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9월경 조선일보 방 사장이라는 사람과 룸싸롱(룸살롱) 접대에 저를 불러서 (김종승 소속사) 사장님이 방 사장님이 잠자리 요구를 하게 만들었습니다. 몇 개월 후 김종승 사장이 조선일보 방 사장님 아들인 스포츠조선 사장님과 술자리를 만들어 저에게 룸살롱에서 술 접대를 시켰습니다.”

지난 20일 ‘조선일보 방 사장’ 사건 관련 최종 심의 결과를 발표한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2009년 신인 배우였던 고 장자연씨가 문건에 남긴 이 내용의 실체도 제대로 밝히지 못했다.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위원장 권한대행 정한중)는 이중 ‘조선일보 사장 아들’(방정오 전 TV조선 대표)에 대한 술 접대 행위만 사실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마저도 방 전 대표에게 술 접대 강요 등 범죄사실을 판단할 자료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했다. 설사 범죄 사실을 입증할 증거나 증언이 나왔더라도 관련 혐의는 공소시효가 지났다.

더구나 ‘조선일보 방 사장’이 누구인지는 정확히 특정조차 하지 못했다. 대검 진상조사단에서 13개월이나 조사를 진행한 ‘장자연 리스트’ 사건 관련 과거사위 심의 결과가 ‘용두사미’(龍頭蛇尾)였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 2009년 3월7일 신인 배우였던 장자연씨가 자신의 이름과 사인, 지장 날인이 적힌 자필 문건을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진=노컷뉴스
2009년 3월7일 신인 배우였던 장자연씨가 자신의 이름과 사인, 지장 날인이 적힌 자필 문건을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진=노컷뉴스

그동안 장자연 문건에 등장한 ‘방 사장’이 누구인지 밝히는 일은 장자연 리스트 사건 재조사에서 가장 핵심적인 진상 규명 과제로 꼽혔다. 그러나 과거사위는 지난 2009년의 경찰·검찰의 부실한 수사를 이유로 “장자연이 2008년 9월경 ‘조선일보 방 사장’에게 술 접대를 하고 잠자리를 요구받은 사실이 있는지, 그 상대방과 경위, 일시, 장소 등을 확인할 수는 없었다”고 했다.

 

결국 “장자연 문건에 나온 ‘방 사장’은 방상훈 사장이 아니라 방상훈 사장 동생 방용훈 코리아나호텔 사장”이라고 결론 낼만한 결정적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면서 되레 조선일보 측에 공격의 빌미를 제공했다.

과거사위가 직함만 들어도 누구나 알 만한 공적 인물인 조선일보 사주 이름들을 익명으로 처리해 보도자료를 낸 게 무색할 정도로 설명은 부실했다. 장씨가 방용훈 사장을 ‘조선일보 방 사장’으로 인식하였을 가능성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설명해도 모자를 판에 “방AA(방상훈)이 장자연 문건의 ‘조선일보 방 사장’인지 여부를 규명하기 위한 수사가 미진했다”는 이미 충분히 알려진 내용을 자세히 서술했다.

조선일보는 21일 1면과 10면, 11면에 걸쳐 과거 검찰 수사결과와 방상훈 사장 명예훼손 사건 법원 판결에서 ‘방상훈 사장과 장자연은 무관하다’는 판단을 근거로 과거사위 발표에 대해 “조선일보와 임직원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법적 조치를 강구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 한눈에 보는 장자연 사건 핵심 인물 관계도. 구성·그래픽=강성원·이우림 기자. 사진=TV조선·ⓒ연합뉴스
▲ 한눈에 보는 장자연 사건 핵심 인물 관계도. 구성·그래픽=강성원·이우림 기자. 사진=TV조선·ⓒ연합뉴스

우선 과거사위가 방용훈 사장과 장자연 문건의 관련성을 판단한 내용을 보면, 장씨가 방 사장을 ‘조선일보 사장’으로 인식했을 가능성의 설명이 너무 간략하거나 출처도 불명확하다.

