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생계급여 수준으론 국수 하나 맘대로 사먹지 못합니다. 1인가구에 51만원. 채소값이 올라 몇백원 차로 그 채소를 포기해야 하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기초생활보장법 1조를 아무리 봐도 ‘사람’이라 적혀 있지 ‘국민’으로 한정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현행기준은 ‘국민혈통 유지에 기여하지 않는다면 보장 않겠다’고 말합니다.”

“노동할 수 없는 사람을 ‘노동능력 있음’ 판정한 지 두달 만에 남편은 일하다 쓰러져 중환자실로 실려갔습니다.”

올해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기초생활법)이 제정된 지 20년이 되는 해다. “생활이 어려운 사람에게 필요한 급여를 실시하여 이들의 최저생활을 보장하고 자활을 돕는다”는 법의 목적을 달성하려면 기초생활보장제도를 뿌리부터 다시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 ‘기초생활법 바로세우기 공동행동’과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의 3대적폐폐지 공동행동’은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기초생활법 20년, 부양의무자기준 폐지와 기초생활법 개정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 ‘기초생활법 바로세우기 공동행동’과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의 3대적폐폐지 공동행동’은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기초생활법 20년, 부양의무자기준 폐지와 기초생활법 개정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기초생활보장을 필요로 하는 당사자들과 시민사회 활동가들이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기초생활법 20년, 부양의무자기준 폐지와 기초생활법 개정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초생활법 바로세우기 공동행동(공동행동)’과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의 3대적폐폐지 공동행동’이 연 이날 회견에서 이들은 기초생활법을 개정해 까다로운 선정기준과 광범위한 사각지대, 낮은 급여수준을 해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참가자들은 “기초생활법에 따라 수급자가 되기도 어렵지만, 되어도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기초생활법이 시행된 뒤 20년 동안 국가가 법 취지에 맞춰 대상자를 확대하기보다 오히려 예산에 끼워맞추는 데 급급했다는 것이다.

기초생활법은 “생활이 어려운 사람”을 대상으로 하지만, 실제 빈곤층 가운데 신청자격이 주어지지 않는 이들이 있다. 홈리스 등 주거지가 일정하지 않은 이들과 외국인 등이다.

▲ 이동훈 홈리스행동 활동가가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열린 ‘기초생활법 20년, 부양의무자기준 폐지와 기초생활법 개정 촉구 기자회견’에서 말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 이동현 홈리스행동 활동가가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열린 ‘기초생활법 20년, 부양의무자기준 폐지와 기초생활법 개정 촉구 기자회견’에서 말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이동현 홈리스행동 활동가는 “가난해 주거지가 아예 없는 이들은 오히려 모든 급여에서 제외된다. ‘주소지 1개월 이상 지속’이 요건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보건복지부 지침인 ‘국민기초생활보장사업안내’는 “주거가 일정하지 아니한 경우”에 신청자가 관할 시군구에 급여신청하도록 정했다. 그러나 이는 관할 지자체가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결과를 낳는다.

외국 국적자도 특정 조건에 드는 일부를 제외하고 수급신청할 수 없다. 기초생활법은 외국인에 대한 특례를 두고 있다. △한국인과 혼인해 본인 또는 배우자가 임신했거나 △한국인 미성년 자녀를 양육하거나 △배우자의 직계존속 한국인과 생계나 주거를 같이하는 경우 등에 한해 신청자격을 준다. 이동현 활동가는 “이는 ‘한국인 혈통’을 유지하는 데 기여하지 않으면 보장하지 않겠다는 협소한 자세”라고 비판했다.

이 활동가는 “국회는 ‘인종과 피부색, 민족에 관계없이 사회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UN사회권규약을 비준했지만, 국회 스스로 만든 기초생활법은 이를 위배한다”고도 말했다.

법정 소득기준을 충족하고 신청도 했지만 급여를 받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국민연금관리공단이 ‘노동력이 있다’고 판정한 이들이다. 지난 2014년 ‘근로능력 있음’ 판정을 받고 취직했다 숨진 고 최인기씨 아내 곽혜숙씨는 “가슴이 아파 긴말 하고 싶지 않다”며 입을 열었다. 곽씨는 2017년 공단과 수원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 지난 2014년 ‘근로능력 있음’ 판정을 받고 취직했다 숨진 고 최인기씨 아내 곽혜숙씨가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열린 ‘기초생활법 20년, 부양의무자기준 폐지와 기초생활법 개정 촉구 기자회견’에서 말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 지난 2014년 ‘근로능력 있음’ 판정을 받고 취직했다 숨진 고 최인기씨 아내 곽혜숙씨가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열린 ‘기초생활법 20년, 부양의무자기준 폐지와 기초생활법 개정 촉구 기자회견’에서 말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곽혜숙씨는 “국민연금공단은 남편을 노동력이 있다고 판정했고, 그는 일하다 두달만에 쓰러져 중환자실에 실려갔다. 몇달 간 말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돌아가셨지만, 공단이나 시청은 지금까지 사과 한 마디 없다”고 말했다. 최씨는 중증질환으로 기초생활보장 지원을 받다 공단으로부터 근로능력 있음 판정을 받아 조건부 수급자가 됐다. 그는 급여를 받기 위해 환경미화원으로 일하다 두달 뒤 병세 악화로 숨졌다.

신청자격과 조건을 모두 통과해 가까스로 받는 급여수준이 열악한 점도 문제다. 기초생활보장을 받고 있다고 밝힌 한 참가자는 “생계급여가 정말 부족하다. 1인가구의 경우 월 51만원 정도인데, 지난 3년간 최저시급이 올랐고, 물가도 덩달아 많이 올랐다. 기존에도 수급액이 크게 부족했는데, 이제는 최저의 삶을 살기도 힘들다”고 털어놨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주거지 없는 이, 내국인 아닌 이 등 다양한 이유로 기초생활법 정신을 왜곡하는 법조항을 바꿔야 한다. 기초생활법이 올해 만들어진 지 20년을 맞아 반드시 환골탈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기초생활법 바로세우기 공동행동’과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의 3대적폐폐지 공동행동’은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연 ‘기초생활법 20년, 부양의무자기준 폐지와 기초생활법 개정 촉구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 ‘기초생활법 바로세우기 공동행동’과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의 3대적폐폐지 공동행동’은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연 ‘기초생활법 20년, 부양의무자기준 폐지와 기초생활법 개정 촉구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정의당 윤소하 의원은 공동행동과 협업한 기초생활법 개정안 대표발의를 앞두고 있다. 개정안은 △ 외국인 급여대상을 국내 5년 이상 체류자나 인도적 체류자 등으로 넓히고 △주소지가 없는 이들도 지원받도록 명시하며 △주거가 일정치 않은 신청자들이 관할기관을 직접 지정하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이들은 일정 수준 이상의 재산이나 소득이 있는 부모와 자녀가 있으면 수급에서 제외하는 부양의무제 폐지도 촉구했다. 최용기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 회장은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부양의무자 폐지 의지를 밝혔다. 지금 당장 폐지하고 이에 걸맞은 예산도 책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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