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대주주 경영 개입 논란으로 촉발한 SBS 노사 갈등이 정점을 향하고 있다. 노사 대표가 서로에게 민감할 수 있는 연임 문제까지 입에 올리는 등 상대를 향한 ‘말 펀치’가 이어지고 있다. 정작 갈등을 부른 대주주 윤석민 태영그룹 회장은 SBS 노사 갈등에 공식 입장을 표명하지 않고 있다. 

윤 회장은 지난 3월 태영그룹 회장에 취임하며 ‘2세 경영’을 본격화했다. 명예회장에 추대된 창업주 윤세영 회장은 일선에서 물러났다. 윤석민 회장 취임 직후 SBS에서는 경영 개입 논란이 불거졌다. SBS 미디어그룹 콘텐츠 유통 사업을 총괄하는 SBS 자회사 SBS콘텐츠허브의 이사진이 윤 회장 측근들로 채워지며 SBS가 경영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없는 상황이 초래됐다는 것.

SBS콘텐츠허브는 SBS 콘텐츠가 주 수익원인 기업이다. SBS 수익과 매출은 구조적으로 이곳으로 쏠려 왔다. 전국언론노조 SBS본부는 SBS 수익이 대주주로 빠져나가는 ‘통로’ 또는 ‘빨대’로 SBS콘텐츠허브를 꼽아왔다.

▲ 윤창현 전국언론노조 SBS본부장(왼쪽)이 지난 5월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지상파 방송사를 무대로 재벌 금수저들의 범죄를 그대로 따라한 행태에 검찰과 공정거래위의 수사와 조사가 필요하다”며 윤석민 태영건설 회장과 SBS를 상대로 한 법적 대응(배임 혐의 등)을 예고했다. 사진=김도연 기자
▲ 윤창현 전국언론노조 SBS본부장(왼쪽)이 지난 5월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지상파 방송사를 무대로 재벌 금수저들의 범죄를 그대로 따라한 행태에 검찰과 공정거래위의 수사와 조사가 필요하다”며 윤석민 태영건설 회장과 SBS를 상대로 한 법적 대응(배임 혐의 등)을 예고했다. 사진=김도연 기자

노조는 대주주의 경영 개입 논란 이후 윤 회장의 ‘SBS 사유화’를 도마 위에 올리고 사익 추구 행위를 추적해왔다. 이후 SBS콘텐츠허브가 태영건설 부회장 부인이 소유한 회사에 200억원 규모 일감을 몰아준 배후에 윤 회장이 있다는 의혹, 윤 회장이 SK그룹 3세들과 합작한 회사에 SBS가 일감을 몰아줬다는 의혹 등이 제기됐고 언론노조와 SBS노조는 윤 회장, 박정훈 SBS 사장 등을 배임 및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SBS 노조는 국회 토론회를 통해 이 문제를 공론화했다. 지난 19일 열린 토론회에서 윤창현 위원장은 “민영방송이라 해도 기반이 되는 법은 공정성을 보장하고 주주 권한 일부를 제한하는 방송법이다. 대주주라는 이유만으로 SBS 경영과 방송을 장악해서는 안 되는 이유”라며 “대주주 전횡과 방송 사유화를 끊어내기 위해 계속 지배 주주 자격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SBS 사측은 노조 공세에 물러날 기색이 없다. 박정훈 SBS 사장은 26일 산별교섭을 위한 지상파 4사 노사 상견례 자리에 불참했다. SBS 측은 고발인과 피고발인이 마주앉는 상황이 불편하다는 입장이다. 이날 박 사장은 긴급담화를 내어 “회사는 그동안 엄중한 경영 위기에 대처하느라 노조가 대주주와 사장을 검찰에 고발하든 외부로 나가 SBS를 흔들어대든 지켜보기만 했다. 그러는 사이 노조 투쟁이 도를 넘어 우리 존립을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게 됐다”고 우려한 뒤 “노조 관심은 방송독립보다는 경영권·인사권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노조를 직격했다. 

박 사장은 “방송사에 있어서 소유·경영 분리 핵심은 ‘대주주로부터의 방송독립’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공정방송과 편성권의 독립, 제작 자율성을 보장하고 있다. 지난 2년을 돌이켜보면 방송독립은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고 평가했다. 그는 또 “윤 위원장이 검찰 고발과 재허가 투쟁을 이어가기 위해 세 번째 연임 의사를 밝혔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태 장기화가 우려되지만 회사는 흔들리지 않고 담담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윤 위원장도 29일 “임명동의제도까지 만들어 독립성을 보장하겠다고 해놓고 보직 인사와 경영 현안에 대주주가 멋대로 개입하는 게 소유·경영 분리 정신인가”라며 “노조를 공격하는 모습에서 회사 미래는 어떻게 되든 또 한 번 연임하고 싶다는 (박 사장의) 욕심만 강하게 읽힌다”고 반박했다. 박 사장은 올 11월 임명동의 투표를 거쳐야 연임이 가능하다. 노사 모두 사내 우호·지지 여론 결집이 중요할 수 있다.

▲ 박정훈 SBS 사장(왼쪽)과 윤창현 언론노조 SBS본부장이 지난 2017년 10월13일 사장 임명동의제 등에 합의하는 모습. 사진=SBS 제공
▲ 박정훈 SBS 사장(왼쪽)과 윤창현 언론노조 SBS본부장이 지난 2017년 10월13일 사장 임명동의제 등에 합의하는 모습. 사진=SBS 제공

SBS 노조 고발 사건의 검찰 수사가 주목된다. 검찰은 지난 9일과 17일 윤창현 위원장을 고발인 조사했다. 11시간이 넘는 조사였다. 사건은 기업 범죄 관련 특수 수사로 정평이 난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가 맡았다. SBS 노조는 “윤 총장 취임 이후 추가 고발인 조사가 예정돼 있다. 이후 검찰의 자체적 증거 보강 작업과 피고발인인 윤석민 회장과 박정훈 사장 등에 대한 공개소환 등 고강도 수사가 절차에 따라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은 25일 취임사에서 “형사 법 집행에서 우선적으로 중시해야 하는 가치는 바로 공정한 경쟁질서의 확립”이라고 밝혔다. 시장 교란 반칙 행위, 우월적 지위의 남용 등 공정 경쟁 질서를 무너뜨리는 범죄에 단호하게 대응하겠다는 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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