝히고 “천황(일왕)폐하 만세”라고 세 번 외쳤다고 보도했다. 아시아경제는 “이 센터장은 참석자들에게 ‘할아버지가 일제시대 동양척식주식회사 고위 임원이었다’는 등 발언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으며, 이씨는 “식사 자리에서 농담으로 했던 말”이라고 해명했다. 그리고 이씨는 정정보도 및 30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부는 보도내용이 허위사실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국무조정실 진상조사에서 ‘천황폐하 만세’ 발언을 인정하는 제보자가 2명 있었으며 진상조사 결과에 따라 원고가 징계를 받았다”며 이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이씨는 어떻게 됐을까. 아시아경제는 지난해 8월 “KEI는 인사위를 열고 이씨가 받았던 정직 2개월 징계처분을 취소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보도했으며 “이씨는 부서를 옮겨 현재 근무 중”이라고 전했다. 이씨는 징계 결정 이후 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정직’이라며 구제신청을 냈고, 노동위는 2017년 9월 이씨 주장을 인정하는 판정을 내렸다. 아시아경제는 “(당시) 노동위가 구제신청을 받아들인 근거는 1심에서 승소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씨는 2심에서 패소했다”고 전했다. 결국 지난 2월 이씨는 최종적으로 정직 1개월을 받았다. 아시아경제의 지난 2월 보도에 따르면 그는 당시 국제·북한협력연구실로 복귀해 근무 중이었다. 한일갈등이 격화된 지금, 그는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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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월30일 한국일보 박진성 시인 관련 정정보도문. 

④ 트위터 보고 ‘성추행’ 기사 썼던 한국일보 

한국일보는 2016년 10월21일 “문화계 왜 이러나…이번엔 시인 상습 성추행 의혹”이라는 제목으로 박진성 시인의 성폭력 의혹을 보도했다. 한국일보는 박 시인이 “여자는 남자 맛을 알아야 한다”, “침대 위에서 시를 가르쳐 줄게”와 같은 부적절한 언행을 했고, 싫다고 거부하는 여성을 노래방에 데려가 성관계를 갖고 “다리 벌린 사진을 보내달라”는 식의 성희롱을 하는 등 수년간 상습적으로 여성들에게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을 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모두 사실이 아니었다. 

1심 재판부는 △최초 기사를 인터넷상으로 출고하기 전까지 피해자로 기재된 여성들은 물론이고, 가해 당사자로 지목된 원고와도 아무런 전화 또는 대면 인터뷰를 실시하지 않은 점 △심지어 원고가 강하게 이의를 제기함에도 오히려 관련 보도를 확대재생산한 점 △이 사건 익명 여성에 대한 직접 연락이 어려운 상황에서 SNS 게시글이 허위일 가능성이 있음에도 내용을 옮겨 적다시피 하는 방식으로 보도를 강행할 특별한 이유를 찾기 어려운 점 등을 언급하며 1심에서 5000만 원의 손해배상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한국일보가 주장한 위법성 조각사유도 인정하지 않았다. 

이후 양측은 항소심에서 조정에 합의해 손해배상금은 2990만원으로 조정됐다. 한국일보는 2019년 1월30일 정정보도문을 올렸다. 해당 정정보도문 네이버 페이지에는 이례적으로 2000여개의 댓글이 달렸다. 댓글 하나를 옮겨본다. “펜이 칼보다 강하다면 펜으로 행한 폭력은 칼로 행한 폭력보다 더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 언론은 파수꾼을 자처하면서 그 언론은 누가 감시한단 말인가.”(ro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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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추적60분'의 한 장면. 

⑤ 이명박 전 대통령 아들 이시형씨의 ‘무모한’ 소송  

KBS는 2017년 7월26일 ‘추적60분’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의 아들 이시형씨가 마약류 투약혐의를 의심할 정황이 있는데 검찰이 이씨를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는 취지의 방송을 내보냈다. 이씨는 허위사실이라며 정정보도 및 5억원의 손해배상과 기사삭제를 요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1심 재판부는 이시형씨의 마약류 투약혐의를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판단해 이씨의 모든 청구를 기각했다. 이씨가 항소하지 않아 판결이 확정됐다. 

