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지로 세계일보 기자는 지난해 10월 한 가지 의문을 갖는다. 2100년 지구 온도가 산업화 이전보다 1.5도 이상 오르지 않게 하려면 2030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10년보다 45% 줄이고 2050년엔 ‘순배출 제로’를 달성해야 한다는 국제 합의(‘지구온난화 1.5도 특별보고서’)에 유독 언론은 미온적이었다.

여름철 장마를 제대로 예상하지 못한다며 기상청을 ‘오보청’이라고 비난하는 기사는 많은데 기후변화 문제엔 이토록 무관심일까. 이 문제의식이 7월22일부터 나흘 간 연속 보도된 ‘뜨거운 지구, 차가운 관심’을 기획한 배경이다.

윤 기자는 환경 전문 타이틀을 단 기자는 아니지만 2017년부터 환경 이슈를 다뤄왔다. 윤 기자는 지난 29일 통화에서 이번 기획에 “기사를 처음 준비할 때부터 여름철에 보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여름은 폭염 문제 등 온난화에 관심이 커지는 시기다. 근본 의문은 기후변화 문제가 매우 심각한 데 비해 독자들은 왜 관심을 갖지 않을까에 있었다”고 밝혔다.

▲ 세계일보 2019년 7월23일자 10면.
▲ 세계일보 2019년 7월23일자 10면.

7월22일자 세계일보 1면에는 비영리 공공조사 네트워크 ‘공공의창’과 함께 기획한 기후변화 인식 조사가 실렸다. 조사 결론은 국민 10명 가운데 8~9명은 기후변화를 심각하게 느끼고 있지만 당장은 경제성장이나 실업 등에 집중하고 기후변화는 장기과제로 두길 바란다는 것이다. 윤 기자는 “조사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내 문제의식에 맞게 조사가 나와야 하는데’라는 걱정이 있었다. 그러나 생각보다 결과는 명확했다. 기후변화 관심도는 ‘경제성장’, ‘실업’, ‘저출산’, ‘빈부격차’ 등과 비교해 꼴찌 수준이었다. 여론이 팽팽한 ‘탈핵’이나 ‘전기요금’ 이슈는 이념화돼 있는 주제라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23일 보도된 “‘부동산’ 기사 2209건 쏟아질 때 ‘기후변화’ 161건… 언론의 홀대”는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국내 언론의 ‘기후변화 무관심’을 짚어냈다. 최근 5년간(2014년 7월~2019년 6월) 월평균 기후변화 기사(지구온난화 포함)는 161건에 불과했다. 지난해 9월 ‘미세먼지’는 208건 실렸고 지난 3월 최장기 고농도 현상이 나타났을 때는 2549건으로 치솟았다. 윤 기자는 “11개 종합일간지 기준이라는 점에서 월평균 161건은 하루에 한 건도 다루지 않을 때가 있다는 것”이라며 “언론 보도 수도 부족했지만 기후변화를 진지하게 다뤘다고 보기에도 어려웠다. 미세먼지나 부동산 관련 보도를 봐도 월 1000건 이상을 꾸준히 보도해야 한 이슈에 대한 정책이 나오더라. 기후변화는 아무리 잘 나와도 월 1000건이 안 됐다”고 말했다.

윤 기자의 다음과 같은 지적은 아픈 대목이다. “국내 에너지 정책을 주도하는 건 환경부가 아닌 산업통상자원부다. 환경부 권한은 작다. 산업부 출입 기자들은 당연히 산업부 또는 산업계 시각으로 보도한다. 에너지를 다루는 기자 가운데 산업과 환경, 양쪽의 고른 시각을 갖고 보도하는 이들이 부족하다는 현장 목소리가 나온다.”

24일에는 ‘죄수 딜레마’, ‘공유지 비극’ 문제를 다뤘다. 국제사회가 필사적으로 제한하고자 하는 온도 상승폭은 2도. 이는 현실에 와 닿지 않는 ‘추상적 위험’에 가깝다. 즉, 현 세대가 미래세대를 위해 현재의 풍요로움을 포기하는 ‘고통’을 선택하기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이기심을 막을 친사회적 태도와 정책적 유인 설계(ex. 탄소배출권 거래제, 탄소세)가 절실하다는 결론을, 윤 기자는 학생들을 상대로 한 ‘죄수 딜레마’ 실험으로 보여준다.

▲지구온난화로 빙하가 녹는다. 북금곰은 갈 곳을 찾아 헤맨다. ⓒgettyimagesbank
▲지구온난화로 빙하가 녹는다. 북금곰은 갈 곳을 찾아 헤맨다. ⓒgettyimagesbank

윤 기자는 “기후변화 문제를 공유지 비극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지만 산업 관점에서도 해결이 시급하다”며 “국내 대기업이 자동차 등을 유럽에 팔기 위해선 탄소배출량을 당장 줄여야 한다. 이 기준을 맞추지 못하면 많은 벌금을 내야 한다. 지금 이대로라면 수출 차질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점도 이제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내에서 기후변화는 국정과제 중심에 선 적 없다. 윤 기자가 2017년 5월10일부터 2년 동안 문재인 대통령 연설문 500건을 분석한 결과, 24개 연설문에서 49회 등장한 ‘기후변화’(지구온난화 포함)는 대다수 해외순방 중이거나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언급됐다. 국내 발언에서는 당면 현안 가운데 하나로 언급되는 경우가 절반이었고, 국무회의와 수석보좌관회의 발언에서도 기후변화와 지구온난화는 취임 후 첫 1년간 단 두 차례, 그 뒤로는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다.

윤 기자는 “미세먼지 대책으로 화력발전 출력 제한 조치가 이뤄졌는데 현장에서는 대통령이 언급하지 않았다면 상상하지 못할 일이라고 평가한다. 그만큼 산업계가 반대하기 때문이다. 기후변화 문제 역시 현 정치 체제에서 대통령이 관심 갖고 챙기지 않으면 해결하기 어려운 이슈”라며 “기후변화 정책은 장기에 걸쳐 효과를 내는 정책이다. 대통령 5년 단임제 하에서는 임기 내 평가 받기 어려운 기후변화 정책에 나서지 않게 하는 유인이 있다. 국민 관심이 정말 필요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윤 기자는 국회 법안과 2020년 총선 공약을 주목한다. 기후변화 이슈에 어떤 의원과 후보가 주목하고 있는지 후속 보도로 다뤄보겠다는 것. 윤 기자는 “우리는 날씨에는 엄청 민감하다. 반면 기후변화 관심은 부족하다. 쉽게 말씀드리면 날씨가 모인 게 기후다. 날씨가 틀려 겪게 되는 불편보다 기후가 망가져 겪는 불편이 더 크다. 기상청을 ‘오보청’이라고 비난하는 것보다 우리가 겪고 있는 기후변화와 그에 대한 전략을 고민하는 게 더 생산적 아닐까”라고 덧붙였다.

▲윤지로 세계일보 기자.
▲윤지로 세계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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