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호불호를 떠나 2019년 현재, 한국 서바이벌 오디션의 명가는 CJ ENM이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말이 되었다. 과거에도 MBC의 ‘악동클럽’, KBS의 ‘배틀 신화’ 같이 가요계 데뷔를 전제로 한 오디션 프로그램이 없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체계적으로 프로그램의 포맷을 짜서 유지하고, 최대한 오래 프로그램의 인기를 유지하는 노하우를 지닌 곳은 아직까지 CJ ENM 정도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미국 FOX 채널의 ‘아메리칸 아이돌’을 비롯한 해외의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이 한국에서도 점차 화제가 되자, CJ ENM 산하 채널 ‘엠넷’은 이를 적극적으로 벤치마킹한 ‘슈퍼스타 K’을 제작해 2009년 처음으로 선을 보였다. 시청자들의 반응은 생각 이상으로 높았고, 급기야 슈퍼스타 K 시즌 2에서는 허각-존박-장재인-강승윤, 시즌 3에서는 버스커버스커-울랄라세션-투개월이라는 화제의 출연자를 낳으면서 입지를 단단히 구축했다. 급하게 MBC가 ‘스타 오디션 위대한 탄생’, KBS는 ‘내 생애 마지막 오디션’를 런칭했지만 ‘위대한 탄생’ 시즌 3의 우승자 한동근이 뒤늦게 화제가 된 것을 빼면 실패로 끝이 났다. 2011년부터 2017년까지 총 6개의 시즌으로 마무리된 SBS의 ‘K팝 스타’ 만이 간신히 대등한 경쟁을 했을 따름이다.

하지만 우후죽순 등장하던 오디션 프로그램도 시간이 지나자 인기가 시들었다. 한국 서바이벌 오디션의 커다란 상징이었던 엠넷의 ‘슈퍼스타 K’는 점차 화제성을 잃다 결국 2016년을 끝으로 폐지되었다. 그러나 엠넷은 서바이벌 오디션 장르가 침체가 놓일 때 과거처럼 대중적인 인기는 끌기 어려워도 꾸준한 인기를 얻을 수 있는 창구를 찾았다. 바로 ‘아이돌’이었다. CJ ENM은 YG엔터테인먼트, JYP엔터테인먼트 등 연예 기획사들과 긴밀한 관계를 가지며 각 기획사가 준비하는 아이돌을 미리 홍보하는 동시에 ‘시청자로 하여금 아이돌 데뷔 멤버’를 고르게 할 수 있다는 이미지를 주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인기 아이돌인 JYP엔터테인먼트의 ‘트와이스’는 엠넷의 ‘식스틴’으로, YG엔터테인먼트의 ‘위너’는 엠넷의 ‘WIN : Who is Next’로 데뷔하기 전에 이미 그룹과 멤버의 이미지를 많은 이들에게 알렸고, 동시에 데뷔 이후에도 바로 많은 시청자에게 자신의 이미지를 알릴 수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받았다. 방송국 역시 매니아 팬들의 시청과 유료 투표 참여를 통해 화제성과 수익을 모두 거둘 수 있었다. CJ ENM 엠넷이 오디션 프로그램의 방향성을 ‘아이돌 데뷔’ 서바이벌로 돌린 것은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침체에 놓인 상황에서도 방송국과 기획사 모두에게 득이 되는 선택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엠넷이 ‘프로듀스 101’ 시리즈를 기획한 것은 결코 우연한 결과가 아니었을 것이다. 이미 ‘슈퍼스타 K’ 등의 프로그램에서는 이미 소속사에 속해있는 연습생이 순수한 일반인척 속이고 오디션에 도전한다는 소문이 심심치 않게 등장했다. 게다가 이미 엠넷은 오랜 시간 기획사와 협력하여 아이돌 그룹 데뷔를 전재로 한 프로그램을 2012년부터 매년 쉬지 않고 개최했다. 소속사 연습생 논란을 의도적으로 ‘데뷔를 목표로 한 연습생’ 전원으로 넓히며 해소하고, 특정 기획사에 소속된 연습생 뿐만 아니라 참여를 원하는 모든 소속사의 연습생으로 참여자의 폭을 넓히는 선택은 CJ ENM 자신들은 물론 갈수록 치열해지는 연예 기획사들 모두에게 구미가 당기는 도박이었을 것.

