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납금만 채우고 들어갈게” 남편의 마지막 말
“사납금만 채우고 들어갈게” 남편의 마지막 말
3년 간 매일 24시간 600km씩, 한 성실한 택시기사의 죽음…‘사인 미상’ 기록에 유족 과로사 주장

“사납금만 채우고 들어갈게.” 이 말이 마지막이었다. 아픈데 미련하게 일하지 말고 당장 퇴근하라고 아내가 혼내자 택시기사 박철용씨(가명·사망나이 55세)는 걱정말라고 전화로 답했다. 박씨는 당시 장염을 앓았다. 남은 사납금은 1만5000원. 20만3000원 중 18만8000원을 벌고 손님을 찾던 때였다. 2018년 3월4일 자정께 일이다.

다음 날 박씨는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5일 오전 8시 출근을 하지 않던 박씨를 이상하게 여긴 동료 기사들이 집을 찾아갔다. 치주염이나 이틀 전 걸린 장염 외엔 달리 지병이 없는 그였다. 그는 입사 때부터 3년 내리 일 열심히 하는 기사 3위 안에 꼽혔다. “그놈에 사납금이 뭐라고 그리 열심히 살았냐…” 박씨를 발견한 동료 A씨는 탄식했다.

“새벽 2시에 나가 다음날 새벽 4시30분까지 운행”

박씨는 경남 거제 ‘(주)오케이택시’ 기사였다. 2015년 4월 경기도 일산에 아내와 딸을 남겨두고 거제로 내려가 일을 시작했다. 그에게 택시는 “새 삶을 시작할 유일한 보루”였다. 그의 가족은 1년 전부터 공과금도 내기 힘들 정도로 사정이 나빠졌다. 그가 하던 인테리어 시장에 대기업이 진출해 운영이 어려워진 데다 경기 악재가 겹쳤다. 건설현장 일용직을 수개월 뛰었지만 역부족이었고 설상가상으로 치료비가 없어서 방치했던 무릎 통증이 인대 파열 직전까지 가 인력사무소도 나갈 수 없었다. 가장 먼저 화목함이 깨지며 가족관계도 나빠졌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 잘 살아보고자 거제행을 택한 것”이다. 박씨 아내 이혜진씨(47·가명)의 말이다.

박씨는 정말 열심히 일했다. 근무는 새벽 5시에 출근해 24시간 일하고 24시간 쉬는 격일제였다. 다른 기사들이 오전 9시에 출근해 자율적으로 일할 때 그는 4시에 출근했고 매일 ‘24시간 풀타임’을 뛰었다. 2016년 5월 운행기록을 보면 13일 근무 중 새벽 6시에 출근한 날이 3일 밖에 없다. 9일 모두 새벽 4~5시에 출근했고 5월15일엔 새벽 2시부터 다음날 새벽 4시30분까지 26시간 넘게 일했다.

▲박씨는 생전 자신의 운행기록을 표로 다 기록해두었다.
▲박씨는 생전 자신의 운행기록을 표로 다 기록해두었다.

 

이날 주행거리는 870km. 택시기사 통상 주행거리인 250~350km보다 2~3배를 훌쩍 넘는다. 이달 평균 주행거리만 655km고 2016년 최하 한달 평균 주행거리는 540km다. 매일 새벽 4시에 출근해 20~24시간 동안 최소 540km씩 운행하며 1년을 지냈단 기록이다. 이삼형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정책위원장은 “강도는 말 그대로 ‘살인적’”이라며 “돈을 벌기 위해 자신을 버려가며 일하는 기사들이 적지 않다”고 했다.

2015년, 2017년도 정도 차이만 있을 뿐 마찬가지다. 2017년 기록을 보면 그는 1년 기준 하루 평균 20시간 48분 운행했고 6월엔 히루 평균 24시간 15분 일했다. 5시 출근임에도 4시에 출근한 이유는 차량이 그때부터 비어 있었기 때문이다. 교대 기사가 일찍 들어가는 시간에 맞춰 1~2시간이라도 손님을 더 태우려고 부지런을 떨었다. 회사는 그의 성실성을 높이 사 6개월 수습기간을 3개월로 줄여줬다.

