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달 째 국회 보이콧 중인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10일 지상욱 바른미래당 의원이 주최한 ‘보수와 진보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에 대거 참석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나경원 원내대표 등 한국당 의원 20여 명, 오신환 원내대표 등 바른미래당 의원 8명, 민주당 의원 9명 등이 참석했다. 한국당 의원들은 이날 문희상 국회의장과 여야 대표의 정례모임(초월회),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 6·10민주항쟁 기념식 등엔 불참하면서도 한국당 주최 행사만큼 많이 모였다.

민주·한국·바른미래 3당 원내대표 만남은 이뤄지지 못했다. 토론회를 주최한 지상욱 의원은 “밥 잘 사주는 누나(나경원), 맥주 잘 사주는 형(이인영), 잘생긴 동생(오신환) 세 분이 모여서 어떻게 하면 국민이 보기에 아름다운 모습으로 국회를 정상화시킬지 계기가 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고 했지만 이인영 원내대표는 당 일정과 6·10민주항쟁 기념식 참석을 이유로 토론회에 참석하지 못했다.

여러 의원들이 모여든 만큼 세미나실은 당 관계자와 취재진으로 발 디딜틈이 없었다. 참석 의원 소개에만 15분이나 걸렸다. 참석 의원들은 현수막 앞에서 “국회 정상화를 위하여 파이팅”을 외치며 기념사진까지 찍었다. 이후 의원들이 한 명씩 돌아가며 발언한 탓에, 발제·토론자들은 1시간30분 뒤에야 첫마디를 뗐다.

▲ ▲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오신환 바른미래당 의원 주최로 열린 '보수와 진보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에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참석했다. 사진=김용욱 기자
▲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지상욱 바른미래당 의원 주최로 열린 '보수와 진보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에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참석했다. 사진=김용욱 기자

토론회에 온 한국당 의원들은 현 정부가 ‘보수를 배척하려 한다’는 주장을 이어갔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혹자가 이념의 시대는 끝났다고 하는데 결코 틀린 말”이라며 “문재인 정부 들어서 보수 가치에 대해 ‘궤멸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거 아닌가라는 부분때문에 힘들다. 시장경제, 효율 등 우파 가치를 수구적으로 매도하는 걸로 보여서 매우 안타깝다”고 말했다.

한국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 원장 김세연 의원은 “어느 칼럼에 이런 대목이 있었다. 적, 즉 에너미(enemy)로 상대를 규정하면 절멸, 궤멸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죽여 없애는 게 내가 취해야 할 행동으로 인식하고, 반면 경기에서는 정해진 룰에 따라 공정하게 경쟁해서 결과가 나오면 승복한다. 적대시하는 관계에서 탈피해 합의한 룰에서 선의의 경쟁하고 결과를 승복하는 인식으로 바뀌는 계기가 되는 토론회”라고 말했다.

반면 오제세 민주당 의원은 “팩트(fact)와 내용을 갖고 보수는 어떤 입장, 진보는 어떤 입장이라고 제시해야 국민이 판단할 건데, 사상누각적인 논의를 함으로써 생산적이고 실질적 토론이 아닌, 진영논리가 반복되는 보수·진보 토론은 정치발전과 국민 판단에 도움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치개혁특위 민주당 간사 김종민 의원도 “국회는 옳은 것을 합의하는 게 아니라 합의가 옳다고 선포하는 기능을 해야 한다. ‘막장국회’는 안 된다는 마음이 있어서 여러 고민을 하는데 결단이 필요해지는 시기”라고 밝혔다.

▲ 10일 오전 '보수와 진보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에서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왼쪽)와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김용욱 기자
▲ 10일 오전 '보수와 진보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에서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왼쪽)와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김용욱 기자

전해철 민주당 의원은 “협치는 한 번에 1대1로 만나거나 정책을 입법해서 되는 게 아니라 제도화돼야 한다”며 “야당이 내각 추천 기회를 갖는다든지 예산 협의 협조하거나 좀 더 나아가 ‘소연정’ 등등을 이야기하는 게 협치의 제도화다. 작년 11월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 합의도 협치의 중요한 제도화”라고 말했다. 최근 당·청 회동 과정에서 1대1로 만나자거나, 민주평화당과 정의당을 빼고 3당만 만나자던 황교안 한국당 대표를 겨냥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유승민 바른미래당 의원은 “보수와 진보가 서로 너무 좁은 가치에 매몰돼 있는 거 아닌가 생각한다”며 여당과 제1야당인 한국당을 모두 비판했다. 유 의원은 “헌법을 열심히 읽어보면 보수·진보 모두 지켜야 할 가치들이 들어있다”며 “보수 진보 가릴 거 없이 실력과 경쟁력이 모자라는 부족한 정치를 하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다. 선거가 늘 과거 발목잡기 식으로 노무현 싫으니까 이명박 찍고, 박근혜 싫으니까 문재인 찍는 식으로 흘러가면 나라의 미래를 위해 경쟁력있는 개혁을 해낼 정치로 가기가 굉장히 힘들다”고 말했다.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오늘은 6·10민주항쟁 32주년 기념일이다. 우리가 이뤄낸 민주주의 가치 속에서 오늘날 헌법을 만들었고 헌법의 1조1항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명시돼 있다. 헌법이 정한 민주와 공화 가치는 보수와 진보의 이념보다 더 우선하는 가치”라며 “한쪽에선 ‘독재의 후예’라고 얘기하고 한쪽에서 ‘빨갱이’라고 얘기하는 모습을 자성하면서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한다”고 했다.

▲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오신환 바른미래당 의원 주최로 열린 '보수와 진보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에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참석했다. 사진=김용욱 기자
▲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지상욱 바른미래당 의원 주최로 열린 '보수와 진보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에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참석했다. 사진=김용욱 기자

이날 발제를 맡은 손병권 중앙대학교 정치국제학과 교수는 한국 정치 개선의 방향으로 △보수·진보 진영 내부에서 이념적 연성세력과 경성세력의 공존 △당내 민주주의 통한 보수·진보 세력 간 대화 창구 연결핵 구축 △역대 정부가 이룩한 우수한 업적 공유하는 축적의 정치 지향 △젊은 세대 충원해 세대 간 대화 통한 협력 토대 구축 등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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