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장관 박양우)가 산하 기관 노동자들과 단체교섭 중에 노동쟁의 대응 매뉴얼을 만들어 논란이다. 노동자들은 문체부가 수세적인 모습을 보이다가 노조가 쟁의권을 얻자마자 파업 대응부터 준비했다며 비판했다. 해당 매뉴얼에는 노조가 폭력을 쓰거나 불법파업을 할 가능성을 검토했을 뿐 아니라 직장폐쇄까지 준비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국립국악중고등학교, 국립전통예술중고등학교, 국립중앙극장,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등 14개 기관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문재인 정부 들어 문체부가 무기계약직으로 직고용한 노동자들은 ‘민주노총 문화체육관광부 교섭노조연대(교섭노조연대)’를 꾸렸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기관 별로 처우가 다르고, 대통령 공약이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이지만 이전보다 처우가 나아지지 않거나 근속을 인정하지 않는 등의 문제로 지난해 10월부터 사용자인 문체부와 임금·단체교섭 중이다.
    
교섭연대노조와 문체부는 13차례 교섭 끝에 이견을 좁히지 못했고, 지난달 2일 노조는 쟁의권을 확보했다. 그러자 다음날 문체부는 14쪽에 달하는 ‘공무직노동조합 노동쟁의 대응 매뉴얼’을 만들었다. 미디어오늘은 현장 노동자와 함께 해당 매뉴얼을 검토하며 의견을 들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소속 박희주 국립국악원분회장(청소노동자)은 지난 5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문체부가 법이라는 선을 그어놓고 버티겠다는 의도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노조가 불법·폭력행위하면 직장폐쇄로 맞대응? 
 
매뉴얼은 ‘대응원칙’으로 시작하는데 첫째가 ‘노동쟁의 발생에 따른 업무 차질 최소화 및 불법행위 시 엄정 대응’이다. 박 분회장은 “우리 정규직화 한다면서 같이 식사하고 식구라고 했지만 교섭할 때 오히려 국립국악원(소속 문체부 공무원의) 태도가 콧방귀를 끼거나 혼잣말로 상스러운 말을 하는 등 우리를 무시했다”며 “그런 시선으로 우리를 우습게 본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일부 문체부 관계자가 교섭에 늦거나 삐딱하게 앉아 이를 노조가 수차례 항의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달 만든 '공무직노동조합 노동쟁의 대응 매뉴얼' 일부
▲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달 만든 '공무직노동조합 노동쟁의 대응 매뉴얼' 일부
▲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달 만든 '공무직노동조합 노동쟁의 대응 매뉴얼' 중 합법파업과 불법파업 공통점을 설명하는 부분
▲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달 만든 '공무직노동조합 노동쟁의 대응 매뉴얼' 중 합법파업과 불법파업 공통점을 설명하는 부분

매뉴얼 곳곳에는 노조가 불법행위를 할 경우 대응책이 담겨있었다. 매뉴얼 3쪽 ‘기관별 대응 요령’ 에는 ‘노동쟁의 예방’이라며 ‘불법 노동쟁의 행위시 엄중대처’를 또 언급했다. 매뉴얼에서 전 기관이 ‘파업 참가 현황’과 ‘폭력행사 등 위법사항 발생 상황’을 신속하게 보고해야 한다고도 했다. 이에 박 분회장은 “우리는 절대 폭력 안 쓰고 욕도 안 한다”며 “항상 문체부를 존중해왔고 파업하면서도 존중할 거다”라고 말했다. 

문체부는 매뉴얼에서 합법파업과 불법파업의 공통점을 언급하면서 직장폐쇄를 설명했다. ‘사용자가 노조 쟁의행위에 대해 직장을 폐쇄해 노무수령을 거부하는 사용자의 쟁의행위’라고 정의한 뒤 요건·방법·절차·효력 등을 상세히 적었다. 직장폐쇄 관련 노동법조항 뿐 아니라 실제 ‘직장폐쇄 신고서’까지 첨부했다. 

박 분회장은 “국기기관은 만인의 것인데 문을 닫아서 해결된다고 보느냐”며 “국립국악원에서 큰 공연들이 있는데 직장폐쇄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말했다. 이어 “합의를 이루고 조합원들과 얘기하자는 게 아니”라며 “조합원들이 알면 격분할 것”이라고 말했다.  

합법이란 무기로 버티겠다는 문체부

박 분회장은 교섭 초기 문체부 측 노무사가 교섭을 주도한 것을 떠올렸다. 당사자인 문체부와 노동자들이 각 기관별 특성과 예산을 고려해 현실에 맞는 해법을 찾아야 하는데 문체부 공무원보다 노무사가 더 말을 많이 했다고 전했다. 박 분회장은 “나중엔 노무사가 교섭을 너무 진행해서 이를 문제 삼았다”며 “자기네들이 법이라는 보호선 안에서만 있으려고 하고 성의 없게 ‘검토해보겠다’는 말만 반복했다”고 비판했다. 

