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최저임금이 역대 3번째로 소폭 오른 8590원으로 결정돼 노동계가 반발하고 있다. 이 가운데 보수언론과 경제지는 인상폭 논의에서 나아가 최저임금 차등적용 등 최저임금제도 취지 무력화를 위한 프레임 공세에 나섰다.

내년도 최저임금을 두고 여러모로 ‘역대’란 수식이 언급됐다. 인상률 2.87%(240원)는 2009년 이후 10년만의 최저치다. 외환위기를 맞았던 1998년 2.7%, 미국발 금융위기 때인 2009년 2.75% 다음으로 낮다. 전년에 비해 8.03%포인트 낮아져, 전년 대비 인상률 감소폭도 역대 가장 크다. 올해 말 확정될 물가상승률을 미뤄보면, 실질 최저임금 인상률은 ‘마이너스’가 될 공산이 크다. 박준식 최저임금위원회(최임위) 위원장이 지난 12일 최저임금 결정 당일 기자브리핑에서 “내가 생각한 것에 비해 낮게 결정이 나와 놀랐다. 개인적으로 아쉽다”고 말할 정도로 적게 올랐다.

노동계는 재심의 요청 방침을 밝히는 등 강하게 반발했다. 최임위의 양대노총 노동자위원들은 사퇴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사용자 측은 “동결 또는 삭감이 되지 못해 아쉽지만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경제지는 소상공인들이 “동결 기대했는데 물거품”(서울경제)이 됐다며 “29% 올린 상태서 2.9% 인상도 충격”(한국경제) 등 ‘실망’ ‘충격’을 강조해 헤드라인을 뽑았다. 다수 일간지가 경영계 입장을 두고 “표정관리한다”(한겨레) “일단 안도하는 분위기”(동아일보) “내심 반긴다”(조선일보)고 무게를 둔 것과 다른 모양새다. 보수신문 대부분은 “이미 우물에 독 퍼졌는데 독 덜탄다고 무슨 의미 있나”(조선일보) 등 제목을 붙인 보도로 이번 실질 삭감이 뒤늦은 조치라 비판했다.

▲13일 한국경제·서울경제·매일경제 지면기사 제목 갈무리
▲13일 한국경제·서울경제·매일경제 지면기사 제목 갈무리
▲13일 한겨레 5면 갈무리
▲13일 한겨레 5면 갈무리

경제지는 낮은 인상률을 변호하지만 궁색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매일경제는 최저임금 산출 근거가 부족하다는 지적에 사용자위원 측 지원사격에 나섰다. 본래 최저임금법 2장 4조는 최저임금을 결정할 때 △근로자 생계비 △유사근로자 임금 △노동생산성 △소득분배율 등을 고려하도록 정했는데, 최임위는 관련 내용을 제시하지 않았다. 이에 매일경제는 “올해 1분기 경제성장률 1.7%와 올해 물가상승률 예상치를 합산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한겨레가 지적했듯 2.87%는 한국은행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 2.5%와 물가상승률 1.1%의 합계보다도 낮다.

보수신문과 경제지의 ‘표정 관리’에는 이를 전환점 삼아 재계 숙원을 풀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재계는 최근 최저임금 영향을 받는 노동자들의 실질급여를 낮추는 여러 제도를 재촉하고 나섰다. 업종·지역별 최저임금 차등적용과 주휴수당 폐지 등이다. 서울경제가 13일 1면에 ‘절반의 속도조절… “이젠 규모·업종별 차등화 할 때”’ 기사를 내는 등 경제지들은 최저임금 결정 다음날 일제히 차등적용 제도 도입 필요성을 강조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문화일보 등 보수언론도 기사와 사설로 이를 다뤘다. 서울신문은 15일 이를 두고 “대내외 경제상황과 소상공인 어려움을 앞세운 경영계 공세가 더욱 거세질 것”이라 전망하기도 했다.

▲매일경제는 최저임금 산출 근거가 부족하다는 지적에 사용자위원 측 지원사격에 나섰다. 16일자 12면.
▲매일경제는 최저임금 산출 근거가 부족하다는 지적에 사용자위원 측 지원사격에 나섰다. 16일자 12면.

 

▲지난 2017년 7월11일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인상할 것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미디어오늘
▲지난 2017년 7월11일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인상할 것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미디어오늘

경제지 프레임은 단순히 최저임금 인상률 낮추기가 아니라, 이들 정책으로 최저임금제도 자체를 무력화하는 데 맞춰져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정아 한국고용정보원 부연구위원은 최저임금 차등적용 제도를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최저임금이란 개념 자체가 지금처럼 사회적 관심을 끄는 건 단순하기 때문”이라며 “최저 한계선을 정하고, 이를 모든 사람에게 단일 적용한다는 개념이 사라지면 최저임금 의미가 퇴색할 뿐 아니라 제도가 복잡해져 실제 이행율도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주휴수당의 경우 최저임금법와 노동법이 처음 도입될 때부터 시행됐다. 경제지가 최저임금 인상 때리기에 발맞춰 주휴수당 제도까지 ‘논란화’에 나선 격이다. 이정아 부연구위원은 “경제지로 대표되는 주류언론의 논조는 달라진 적이 없다. 최저임금 인상률이 어떻든 항상 같은 이야기를 해왔다”며 “경제지는 늘 ‘최저임금이 너무 높은 게 문제’란 식으로 말해왔지만, 이들이 주장하는 정책이 실현되면 사실상 제도 자체가 무력화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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