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1. 지난 10일 서울 소재 사찰에서 30년 넘도록 벌어진 지적장애인 노동력 착취가 세상에 알려졌다. 피해자는 처음 경찰서에 출석했을 때도, 검찰 진술 때도 노동력 착취를 진술했지만 수사기관은 최초 고소장에 기재된 죄명이 ‘폭행’이란 이유로 12건의 폭행에 단순폭행죄만 약식기소했다. 노동력 착취 수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사례2. 직장인 청각장애인 A씨는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급여를 받으며 노동력을 착취당했고, 직장상사에 의한 언어적 성희롱에 노출됐다. 언어소통이 어려운 A씨는 본인 사정을 주변에 설명하고 도움을 구했지만, ‘사안이 경미하다’는 이유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을 찾지 못했다.

2014년 2월 ‘신안군 염전노예 사건’으로 불리는 지적장애인 노동력착취 사건을 계기로 장애인학대를 막아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지만, 실질적 후속조치나 예방책이 미비해 유사한 사건이 반복된다. 정의당 장애인위원회와 윤소하 의원, (사)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사)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사)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가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공동으로 ‘장애인학대 가해자 처벌 강화와 피해자 지원 방안 토론회’를 열었다.

▲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장애인학대 가해자 처벌 강화와 피해자 지원 방안 토론회'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장애인학대 가해자 처벌 강화와 피해자 지원 방안 토론회'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지난해 1~6월까지 전국 장애인권익옹호기관에 접수된 학대신고 중 장애인 학대의심 사례는 984건에 달하며 ‘학대·경제적 착취’로 판정된 사례는 218건, 노동력 착취 사례는 27건(2018년 9월, 중앙장애인권익옹호기관)으로 나타났다. 전체 학대피해 장애인의 77.1%가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지적장애·자폐성장애·정신장애를 가진 것으로 파악된다.

김예원 변호사(장애인권법센터)는 “하루가 멀다 하고 노동력 착취 피해를 입은 장애인들 사건이 뉴스로 보도된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자극적 사건의 ‘디테일’한 이야기에만 잠깐 관심이 있을 뿐, 피해자들이 어떻게 지원 받는지 가해자가 어떻게 처벌됐는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며 “아직도 인권침해 사각지대에서 제대로 지원받지 못하는 피해자가 있다”고 밝혔다.

김 변호사는 빈번하게 일어나는 장애인 대상 범죄를 ‘장애인학대범죄’로 규정하고 그 특성을 반영하는 장애인학대처벌특례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통해 △장애인복지법상 ‘학대’에 들어가지 않아도 가중처벌 필요성이 있는 학대범죄 지정 △기존 법체계에 들어가지 않는 구성요건을 신설해 장애인 인권침해 법적 범주 확대 △장애인을 위한 국선변호사 제도나 실질적 보조인제도 등을 도입해야 한다.

피해 장애인의 원활한 의사소통 지원·중개를 위한 방안을 법제도에 담을 필요성도 제기됐다. 김 변호사는 법무부가 운영하는 ‘진술조력인’ 제도는 아동학대나 성폭력을 당한 장애인 대상이기에, 성인 장애인이 성폭력 이외 학대를 당한 경우에는 진술조력인 지원을 받을 수 없다. 형사소송법(제163조의2)에 근거한 신뢰관계인제도는 진술자의 ‘심리적 안정’이 목적이기에 실질적인 의사소통 중개·지원을 할 수 없고, 장애인복지법(제59조의6)상 보조인제도는 이미 사문화됐다고 지적했다.

스스로 목소리 내기 어려운 피해 장애인을 가해자로부터 분리하는 지원체계도 요구된다. 김 변호사는 “장애인복지법상 학대피해 장애인쉼터 규정이 있으나 전국에 몇 개 설치돼있지 않아 실제 기능하지 못하고, 학대 피해 장애인을 장애인 거주시설 등으로 옮기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던 장애인을 오히려 시설에 입소시켜 탈시설화 정책기조에 배치되고 자기결정권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 ▲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장애인학대 가해자 처벌 강화와 피해자 지원 방안 토론회'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장애인학대 가해자 처벌 강화와 피해자 지원 방안 토론회'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장애인 대상 노동력 착취에 일관성 없는 법률 적용과 양형 문제도 지적됐다. 청주지법은 8년9개월 노동력 착취 사건에 최저임금법 위반을 적용해 가해자에게 징역 8개월을 선고했고, 광주지법 해남지원은 무려 40년9개월 노동력을 착취한 가해자에게 준사기·장애인복지법위반(부당영리행위)로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했다. 5년3개월 장애인 노동력을 착취한 가해자는 장애인복지법위반으로 벌금 500만원(서울서부지법)에 그쳤다.

경기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소장인 최정규 변호사는 “노동력착취 관련 법률이 단일법령으로 규정돼있지 않고 산재돼있는 걸 감안하더라도 동일한 노동력착취에 일관성 없는 법률을 적용하는 건 문제”라고 지적했다. △장애인 인권침해·인신매매사건을 단순 임금체불로 접근 △농촌(도시) 일용노임이 아닌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체불임금 산정 △인신매매범죄 수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거듭된 인권단체 지적에도 변화가 없고 △미약한 형량도 문제다.

특례법 제정안이 발의돼 있지 않아 국회 계류 중인 관련 개정안들을 하루빨리 통과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장애인학대범죄 처벌 강화와 피해자 지원 관련 법률개정안은 장애인복지법일부개정법률안 9건(남인순, 윤소하, 김영호, 백혜련, 권미혁, 박병석, 금태섭, 이인영, 김승희, 김상희 의원 각 대표발의), 장애인권리보장법(양승조 의원 대표발의) 1건 등이다. 은종군 중앙장애인권익옹호기관 관장은 “20대 국회 회기가 9개월 정도 남았다. 현재 발의돼있는 개정안들은 논란과 쟁점이 없는 법안들로, 조속히 처리하도록 국회의 논의와 장애계의 적극 의견개진이 함께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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