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례 1

서울 삼청동 금융연수원 앞 용○○이라는 일식집이 있었다. 단골손님이었던 청와대 인사와 출입기자들은 갑자기 발길을 끊었다. 그리고 최근 일식집은 중식집으로 바뀌었다. 중식집 점심코스는 2만9000원이다. 다시 청와대 인사와 기자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 사례 2

중소벤처기업부 대변인실은 일본에서 열리는 한 컨벤션 행사를 시찰하기 위해 박영선 장관이 출장을 간다며 출입기자들에게 취재 협조 요청 공문을 보냈다. 공문 마지막엔 “항공, 숙박 등 출장 경비 지원은 별도로 없습니다”라고 공지했다.

# 사례 3

한 통신사 기자는 “약 1년 정도 경제관련 행사 취재 때 받은 제품을 자선바자회에 내놓은 적이 있어 환산해봤더니 300만원 정도였는데 지금은 1년에 20-30만원 내외 정도다”라고 말했다.

 

세 가지 사례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하 김영란법)이 2016년 9월 시행되고 변화된 모습들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김영란법 시행 3년을 보낸 한국 사회 기자들에게 물었다.

지난 2015년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은 부정청탁금지법 설명 기자회견에서 “이 법에 대한 엄청난 저항세력은 사실 ‘우리 안의 부패심리’다. 관행적으로 일만 생기면 청탁전화 한 통, 돈 봉투 한 장을 챙기던 우리들 자신의 부패한 습관이 바로 그것”이라며 “쉽게는 이 법을 ‘더치페이법’이라고 할 수 있다. 각자 자기 것을 자기가 계산하는 습관을 들이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회견장을 찾은 기자만 수백 명이었다. 김영란법이 갖는 사회적 파급력도 있었겠지만 김영란법 적용 대상에 언론사와 언론기관 재직자(기자)가 포함된 탓이었을 것이다.

 

김영란법 시행 전후로 대부분 언론매체는 내부지침을 마련했다. 한 경제지 매체는 “모든 임직원과 임직원의 배우자 등은 직무관련성이 있는 자로부터 유가증권 등 일체적 재산적 이익과 주류와 골프 등 유무형의 재산적 이익을 받지 않고 불가피할 경우 김영란법이 정한 음식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비 10만원의 한도를 넘지 않는다”는 내용의 내부지침을 만들었다. 부정청탁 자가 진단 체크리스트도 마련해 이에 걸릴 경우 청탁방지담당관에 신고토록 했다.

김영란법 때문에 현실은 많이 바뀐 것처럼 보이지만 음성적으로 김영란법을 피하는 일이 다반사로 벌어지고 있다.

한 인터넷매체 경제부 기자는 “김영란법이 있었어요? 없어진 줄 알았는데요”라고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그는 “과거 언론사 매체가 골프 접대를 받았다면 이제는 언론사 간부들이 기업체에 광고를 받기 위해 골프 접대를 하러 다닌다. 회사 비용으로 처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 통신사 기자는 “전자담배 A사의 경우 김영란법을 피하기 위해서 제품출시행사에 온 기자들에게 대여명단을 작성하도록 하고 제품을 줬다”면서 “형식적으로 빌려주는 거지만 사실상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홍보담당자 사이에서 기자들을 만나러 갈 때 챙기는 ‘진리’로 통하는 선물이 있다. 2만원 상당의 돈을 넣은 스타벅스 기프트 카드다. 김영란법에 걸릴 위험도 없고 서로 부담되지 않은 선에서 최고의 선물로 통한다.

한 골프용품 회사는 주최하는 행사에 기자들이 참석할 때 집주소를 적도록 하고 있다. 행사에서 직접 선물을 주면 눈에 띄니 기자들 집으로 골프화나 의류를 보내야하기 때문이다.

 

▲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2015년 3월10일 서강대학교 다산관에서 자신이 처음 제안해 국회를 통과한 ‘김영란법’을 둘러싼 논란에 대한 입장을 밝히기 위해 기자회견을 열었다. ⓒ 연합뉴스
▲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2015년 3월10일 서강대학교 다산관에서 자신이 처음 제안해 국회를 통과한 ‘김영란법’을 둘러싼 논란에 대한 입장을 밝히기 위해 기자회견을 열었다. ⓒ 연합뉴스

음식 제공을 불가피하게 받으면 3만원 한도 내에서 받으라는 김영란법 조항은 무력화된지 오래다. 홍보담당자들은 기자 1명을 만나면서도 2명을 만난 것처럼 허위로 꾸미고 식사 비용을 처리하고 있다.