▲Mnet '프로듀스X101' 홍보이미지.
▲Mnet '프로듀스X101' 홍보이미지.

도박은 성공으로 끝이 났다. 101명의 아이돌 연습생이 ‘국민 프로듀서’에게 자신을 어필하기 위해 온갖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고되고 긴 연습생 생활을 청산하고 데뷔를 하기 위해서 치열하게 몸부림치는 연습생들의 모습은 많은 시청자들에게 자극을 주었다. 기존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상당수가 아무리 유료 투표를 해도 심사위원들의 평가를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면, 순수하게 ‘100% 문자 투표’로 꾸준히 생존자와 탈락자를 가르고 마지막화에서는 최종적인 데뷔 멤버를 정하는 선택은 시청자들의 감정과 욕망을 자극했다. 그렇게 2016년 처음으로 선보인 ‘프로듀스 101’은 최종화 시청률 4.383%(닐슨코리아 기준), 합산 문자투표수 약 470만표로 소위 대박을 이루게 됐다. 대박을 기반으로 엠넷은 때로는 남성 아이돌 연습생으로 (2017년 프로듀스 101 시즌 2, 2019년 프로듀스 X 101), 때로는 한일 합작 아이돌 그룹으로 (2018년 프로듀스48), 또는 일본의 AKB48처럼 특정 공연장을 중심으로 매일 공연을 하는 아이돌 그룹까지 (2016년 소년24) 섭렵하게 되었다. 과거처럼 다른 방송사들은 비슷한 포맷의 프로그램을 기획해 화제성을 노렸지만 (JTBC ‘믹스나인’, KBS ‘더 유닛’, MBC ‘언더 나인틴’) 다시 한 번 실패로 끝이 났다. CJ ENM의 노련함은 그렇게 다시 빛을 보는 듯 했다.

하지만 계속 승승장구할 것 같았던 프로듀스 101 시리즈에 비상경보가 발동되었다. 그것도 하필이면 문자투표 조작 논란이다. 2019년에 방송된 프로듀스 101 시리즈의 최신작 ‘프로듀스 X 101’은 7월 19일 최종회를 방영하며 사전투표와 실시간투표가 더해진 합산투표수 약 1500만표를 통해 프로젝트 그룹으로 데뷔를 할 연습생이 확정되었다. 그러나 점차 데뷔의 영광은 잠시, 방송을 통해 발표된 각 연습생의 득표수가 이상하다는 소식이 퍼지기 시작했다. CJ ENM 엠넷은 빠르게 의혹 진화에 나섰지만 충분치 않은 해명에 오히려 반발을 키우는 역효과를 낳았다. 투표 독려용 사은품을 모으기 위해 돈을 모았던 팬들은 이번에는 CJ ENM을 고소하기 위해 돈을 모았다. 7월31일에는 급기야 경찰이 CJ ENM 사무실과 문자투표 데이터 보관업체를 압수수색했다.

정말로 CJ ENM이 득표수를 조작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러한 논란이 터지게 된 그 자체에 있다. 서바이벌 오디션이 퇴조에 놓인 상황에서 CJ ENM은 가요계를 구성하는 각자의 욕망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다시 자신들의 입지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아이돌 데뷔가 점차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기획사들은 큰 어려움 없이 수월하게 자신들이 육성한 연습생을 데뷔하길 원했고, 연습생들은 빨리 아이돌로 데뷔하여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기획사에 갚을 ‘정산비용’을 줄이길 원했다. 팬들은 ‘국민 프로듀서’라는 이름으로 유료 투표와 자발적인 홍보 활동을 통해 자신이 좋아하는 연습생이 데뷔할 수 있길 원했다. 설령 데뷔에 실패하더라도, 아깝게 데뷔 문턱에서 떨어진 연습생들이 연예계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영업’에 나선 것도 팬들이었다. 이 모든 이들의 욕망은 CJ ENM이라는 회사를 통해 집결되었고, 모아진 욕망은 ‘프로듀스 101’ 시리즈의 자극적인 구성을 통해 활활 타오르게 되었다.

