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돼지라고? 멧돼지가 무슨 고질라냐”
“탈북 돼지라고? 멧돼지가 무슨 고질라냐”
중앙일보 보도 놓고 DMZ 개념 잘못 쓰였다 지적 쏟아져…수정한 제목도 틀렸다 지적

이낙연 국무총리는 지난 8일 강원도 철원군 민간인출입통제구역을 방문한 자리에서 “DMZ(비무장지대) 내 사격은 자제했지만 멧돼지가 넘어오는 게 분명하면 사살할 수 있도록 유엔사와 협의해 동의를 얻었다”고 말했다. 아프리카돼지열병 차단 조치로 DMZ 이남으로 내려오는 멧돼지를 즉각 사살하라는 지시였다.

그러자 언론은 민간인출입통제구역을 찾아 야생 멧돼지 피해 사례를 보도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보도는 “DMZ 철조망 쉽게 뚫는다 ‘탈북 멧돼지’ 돼지열병 비상”이라는 제목의 중앙일보 기사였다.

중앙일보 보도를 접한 한 누리꾼은 “DMZ 근무도 안한 기자가 글을 썼나 보네. 3중 방책을 돼지가 땅 파고 뚫었다고? 어이가 없다. 방책 밑은 콘크리트야. 방책선은 농가에서 치는 철조망과는 차원이 달라”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누리꾼도 “멧돼지가 GOP 철책을 어떻게 뚫냐. 철책 밑에는 콘크리트로 기초해놨고, 삼중 철책인데, 멧돼지가 고질라냐”라고 비난했다.

중앙일보 보도는 DMZ와 민간인출입통제구역 개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오보였다.

DMZ(demilitarized zone)은 군사분계선을 기준으로 남북으로 각각 2킬로미터씩 4킬로미터의 폭을 갖는 지역이다. 중앙일보 보도 제목을 보면 ‘DMZ 철조망’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말 자체가 성립이 안된다.

10여년간 비무장지대 지역을 취재한 다큐멘터리 감독 박종우씨는 페이스북에서 중앙일보 보도를 두고 “수많은 기자들이 비무장지대 DMZ와 민간인출입통제구역 CCZ을 착각한다”면서 “DMZ와 CCZ은 남방한계선으로 분리된다. 남방한계선은 서쪽 끝 임진강변으로부터 동쪽 끝 강원도 고성까지 한 치의 틈도 없이 ‘철조망’이 아닌 ‘철책’으로 이어져 있다”고 지적했다.

민간인출입통제구역은 남방한계선으로부터 10~12킬로미터에 걸쳐있는 민간인 출입 제한 지역인데 허가를 받고 들어가 영농 활동을 할 수 있다. 민간인 출입이 전면 금지된 DMZ와 민통선의 개념은 아예 다르고, DMZ와 민간인출입통제구역을 가르는 남방한계선의 경우 철책으로 돼있어 ‘멧돼지가 뚫었다’라는 것도 상식적으로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박씨는 “철조망은 멧돼지가 땅을 파고 몸으로 들어 올리면 통과할 수 있지만 철책은 차원이 다르다. 남방한계선은 대부분 세 겹의 ‘3중 철책’으로 되어 있고 철책 아래는 지하침투를 막기 위해 콘크리트와 철심으로 봉쇄돼 있으며 철책 자체에 전자 센서가 달려있어 건드리기만 해도 통제실로 연락이 간다”며 “남방한계선에도 철조망이 있긴 한데, 철책을 위로 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상단에 윤형 철조망을 설치한다. 이처럼 남방한계선은 애초부터 동물이 통과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닌 것이다. 게다가 남방한계선 철책 북쪽에는 추진철책이라고 하여 이와 비슷한 구조의 철책이 한 겹 더 있다”고 지적했다.

▲ 6월 14일 중앙일보 보도.
▲ 6월 14일 중앙일보 보도.

중앙일보 보도는 민간인통제구역 내 경기도 파주시 진동면 농경지를 찾아 야생 멧돼지 피해 상황을 전하는 내용인데, 기사에 등장하는 ‘철조망’은 민통선 이북에서 영농활동을 하는 주민들이 야생동물의 피해를 막으려고 자체 설치한 것이다.

중앙일보는 “밭 둘레는 1.5∼1.8m 높이의 철조망 아래쪽엔 군데군데 흙이 파헤쳐지고 철조망에 구멍이 나 있었다. 5∼8년생 도라지가 자라고 있는 밭은 움푹 팬 멧돼지 발자국이 어지럽게 나 있고, 파헤쳐진 굵은 도라지가 밭 위로 드러나 있었다”고 보도했다.

애초부터 DMZ와 민간인통제구역 개념을 헷갈렸을 뿐 아니라 기사에 나온 철조망도 농민이 임의로 설치한 차단선에 불과하다.

관련 보도에 지적이 쏟아지자 중앙일보는 “‘민통선 멧돼지 돼지열병’ 기사의 제목을 다듬는 과정에서 ‘민통선 철조망’을 ‘DMZ 철조망’으로 잘못 표기해 수정했습니다”라고 공지했다. 중앙일보 기사 제목은 “‘민통선 철조망’ 쉽게 뚫는 멧돼지…돼지열병 옮기나”로 바뀌었다. 애초 제목에서 ‘DMZ 철조망’과 ‘탈북 돼지’라는 말은 사라졌다.

하지만 박씨는 “민통선은 도로상에 검문소를 두어 일반인의 출입을 통제할 뿐 구획을 나누는 철조망 자체가 없다”면서 ‘민통선 철조망’이라는 기사 제목 역시 틀렸다고 지적했다.

이번 중앙일보 보도는 개념을 정확히 할 필요가 있는 용어를 혼용해 잘못 쓰는 폐해가 드러난 사례로 꼽힐 수 있다. 잘못된 보도의 폐해는 크다. 최초 중앙일보 기사에 달린 수많은 댓글은 ‘문재인 정부가 비무장지대 GP를 철거하니까 멧돼지들까지 DMZ를 넘어온다’는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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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니 2019-06-18 11:44:06
모르고 썼을까 아니면 ‘문재인 정부가 비무장지대 GP를 철거하니까 멧돼지들까지 DMZ를 넘어온다’ 라는 여론을 이끌기 위해 썼을까? 한두번 당한 것이 아니니 이런 의심마저 든다.

바람 2019-06-17 19:28:29
예전 이명박근혜 정권 때 MBC가 물타기용으로 멧돼지 보도를 많이 했지. 근데, 중앙일보는 팩트도 틀리네. 제발 국민 낚는 기사 쓰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