 

경제지 기자는 “요즘 출입처에서 가격 신경쓰면서 결제하는 건 못봤다”면서 “눈대중으로도 1인당 3만원이 넘어가서 걱정하자 출입처 사람이 ‘누구 기자, 1명 더 있는 것 몰랐어’라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10년차 경제지 기자는 “한 기업은 자기 쪽 홍보팀이 7명이 나온다고 해서 갔는데 실제 나온 사람은 3명이었다”면서 “기자들 음식 제공 때 인원을 부풀려서 보고하는 건 비일비재한 일”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경제지 기자는 “출입처에서 밥을 사면 2차는 내가 사는 식으로 하고 있다”면서도 “김영란법이 시행됐지만 여전히 기업에선 기자들이 돈 내는 걸 부담스러워한다. 법 문제가 아니라 문화의 문제다. 기자들도 돈 안내는 게 습관이고 기업들도 사주는 걸 당연하게 생각한다. 3만원이 넘지 않는 선에서 기자들이 돈 내는 걸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한 지역의 공공기관 홍보담당자는 “기자실에 있으면 기자들이 점심 얻어먹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3만원 기준도 거의 안 지킨다. 김영란법 시행 전과 바뀐 게 없는데 지킨다고 볼 수 있겠느냐. 일부 기관은 일정 금액 수준 이하면 증빙 작업을 하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정부 부처나 기업 해외 행사 취재시 언론사가 비행기 티켓과 숙소 비용을 처리하지만 식사나 관광 비용은 여전히 주최 측이 부담한다는 증언도 많았다. 행사가 끝나고 교통비와 숙박비를 광고로 보전해준다는 것도 음성적으로 널리 퍼진 김영란법 피하기 방법이다.

현재 퇴사한 경제지 기자는 “구단에서 전지훈련을 가면 기자들에게 얼마씩 찔러주는 관행이 있었는데 김영란법 때문에 막히니까 기자에게 사보 기고를 요청하고 고료를 줬다는 명분으로 돈을 주는 것으로 변했다”고 말했다.

12년차 통신사 기자는 “음성화된 건 못 잡는다. 사보 기고나 광고 밀어주기는 물증으로 잡히지 않는다. 해외 출장 비용도 언론사가 자체 해결하고 있지만 페이백 해주는 방식으로 음성화됐다”고 말했다.

한 경제지 기자는 “출장 비용을 언론사에서 처리하고 광고비로 돌리는 것으로 아는데 그게 불법이라고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걔네들이 홍보를 해달라고 하는 건데 사비를 들여서 거기까지 갈 수 있는 매체가 얼마나 되겠느냐”고고 말했다.

직무와 관련된 공식 행사에서 주최자가 참석자에게 통상적인 범위에서 일률적으로 제공하는 교통, 숙박, 음식 등의 금품은 김영란법 적용 예외가 된다는 유권해석으로 인해 기자들이 교통 및 숙식 비용을 부담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매해 6월 중소기업중앙회가 주최하는 ‘리더스 포럼’은 기자들에게 화려한 행사로 통한다. 정치 사회 유력인사가 강연자로 나오고, 연예인들의 공연은 기본이다. 참석자들끼리 골프를 치고 요트를 타기도 한다. 올해 행사는 제주도에서 3박 4일 일정으로 진행된다. 올해 프로그램 일정을 보면 첫째 날 개그맨 전유성씨 교양 강연을 시작으로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강연, TV조선 미스트롯 우승자 송가인의 공연이 있다. 둘째 날에는 반기문 위원장 토크콘서트,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강연이 있다. 셋째 날에는 오전 힐링투어를 하고 오후 마술쇼 공연 관람이 예정돼 있다. 환송만찬에 연예인 김범수와 한혜진이 나온다. 김기문 중기중앙회장은 “중소기업 리더스 포럼을 국내 최고의 명품으로 변화시켜 중소기업의 자부심을 높이는데 주력한다”고 밝힌 바 있다.