휴가는 따로 없었다. 회사가 한 달 1~2일씩 ‘강제배차’란 이름의 휴일을 지정해줬지만 불시에 통보하는 식이었다. 박씨는 쉬고 싶은 날 쉬지 못했고 연차 신청을 할 땐 관리자의 압박을 심하게 느껴 거의 쓰지 않았다. 갑자기 몸이 아파 쉬면 적자를 감수해야 해 병원도 잘 다니지 않았다. 2017년 3월24일 사납금 19만원을 내고 일하지 않은 기록이 있다. 총 6110km, 하루 평균 470km를 주행해 235만원을 번 달이다.

▲'택시는 천직'이라는 문구가 적힌 박씨의 노트.
▲'택시는 천직'이라는 문구가 적힌 박씨의 노트.

 

“택시는 천직이다” 세뇌한 택시기사

박씨는 책임감이 강했다. 그는 24시간 일할 땐 하루 15~25만원 가량 실수입을 벌었지만 운행시간이 10시간 수준으로 줄면 수입도 10분의1로 줄었다. 2016년 4월15일 11시간만 주행한 날 수입은 2만1000원이었고 10월12일 260km만 뛰었을 땐 5만원을 벌었다. 10시간 운행한 11월9일엔 사납금을 내니 3만7000원 적자를 봤다. 동료 A씨는 “박씨는 멀리 떨어진 가족에 대해 애정과 미안함이 매우 컸고 그래서 경제적 노력을 다하려 했다”며 “식사·용변 시간만 빼고 24시간 달리는 그에게 많은 기사들이 ‘쉬면서 일하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택시는 천직이다.” 그는 3년 동안 노트에 운행기록을 빼곡히 적었는데 노트 귀퉁이에서 발견된 문구다. 그는 ‘TAXI → 天職(천직), 하늘이 내린 직업’이라고 써놨다. 그 밑엔 “땅은 정직하다. 농사의 씨뿌리는 마음, 운전으로 먹고사는 것은 정직하다. 그건 농부의 땀과 같다. 땅이 농부에게 거짓없이 결과를 주듯, 내가 노력하고 아픈 만큼 택시가 나에게 돌려준다”는 메모가 있다.

이씨는 메모를 두고 “박씨가 승객 갑질에도 많이 아파했다”고 말했다. 박씨는 일을 하면서 정수리에 뾰루지가 생기고 고름도 고여 애를 먹었는데 부부는 스트레스 때문일 거라 추정했다. 기사 어깨에 발을 올려 조롱하는 승객, ‘내리세요’라 말하면 발로 머리를 툭툭 치는 승객, ‘새끼야 가라면 가’라고 명령하는 승객 등 갑질 종류는 다양했다. 박씨는 “삶에 좌절을 맛본 사람들이 많은 곳이 조선소 아니냐. 나도 그래서 거제로 왔는데 같이 힘든 사람들 우리가 참자”며 넘겼다.

박씨는 2017년부턴 심적으로 더 힘들었다. A씨는 “2017년부턴 택시를 안 모는 것 보다 모는 게 더 고통일 정도로 수입이 줄었다”고 했다. 조선업 경기가 악화되며 조선소 직원도, 외부 유입 인구도 줄고 시민들 호주머니도 얼어붙었다. 2016년 1월 8590km를 운행해 360만원을 벌었던 그는 2017년 12월 6530km를 뛰고 198만원을 벌었다. 운행해도 적자를 보는 지경까지 왔다. 2017년 12월1일 10시간 일하고 2만1000원 적자, 13일엔 12시간 일하고 5만2000원 손해봤고 21일엔 17시간 일하고 1만7000원을 벌었다. 수입이 반토막났다.

▲외국인 손님을 위한 영어 문장 메모, '최선을 다하자'는 문구가 적힌 메모 등.
▲외국인 손님을 위한 영어 문장 메모, '최선을 다하자'는 문구가 적힌 메모 등.