▲Mnet '프로듀스X101' 문자투표 홍보 이미지.
▲Mnet '프로듀스X101' 문자투표 홍보 이미지.

그러니 이제 남은 것은 CJ ENM을 공격하면 끝나는 것일까. 분명 CJ ENM이 책임질 지점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동시에 CJ ENM이 이렇게 굴어도 되게 만든 한국 음악-가요계의 환경을 짚을 필요가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지난 7월 발표한 ‘2018 음악산업백서’에 의하면 한국의 음악 시장 규모는 전세계 9위에 해당한다. 물론 미국이나 일본, 독일에 비교하면 턱없이 작지만 아시아에서는 일본과 함께 유이하게 음악산업 시장 규모 10위 안에 들었다는 점은 한국 시장이 결코 무시할 수 없을 수준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1990년대 후반 이후 음반 매출이 급격하게 감소하며 음악 시장의 변방으로 밀려났던 한국 음악은 어느덧 세계 수위권의 음악 시장을 자랑하게 되었다.

그러나 음악 시장의 전체 크기를 넓힌 것과 별개로, 음악을 즐기는 다양성은 점차 줄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주장은 1990년대부터 일찌감치 나왔던 주장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 음악의 획일화가 심해지고 있음을 말하는 이들은 더욱 늘어나기 시작했다.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이 내는 기관지 ‘한류NOW’ 2019년 3-4월호에 김윤하 음악평론가는 ‘K팝이라는 모순 : 아이돌 음악과 다양성에 대한 고찰’이라는 기고문을 통해 강한 팬덤을 지녀 꾸준한 수익 창출이 가능한 아이돌을 제외하면 인력-자본-화제성 등 음악 산업과 관련된 각종 산업 요소를 “전투적으로 흡수”하며 음악 향유에 대한 모순과 불균형을 만들고 있음을 지적했다. 유승종이 2010년에 발표한 논문 ‘한국 대중음악산업의 구조적 문제점과 개선 방향에 대한 논의’에서는 1990년대 이후 2010년까지 한국 음악 인기 순위의 곡 80%가 댄스나 발라드임을 지적하며, 한국인이 즐기는 음악 장르가 편중되어 있음을 언급하였다. 한국 음악 시장의 규모는 계속 증가하지만, 정작 커가는 시장의 수혜를 보는 이들은 소수로 한정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결국 이득은 CJ ENM 엠넷을 비롯한 방송사, 또는 카카오M(구 로엔엔터테인먼트)의 ‘멜론’ 같은 음원 플랫폼이 취하게 된다. 엠넷은 2012년부터 매년 힙합 오디션 ‘쇼 미 더 머니’를 개최하고 있지만, 정작 이들이 운영하는 주간 가요 프로그램 ‘엠카운트다운’에서 힙합을 소개하는 비중은 그리 크지 않다. 당연히 전문적인 힙합이나 흑인음악 전문 프로그램도 없다. 애시당초 엠넷에서 힙합이 등장할 비중은 너무나도 협소하고, 그런 상황에서 저마다 대박을 위하여 매회 크고 작은 논란에 시달리는 ‘쇼 미 더 머니’에 나오길 원하고 일부는 우승을 하고 나서도 또 출연을 갈망한다.