이런 태도가 매뉴얼에도 그대로 반영됐다는 게 박 분회장의 평이다. 해당 매뉴얼에는 부당노동행위 사례를 제시해 이를 해선 안 된다는 내용도 상당수다. 파업·태업·피케팅 등 쟁위행위별로 어떻게 합법적으로 대응해야 하는지 적었다. 한 예로 ‘집단적인 생리휴가’의 경우 이 역시 쟁의행위라며 “기관장은 여성들 집단 보건휴가 사용으로 업무 마비가 예상될 경우 파업인지 여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고 단서를 달고 ‘생리휴가는 무급처리’라는 지침을 덧붙였다.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으면서 노조를 압박할 수 있는 방안을 시기별로도 제시했다. 준비단계에선 문체부 운영지원과를 중심으로 ‘노동쟁의대비 상황실’을 꾸리고, 실제 쟁의가 발생하면 노조의 동향과 일정, 참가자·직종·인원까지 파악해 보고하도록 했다. 쟁의행위를 지속할 경우 ‘청사 점거를 대비한 방호 태세를 준비’하도록 하고 ‘언론보도 등 대책’ 마련도 주문했다. 각 시기별 담당부서도 규정했다. 결국 진정성 없는 대화로 교섭결렬까지 가면서 법만 지키겠다는 태도에 실망했다는 게 박 분회장의 생각이다.   
 
현장 노동자들의 요구사항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공약은 ‘무기계약직 전환’으로 변신했다.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는 말에 당연히 처우도 오르고 기관 내 공무원과 비정규직이었던 자신들의 차별도 없어질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근속을 인정하지 않아 실제론 정규직으로 볼 수 없으며 심지어 기존 용역체제일 때보다 임금이 수십만원씩 깎인 노동자들도 있다는 게 박 분회장의 설명이다. 반면 직고용을 했는데도 임금이 오른 노동자는 없다고 했다. 같은 문체부 소속으로 같은 일을 하지만 기관별로 임금이 다른 것도 해결과제다. 

▲서울 서초동 국립국악원에 붙은 현수막. 사진=장슬기 기자
▲서울 서초동 국립국악원에 붙은 현수막. 사진=장슬기 기자

 

그러면서 공무원들 편의에 맞게 휴가를 월초에 미리 내야하는 등 사소한 불편이 늘었고 이해할 수 없는 강요도 생겼다고 한다. 박 분회장은 “다른 기관 중에는 공무원들과 복지포인트 차별이 없는 곳도 있지만 국립국악원은 40만원씩 주는데 여기서 강제로 민간보험을 가입하게 해서 20만원도 못 받아가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직장에서 4대보험을 가입함에도 따로 보험을 들도록 하면서 납득할만한 이유를 듣지 못했다고 박 분회장은 말했다. 

노조활동을 보장하라는 것도 노조의 요구다. 현재 국립국악원 노조는 조합원 200명이 넘지만 박 분회장은 전임자가 아니라 자신의 휴가를 사용하며 노조활동을 해왔다. 노조가 꾸준히 주장해서 문체부는 최근 타임오프제 1만1000시간을 안으로 내놨다. 박 분회장은 “사무실 줄만한 곳이 없다는 이유로 국립국악원은 노조 사무실도 없다”고 말했다. 서울 서초동 국립국악원엔 총 6개의 건물이 있다.

문체부, “법 지키려고 매뉴얼 만들어”

문체부는 왜 대응매뉴얼을 만들었을까. 문체부 운영지원과 관계자는 5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노조와 협상하다 결렬됐는데 파업 찬반투표 가결된 걸로 알고 있다”며 “소속기관에서 단체행동 관련 지식이 없어 담당자들이 부당노동행위를 하거나 법을 어길 수 있어서 그런 일이 없도록 매뉴얼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달 만든 '공무직노동조합 노동쟁의 대응 매뉴얼' 표지
▲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달 만든 '공무직노동조합 노동쟁의 대응 매뉴얼' 표지

 

‘불법행위 시 엄정 대응’, ‘폭력행사 등 위법행사 발생 상황 보고’ 심지어 직장폐쇄 등을 언급한 것에 대해 관계자는 “노무사를 채용했는데 민간에서 쓰던 매뉴얼을 그대로 넣은 것 같은데 우리는 미술관·박물관 등이라 직장폐쇄는 있을 수 없다”며 “오히려 문을 닫지 않게 하려고 비상운영계획을 세웠다”고 말했다. 

협상에 미온적이라는 지적에 해당 관계자는 “인사권은 협상 대상이 아닌데 노조에서 요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인사권’은 성폭력이나 직장 갑질 발생시 노사공동위원회에서 처리하는 걸 가리킨다.

지난해 국립국악원 무용단에서 성희롱, 갑질 등을 당했다는 증언이 나와 논란 크게 일었다. 무용계에 만연한 갑질과 성희롱이 국립국악원 무용단 사태를 계기로 터졌다는 분석이 언론에 쏟아졌다. 

문제제기 이후 문체부가 ‘공무원 신분이 아니다’라는 등의 이유로 진상조사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는 지적이 있었고, 진상조사단을 꾸리면서 국악원 측과 무용단원 간 갈등이 벌어졌다. 교섭노조연대가 성폭력·갑질 발생시 노사공동대응을 요구한 이유 중 하나다. 

사태를 겪으며 무용단 뿐 아니라 창작단·민속단·정악단 등도 국립국악원 노조에 가입했다. 최저임금이라도 받아야 한다며 파업했던 2017년 60여명에 불과하던 국립국악원 노조는 현재 200여명으로 늘었다. 문체부는 여전히 노사공동대응을 거부하고 있다. 

같은 일을 하는데도 기관별로 임금이 다르다는 지적에 문체부 관계자는 “문체부 뿐 아니라 전 부처가 그동안 각 기관에서 임금을 책정해왔기 때문에 차이가 있다”며 “예산 한도 내에서는 많이 챙겨드리려 하지만 아직 어떻게 해결할지 확정을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부분을) 기획재정부에도 설명해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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