문제는 관련 행사에 기자들이 일체 비용 부담 없이 참석한다는 것이다. 출입 기자에 따르면 중소기업 중앙회는 리더스 포럼 행사 기자 참석에 국민권익위의 유권해석을 얻어 문제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고 한다. 지난해 관련 행사는 제비뽑기를 통해 50여명의 기자들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 ⓒ 권범철 화백
▲ ⓒ 권범철 화백

한 기자는 “요즘 시대 이런 게 가능한가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기자 입장에선 자체 비용없이 ‘화려한’ 행사에 참석하는 것이 찜찜하지만 부처 장관 등 유력인사들을 현장 취재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려있어 취재 유혹이 크다고 한다.

 

다만, 복수의 기자들은 ‘용돈’ 개념의 금품 수수는 사라졌다고 입을 모았다. 김영란법 시행 이전 용돈 개념의 금품수수 행위는 상상을 초월했다. 한 주류회사 해외 행사에 참석해서 호텔에 들어갔더니 자신의 이름이 적힌 봉투에 수십 장의 달러가 들어있었다는 얘기, 한 화장품 회사가 호텔 선정부터 식사까지 풀코스 최고급으로 마련해 접대하고 30만원이 든 돈봉투를 줬다는 얘기, 건설회사들이 출입기자들에게 수십만 원의 돈봉투를 찔러주는 관행들이 많다보니 기자들이 우스갯소리로 ‘분양가나 내려라’고 말했다는 일화 등이다.

김영란법이 정착되고 있다는 증언도 적지 않았다. 6년차 종합일간지 기자는 “지켜진다고 말은 할 수 없지만 기준이 만들어진 것은 확실하다. 기자들이 식사하고 난 뒤 ‘얼마 나왔어요’라고 묻고 조심하는 분위기가 실제 있다”고 말했다.

인터넷매체 경제부 기자는 “모 국회의원이 기자에게 호텔에서 밥을 먹자고 했다가 오히려 기자가 김영란법 얘기를 해서 다른 곳에서 먹는 경우도 봤다”면서 “기업 행사 선물로 본다면 확실히 규모가 줄거나 제공하는 물품의 가액이 줄어들긴 했다”고 말했다.

IT전문 매체 한 기자는 “회사 방침상 아무 것도 받지 말라고 해서 거절했는데 다른 기자들은 다 받으니까 좀 유별만 사람이 되는 느낌이 있다”면서도 “그런데 김영란법 시행 이후 거절이 쉬워져서 좋다. 어떤 날은 선물 추첨권을 뽑지 않으면 입장이 안된다고 해서 ‘김영란법 모르세요’라고 짜증을 낸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일간지 산업부 기자는 “대기업의 경우 오히려 김영란법을 철저하게 지킨다. 다만 중소기업의 경우 협찬 형식으로 주려고 하고 싫다면 주지 않는다. 한 화장품 회사의 경우 기자용으로 증정품을 따로 만들어서 주는 경우도 봤다"고 말했다.

다른 기자는 “음식 제공 3만원 한도를 자꾸 말하는데 김영란법 취지는 청렴하자는 것이고 갹출하자는 것인데 말이 많으니 기준선으로 사후 3만원으로 잡은 거 아니냐. 그게 기준이 돼서 안된다”고 말했다.

기자들이 김영란법을 지키기 위해 매체 내부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6년차 기자는 “기자들이 취재 비용을 소득으로 보전을 안 해주니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취재지원비는 대부분 교통비와 통신비로 나간다”면서 “한 달 동안 취재원을 만나는 횟수와 비용을 취재지원비로 대비하면 100% 보전이 안된다”고 말했다.

국민권익위는 지난 4월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위반행위에 대한 신고가 꾸준히 증가하고 각급 공공기관의 엄격한 제재가 이뤄져 청탁금지법이 생활 속 규범으로 순조롭게 정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2016년 법 시행 이후 2018년 하반기까지 모두 1만4100건이 위반 신고 접수됐고,부정청탁 3765건(26.7%), 금품 등 수수 1926건(13.7%), 외부강의 등 8409건(59.6%)으로 나왔다고 밝혔다. 이중 형사처벌, 과태료, 징계부가금 등 제재가 확정된 건수는 181건이었다. 국민권익위는 기자의 김영란법 위반 사례 및 통계 자료 요청에 “개인정보에 해당되고, 별도로 기자 직군을 떼서 통계를 내지 않는다. 민감한 내용”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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