 

당장 눈에 뛴 것은 면역력이었다. 박씨는 보통 감기몸살을 앓으면 약 없이도 하루 푹 자고 나면 나았다. 이씨는 “사망 6개월 전부턴 어디 아프면 낫질 않아서 결국 운전에 방해가 안 될 약한 약을 지어 보내 주기도 했다”며 “몸이 힘들다며 일산에 오는 횟수도 줄었다”고 말했다. “얼굴색이 변했다”는 말도 회사 내에 돌았다. A씨는 “거제 택시업계엔 기사들 돌연사가 자주 있다”며 “그럴 때마다 그 기사들 얼굴색이 안 좋게 변하는 걸 기사들이 다 봐서 '얼굴색이 변했다'는 말을 한다. 박씨도 똑같아서 (사망) 3개월 전부터 기사들이 ‘관리 좀 해라’는 말을 많이 했다”고 밝혔다.

숨진 채 발견돼 ‘사인 미상’… 만성과로 조건 훌쩍 넘긴 박씨

딸의 건강도 좋지 않았다. 박씨는 돈이 모이는 대로 이씨에게 송금했다. 한 달에 2~3차례 50만원, 100만원씩 보냈다. 박씨는 소비를 줄였다. 이씨는 “남편이 월세까지 해서 한 달에 50~60만원을 썼다. 보일러비도 아깝다며 겨울에 보일러도 잘 틀지 않았다”고 했다. 박씨 집엔 선풍기형 난로가 있었는데 그는 귀가 후 샤워할 때 틀어놓고 잠들기 전 끄고 잤다.

박씨가 숨진 채 발견됐을 때 난로는 켜져 있었다. 박씨는 잠옷을 입고 누운 채로 발견됐다. 이씨가 “히터 끌 시간도 없이 잠들기 전 바로 몸에 이상반응이 왔을 거고, 사망 시간은 4일 새벽일 것”이라 추정하는 이유다. 박씨는 4일 새벽 5시쯤 귀가해 5일 오전 8시 발견됐고 그 사이 행적은 아무도 모른다.

박씨 사인은 ‘미상’으로 남았지만 이씨는 과로사라 주장한다. 이씨는 지난 1월 근로복지공단 통영지사에 산재신청서(유족급여)를 접수했다. 사망 후 산재 신청까지 9개월이 걸린 이유는 과로 때문에 사망했을 거라 생각을 하지 못해서다. 마찬가지 이유로 부검을 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 당시엔 “마지막까지 고인의 신체를 훼손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밖엔 없었다.

박씨 노동시간은 산재보상보험법 과로사 재해 기준을 넘는다. 사건을 대리한 권정근 노무사(노무법인 원)는 “업무시간 산출 결과 사망 1주 전 평균 주당 근무시간은 61.47시간, 4주 간 평균은 64.93시간, 8주 간 평균은 61.70시간, 12주간 평균은 65.11시간으로 확인됐다”며 “4주 전인 2월 1~7일 동안엔 94시간을 일했다”고 밝혔다. 산재법은 만성과로 기준을 ‘재해 전 12주 간 업무 시간이 1주 평균 60시간(4주 동안 1주 평균 64시간)을 초과하는 경우’로 정한다. 교대제, 부족한 휴일 등의 조건도 ‘업무부담 가중요인’으로 반영한다.

이씨는 혼자 생계를 부양하면서 딸을 돌보고 있다. 이씨는 “산업재해란 게 인정되면 회사에 전하고 싶다. ‘니들 이러면 안돼. 그리고 평생 미안해해야해’”라고 말했다. 근로복지공단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이달 중 박씨 사건을 심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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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2019-07-07 17:47:54
근무시간만 봐도 살인적이다. 이것이 과로사가 아니면, 어떤 게 과로사일까. 왜 택시업계는 그를 코너로 몰았나. 이렇게 많은 시간을 근무하고, 몸이 상하지 않는다는 게 말이 안 된다. 아마, 택시업계도 과로를 알았을 것이다. 그저 회사에서 돈을 더 벌기 위해서(사납금) 노동자를 사지로 몰았을 뿐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