재판부는 “이시형씨 친구 G씨는 여러 명이서 함께 마약류를 투약했고, 그 과정에서 여러 개의 주사기가 발견됐다. 이 사건 방송에서 전직 경찰청 마약지능수사과장인 변호사와 전직 검사 출신의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마약사건은 관여자의 진술과 주변 인물을 중심으로 수사가 이루어지는 것이 통상적’이라는 취지로 진술했다. 이를 종합하면 G씨 등 마약류 투약에 관한 수사대상에 이시형씨도 포함되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합리적 의심을 가질 수 있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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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

⑥ 편집국장 ‘공갈미수’ 고소당하자, 공세의 필봉이… 

한국증권신문은 2017년 8월2일 “아수라장 교육계, 스승부터 교육기업 대표까지 성추행 논란”이란 제목의 기사를 내고 교육기업 A사의 전직 대표였던 D씨의 성추행 사건을 보도했다. A사는 해당 기사가 당시 한국증권신문 편집국장 B씨를 A사가 공갈미수로 고소한 것에 대한 보복성으로 작성됐다고 주장하며 명예훼손에 따른 손해배상과 기사삭제를 요구하는 소를 제기했다. 

1심 재판부는 A사 주장을 받아들였다. 입사지원자를 강제추행했던 D씨의 성추행 사건은 2014년 7월 이후 발생했고, 2016년 1월부터 다수 언론에 기사화됐는데, 1년6개월 뒤 새삼스럽게 해당 사건이 재조명될 사정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판결문에 따르면 B씨는 2017년 7월19일 A사를 방문해 D씨 관련 기사삭제 대가로 1년 2회, 회당 200만원의 광고 게재를 약속받은 후 관련 기사를 삭제했는데 광고를 주지 않는다며 불만을 표시했으며, A사는 B씨를 서울구로경찰서에 공갈미수로 고소했다. B씨는 7월 말 피의자 조사를 받았고, 며칠 뒤 문제의 기사가 출고됐다. 

재판부는 “이 사건 기사에서 적시된 사례 대부분은 성추문 발생 기관과 가해자가 비실명으로 처리되어 있는데, A사와 D씨의 경우 부제, 소제목, 본문에서 거듭 실명이 언급되고 있다”며 원고를 비방할 목적이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이에 3000만원의 손해배상 판결이 내려졌다. B씨는 공갈미수 범죄사실이 인정돼 벌금 200만원의 약식명령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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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정부 블랙리스트였던 작가 이외수씨. 

⑦ 허위주장으로 이외수 모욕한 뉴스타운과 지만원 

1980년 광주에 북한군이 투입됐다는 허위주장을 내뱉고 있는 지만원씨는 2018년 2월19일자 ‘뉴스타운’ 칼럼을 통해 “들통난 빨갱이 우상들”이란 제목으로 이외수 작가가 과거 문학소녀와 혼숙을 했고 혼외자를 두었다고 주장했다. 이외수씨가 소송을 제기하자 이를 유튜브 동영상으로 만들어 그해 9월13일 칼럼의 내용을 재차 확산시켰다. 1심 재판부는 이 사건 칼럼과 동영상의 허위를 인정하는 한편, 이외수씨가 공인이라 하더라도 지극히 사적인 내용을 다루는 경우 공익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시하며 1000만원의 손해배상 판결을 내렸다. 지만원씨와 뉴스타운이 불복해 항소했으나 고법에서 강제조정됐다. 

재판부는 “혼숙 부분 기사를 작성할 당시 충분한 조사를 한 것으로 보이지 않고, 단지 1988년 동아일보 기사 제목(‘대마초 상용 문학지망 소녀들과 여관전전 작가 A씨 영장’)만을 근거로 오히려 그 제목을 과장해 이외수씨가 어린 소녀들과 혼숙한 것처럼 기재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사건 기사 및 사건 동영상 내용은 지극히 사적인 영역으로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기사와 동영상은 모두 삭제됐다. 

재판부는 “이외수씨에 대해 빨갱이, 좌파, 잡놈 등으로 표현한 것은 인신공격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반성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지만원씨는 지난 2월9일 자신이 운영하는 인터넷사이트에 1심판결에 참여한 판사 세 명의 증명사진을 올리고 “진짜를 가짜로 뒤집는 공포의 판사”라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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