2017년부터 본격적으로 제기되어 2018-2019년에는 일상적인 수준으로 제기되고 있는 음원 차트 조작과 ‘사재기’ 논란 역시 매한가지이다. 소위 ‘멜론 차트 TOP 100’에 들어간 음원이 화제가 되고 다시 인기를 재생산하는 것이 굳어진 상황에서, 한동안 별 반향도 없다가 갑작스럽게 순위권에 들어간 음악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몇몇 이들은 통상적인 음원의 차트 추이와 차이나는 흐름을 근거로 차트 조작을 주장하고 있지만, 별다른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오히려 논란은 다른 음악으로 점점 퍼져나가고 있다. 논란이 발생하는 음악의 대다수는 아이돌이 아닌 음악인이 만든 작품이며, 해당 앨범의 댓글에는 아이돌 팬과 아이돌을 싫어하는 팬들 사이의 격돌이 발생한다. 누구도 실제 차트를 조작 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지만, 이 갈등의 초상에는 아이돌 팬과 아닌 이들, 쉽게 차트 100위 안에 들어갈 수 있는 가수와 장르의 팬과 그렇지 아니한 이들의 격차와 심리적 갈등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프로듀스 X 101의 투표 조작 논란 역시 마찬가지이다. 애시당초 차트 안에 들어갈 수 있는 장르와 가수의 작품만이 다시 인기를 반복해서 쌓는다. 설령 차트 안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팬덤이 구축되지 않으면 가요계 변방을 떠돌다 해체하는 운명을 맞기 일수이다. 취향의 다양성이 확보되지 않고, 지상파와 CJ ENM, 종편을 막론한 방송사들 역시 대중성을 강조한 프로그램만을 양산할 뿐 다양한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창구는 당초부터 마련할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다양한 음악을 즐길 수가 없는 상황에서, 매니악한 장르는 일단 오디션 프로그램만 만들고 보는 게 하나의 관행이 되었다. 게다가 아이돌로 간다고 해서 사정은 나아지는 것이 아니며, 기존의 인기 그룹과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중압감은 점차 세진다. 그 과정에서 힘을 얻는 것은 결국 방송사와 음원 플랫폼이다. 프로듀스 X 101에 대한 팬들의 열광과 의혹이 불거진 이후의 갈등은 결국 방송사-플랫폼을 벗어날 수 없는 한국 음악의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최소한 지상파 방송국이라도 자본과 시장에 좌우되지 않은 움직임을 보였어야 했다. 마치 프랑스가 법적으로 지상파와 공영 방송에 음악 공연의 의무 편성 기준을 두거나, ‘음악 콘텐츠 다양성 감시 기구’를 설치해 다양한 음악을 향유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한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지상파는 KBS ‘뮤직뱅크’, MBC ‘쇼! 음악중심’, SBS ‘인기가요’를 ‘한류의 첨병’으로 활용해 더 많은 수익을 얻기 위해 몰두했을 뿐,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역할은 철저히 방기했다. 그나마 간신히 존재하는 풍성한 장르의 음악을 다루는 프로그램은 모두 심야에 몰려 있으며, 과거에도 그랬던 것처럼 ‘프로듀스 101’의 성공에만 눈이 멀어 이를 열화적으로 답습한 프로그램을 만들다 제작비만 허공으로 날렸을 뿐이다. 게다가 KBS ‘유희열의 스케치북’, EBS ‘스페이스 공감’ 같은 심야 음악 프로그램 또한 점차 당초 기획했던 목표와 다르게 점차 이미 대중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음악인이나 아이돌의 출연 비중을 늘리고 있다. 역설적으로 KBS춘천 ‘올댓뮤직’, MBC광주 ‘문화콘서트 난장’처럼 지역 지상파 방송국만이 근근히 다양한 향유를 보장하기 위해 노력하는 프로그램을 기획, 제작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 차원에서 ‘프로듀스 X 101’의 논란은 한국 음악의 성장 뒷면에 놓인 척박한 현실과 쉬쉬하기에 바빴던 음악 시장의 구조적 모순이 우연한 계기로 폭발한 사건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연습생의 데뷔를 위해 유료 투표는 물론 투표 인증 사은품까지 마련하기 위해 없는 돈까지 모았던 팬덤은 이제 분노로 가득차 CJ ENM을 공격한다. 그러나 철저하게 차트 안에 있는 음악만이, 팬덤이 강하게 뭉친 아티스트의 음악만이 주목받는 상황에서 이 논란이 단순히 CJ ENM의 ‘공정성 논란’에 한정된다면 비슷한 일은 언제든지 반복되고, 더욱 심화된 형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문화의 향유를 고민하고, 다양한 음악에 대한 접근이 가능하며, 문화-예술 창작의 상황을 함께 고민하며 바꿔나갈 때 방송국이나 음원 플랫폼에 얽매이지 않는 주체적인 음악 향유는 비로소 가능하지 않을까.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