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도 모르는 반도체산업 ‘위험 외주화’
국가도 모르는 반도체산업 ‘위험 외주화’
[토론회] 원청마다 하청업체 200개로 쪼개진 반도체 제조공정, 상시지속 위험업무 하청노동자들 도맡아... 반도체 아닌 단순노동 분류, 하청인력 규모도 안잡혀

국내 반도체 제조공장에서 위험유해물질을 직접 다루는 업무가 하청업체 노동자들에게 집중되는 한편, 하청은 반도체 산업 통계에 잡히지 않아 노동자들이 무방비에 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일 열린 ‘반도체산업 노동자 건강보호를 위한 과제’ 토론회에서 발표된 조사결과에서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반올림)은 이날 서울 강남구 코엑스 컨퍼런스룸에서 토론회를 열고 반도체 노동자 건강보호를 위한 기존 활동과 향후 과제를 논의했다. 토론회는 산업안전보건 강조주간을 맞아 고용노동부와 산업안전보건공단이 주관했다.

손미아 강원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날 지난해 국내 30여개 반도체 원청공장을 6명의 학자가 방문 실태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IDM(종합반도체업체)와 파운드리업체, 국내장비‧후공정‧부품‧팹리스 등의 원하청 사업체가 조사 대상에 들어갔다.

손미아 교수는 “첨단과학기술이 집약된 반도체 제조업에서 마치 모든 것이 체계적으로 돌아가는 듯이 보이지만, 실제로 노동자 안전을 위한 체계는 없었다”고 지적했다.

▲‘반도체산업 노동자 건강보호를 위한 과제’ 토론회가 2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 컨퍼런스룸에서 반올림 주관·고용노동부와 산업안전보건공단 주관으로 열렸다. 사진=김예리 기자
▲‘반도체산업 노동자 건강보호를 위한 과제’ 토론회가 2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 컨퍼런스룸에서 반올림 주관·고용노동부와 산업안전보건공단 주관으로 열렸다. 사진=김예리 기자

국내 주요 반도체 제조사업장은 무수한 하청업체를 바탕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대개 하나의 원청 공장에 200~300개의 하청업체가 상주한다. 하청 소속 노동자들은 사업장 내 노동자들의 다수를 차지하며 원청 노동자들과 같은 일을 한다. 예컨대 수공정 라인 5개에서 1000여명이 일하는 한 사업장의 경우, 1개의 라인에는 원청 소속 노동자 200명이 일하고 나머지 4개의 라인에는 하청 노동자들이 200명씩 붙는다.

원하청 노동자들의 차이는 하청이 위험유해물질을 무방비로 다루는 일에 집중 투입된다는 점이다. 라인 청소나 화학물질에 담갔던 웨이퍼 닦기, 폐기물 수습, 시설 유지보수, 배관 등 업무다. 이들 업무는 가장 위험물질을 가까이 하면서도 상시 지속된다. 손 교수는 “원청이 하도급에 맡기는 업무 가운데 실질적으로 1000여명이 수년에 걸쳐 계속 반복하는 일에 왜 하도급을 주는지 이해할 수 없는 공정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이들의 위험노동은 ‘반도체 노동’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손 교수는 “반도체 공정에서 원하청 구조는 국가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하청업체 인력규모조차 정확히 집계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정부 통계상 반도체제조업 하청 노동자들이 맡은 작업은 청소·폐기물 관련 산업, 건설업(시설유지 보수) 등 일반 인력회사의 단순업무로 분류된다. 실제 정부의 ‘반도체산업 종사상지위별 근로자 수’ 집계를 보면 2016년 임시·일용근로자 규모는 상용종사자의 1.4%에 불과하다.

▲손미아 강원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교수가 2일 ‘반도체산업 노동자 건강보호를 위한 과제’ 토론회에서 발표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손미아 강원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교수가 2일 ‘반도체산업 노동자 건강보호를 위한 과제’ 토론회에서 발표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손 교수는 원청 사업주가 300인 미만 사내하청 업체 여럿과 계약해 법규제를 우회한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말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도 원청에 하청 노동자에 대한 책임을 명시했지만, 그 무게가 약하다. 처벌에 상한을 둔 한편 하한선은 없는 탓이다. 동법이 도급금지 작업을 명시하는데, 그 대상이 일부 도금작업과 수은·납·카드뮴의 제련·주입 작업에 그쳐 그 외 작업들은 사내 도급을 승인하는 꼴이 됐다.

손 교수는 “국가가 산업안전에 대한 전체 그림을 제시하고, 각 사업주가 뭘 하는지 알고 교류와 소통을 주도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고 있지 못하다”고 꼬집었다.

특히 국가 차원에서 위험물질을 관리하지 않는 점이 가장 큰 문제로 꼽힌다. 화학물질관리법은 업체들이 제작하거나 들여오는 유해 화학물질을 신고하도록 하지만 등록 면제와 변경 관련 예외조항을 뒀다. 손 교수는 “사실상 화학물질을 신고하지 않아도 되는 셈이다. 대체물질을 쓰게 하는 방식의 제재는 아예 없다”고 했다. 산안법엔 국제기준 상 발암물질에 대한 규정 관리 내용도 없다.

손 교수는 반도체 산업의 안전을 관리하는 국가 차원의 체계를 각 작업장에 맞게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도체 산업 현장 전반을 조망하는 안전보건관리 전담 기구를 신설하는 한편, 산업 내 하도급 노동자를 보호하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구체지침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어 위험유해물질을 현장에서 파악하고 감시하는 기반시설과 인력 투입도 시급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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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2019-07-03 18:54:32
우리는 모르는 사이에 위험에 크게 노출된다. 안전한 일자리는 모든 국민이 원하는데, 왜 한국당은 산안법에서 지나치게 기업 편을 드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