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정 조선일보 사회부장 칼럼이 화제다. 그는 지난 15일 “칼퇴근 판사에게 재판받기 싫다”는 제하의 칼럼에서 “판검사 역시 워라밸, ‘3x3년’ 육아휴직을 누릴 권리가 있다”며 “하지만 많은 사람은 그들이 아니라 밤새 공부하고 연구하고 고민하는 판검사에게 자신의 명예와 신체의 자유를 맡기기 원한다”고 썼다.

이 칼럼은 지난 13일자 조선일보 12면 “‘워라밸 판사’에 재판 길어질라… 중재기관 찾는 기업들”이라는 제하의 기사와 맞닿아 있다. 조선일보는 이 기사에서 “그동안 법원 안에서 합의재판부의 부장판사와 배석판사의 관계는 ‘가족 관계’로 통했다”며 “점심·저녁 식사는 물론이고 술자리와 주말 등산 등 거의 모든 ‘사회생활’을 함께했다. 하지만 최근 판사들 사이에서 일과 삶의 균형을 잡으려는 ‘워라밸’(Work Life Balance) 분위기가 뚜렷해지면서 여러 법원 관행들이 깨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기사는 그러면서 △“앞으로 판결문을 일주일에 최대 2건만 쓰겠다”고 말하거나 “오후 6시가 되면 퇴근하겠다”고 말한 배석 판사 사례 △평판사가 처리하던 ‘영장 당직’을 부장판사가 맡는 사례 △“점심 같이 먹자”고 말하기가 눈치 보인다는 부장판사 사례 등을 예시로 들었다. 이 때문에 법원의 사건 처리 기간이 길어지고 기업 등이 법원 대신 중재기관을 찾는다는 것이다.

선우 부장은 칼럼에서 “피의자를 제대로 조사하지 않고 경찰이 요구한 영장을 청구하는 검사, 검사가 청구한 영장을 고민 없이 발급하는 칼퇴근 판사가 인권을 더 해친다는 건 잘 모른다”며 “사람들은 인권법 판사의 편향성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공사다망해 기록도 읽지 않고 검찰 공소장을 그대로 방망이를 휘두르는 웰빙 판사가 훨씬 무섭다는 것은 잘 모른다”고 주장했다.

그가 말하고 싶은 바는 마지막 문단에 함축돼 있다. “한국은 북유럽 선진국이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엘리트가 놀기 시작했다는 건 나라가 퇴보하고 있다는 신호다.”

▲ 조선일보 15일자 선우정 칼럼.
▲ 조선일보 15일자 선우정 칼럼.
칼럼 이후 여러 반론이 제기됐다. 이른바 ‘칼퇴근 판사’가 자기 업무를 허투루한다고 단정할 근거는 없으며, 재판이 길어진 만큼 판결에 고민이 깊어졌다는 반론도 가능하다.

류영재 춘천지법 판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판사가 기록에만 매몰돼 시대정신도 못 읽고 사회담론도 못 따라가고 법리 연구도 못하고 가족과 유리된 채 밤새서 기록보고, 신경이 날카로운 상태에서 일에 허덕이며 재판한다고 상상해보자”라며 “그런 판사에게 내 인생이 걸린 재판을 받고 싶은가”라고 반문했다.

이를 테면 남녀 판사들이 육아를 통해 삶의 경험을 넓히고, 세상과 소통할 기회를 갖는다면 보다 충실한 재판이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권석천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페이스북에 “변호사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판사가 누군지 아는가? ‘우울한 판사’다. 우울한 판사는 모 아니면 도, 어떤 판결이 나올지 예측할 수가 없단다. 나는 판사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래야 좋은 재판을 할 수 있다. 행복한 마음을 가진 판사만이 법정에 들어설 때 여유를 갖고 피고인, 원고, 피고의 눈을 바라보며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 있다”고 썼다. 선우정 칼럼을 직접 공유하진 않았지만 선우 부장과 다른 생각이다.

선우 부장은 ‘문제적 칼럼’에서 언론사 사회부에 대한 생각도 밝혔다.

“수습기자는 반년 동안 경찰서에서 숙식하고 24시간 대기하면서 일했다. 그 후 1~2년 신입 기자 시대 역시 집에서 잠을 잔다는 것 외엔 생활이 다를 게 별로 없었다. 사람들은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됐으니 몸과 시간으로 때우는 교육을 그만하라고 한다. 그럴 생각이 없다. 기자는 몸과 시간을 현장과 사람에게 투입하는 직업이다. 그렇게 공을 들여야 무언가를 얻는다. 현장과 사람에 대한 이해 없이 손바닥 소셜미디어에 의존하는 미숙련 기자에게 내 비밀을 이야기할 취재원은 세상에 없다.”

“잘나서가 아니라 위험해서 중요한 직업이 있다. 기자가 중요한 것은 잘못된 기사가 사람을 현혹해 세상을 뒤집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미숙한 기자, 게으른 기자가 가장 빨리 현혹되고 가장 먼저 사람들을 현혹한다. 그래서 기자는 많은 시간을 투입해 현장과 사람을 이해해야 한다.”

기자가 갖는 우려는 ‘선우 부장의 미래’에 관한 것이다. 조선일보 기자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선우 부장은 차기 조선일보 편집국장 ‘0순위’로 꼽힌다. 박두식 현 편집국장은 26기, 선우 부장은 30기다. 내년 창간 100주년 편집국장 인사가 이뤄질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선우 부장 아버지는 조선일보를 대표했던 우익 논객 선우휘 전 주필(1922~1986)이다. 기자 2대를 이어가는 인물로 상징성이 있다. 그가 조선일보 차기 편집국장이 된다면, 기자들의 야근은 ‘더 일상’이 될까.

조선일보 노조는 지난달 30일 사측의 재량근로제를 받아들이지 않기로 하는 등 기자들 노동시간을 두고 노사는 대립하고 있다. 노조는 “재량근로제를 하면 근무시간이 늘 수밖에 없어 보이는데 그러면 지금보다 급여를 더 줘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밝혔다. 노조의 이런 활동도 ‘게으름’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글과 행동은 다를 수 있다. 실제 선우 부장은 2018년 1월 사회부에서 ‘저녁이 있는 삶’을 실험했다. 그는 사회부 전체회의에서 “기자들이 일찌감치 완벽한 기사를 보내 50판 마감을 제대로 하면 대부분 부원들이 저녁을 편안하게 보낼 수 있다. 기사 보내고 나면 퇴근해서 책을 읽는 등 자기 계발을 하거나 자유롭게 보내라. 이런 시스템이 정착하면 결과적으로 사회면의 질도 더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취지로 말했다. 당시 기자들은 이 소식을 크게 반겼다. 그의 이번 칼럼은 ‘실험 실패’에서 비롯한 것일까. 아니면 사측 인사의 속내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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