 

과거사위는 △2007년 10월경 A중식당에서 방용훈 사장이 장자연을 만난 사실이 확인되는 점 △당시 방 사장이 술자리 등에서 ‘조선일보 방 사장’으로 불리기도 한 점 △방 사장의 지인 한아무개가 김종승의 누나 및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조선일보 방 사장의 친구’라고 소개한 사실이 있었던 점 등을 ‘조선일보 방 사장’ 의심 사유로 꼽았다.

하지만 2007년 10월경 A중식당에서 방 사장과 장씨를 함께 만났던 여러 참석자가 어떤 진술을 했는지와, ‘방 사장과 장자연이 이후에도 여러 번 만난 것으로 안다’고 진술한 참고인들의 조사 내용은 생략돼 있다.

이미 언론 보도를 통해 ‘2008년에도 방 사장과 장자연이 술자리에서 만나는 자리에 권재진 전 법무부 장관(당시 대검 차장)과 박문덕 하이트진로 회장이 합석했다’는 진술도 나온 것으로 알려졌지만 과거사위 발표에서 이런 언급은 없었다. 문준영 과거사위 위원(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발표 후 권 전 장관 등에 대한 조사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권 전 장관은 조사에 응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과거 부실하게 수사하고 핵심 증거를 인멸 또는 은폐한 수사 책임자들에게 면죄부를 줬다는 비판도 나온다. 과거사위는 과거 수사검사가 중요 혐의를 수사하지 않거나 사건을 은폐하는 결과를 만드는 등 총체적인 부실 수사와 법 왜곡 책임이 있다고 하면서도 처벌할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고만 권고했다.

게다가 과거사위는 수사를 담당하고 지휘 라인에 있었던 검사들 이름 한 명 익명으로도 밝히지 않았다. 이 사건 주임검사가 수사 당시 후배 검사로부터 ‘수사 대상자의 배우자가 검사’라는 말을 들었다고 하면서도 누군지 밝히지 않고 “부적절한 언행에 해당한다”고 교육을 권고했다. MBC ‘PD수첩’이 공개한 장자연 사건 검찰 수사, 지휘라인은 임정혁 성남지청장-김영준 차장검사-김형준 부장검사-박진현 담당검사다.

 

▲ 법무부 검찰 과거사위원회 정한중 위원장 권한대행이 지난 20일 경기도 과천 정부과천청사 법무부 회의실에서 '장자연 리스트 사건'에 대한 최종심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 법무부 검찰 과거사위원회 정한중 위원장 권한대행이 지난 20일 경기도 과천 정부과천청사 법무부 회의실에서 '장자연 리스트 사건'에 대한 최종심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장자연 리스트 사건 대검 조사단원인 김영희 변호사는 21일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조사단 내부 갈등이 언론에 보도된 배경에는 검찰 내부의 조직적 반대가 느껴질 정도로 수상한 정황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김 변호사는 “가장 중요한 갈등의 원인이라고 하면 검사들은 성폭행 의혹 부분을 수사에 못 넘기게 하려고 정말 총력전을 했다”며 “우리가 직접적으로 수사를 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고, 굉장히 합리적으로 수사 개시 여부를 검찰이 검토해 달라는 의견이었는데도 그것조차도 막으려고 조직적 차원에서 반대가 있지 않았나 느꼈다”고 술회했다.

장자연 사건 조기영 조사단원(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이날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 인터뷰에서 과거사위가 조사단에 포함된 검사 두 명의 ‘성폭력 혐의 재수사 반대’ 소수 의견을 받아들였다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조사단의 조사 방식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그런 일이 있었는지 여부를 수사 기관이 조사를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다수 의견이었다”며 ‘기소를 할 수 있는 수준의 증거가 확보된 게 아니었다’는 검사의 판단도 “보통 성범죄의 경우는 피해자 진술 하나만 가지고 기소하는 경우도 있어 적절한 기준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관련기사 : 검찰 과거사위 “장자연 ‘조선일보 사장 아들’ 술접대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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