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영리병원(의료비를 자율로 정하고 외부에 이익배당을 하는 병원)의 개원허가 취소 절차가 발을 뗐다. 제주도가 녹지그룹을 상대로 녹지국제병원(녹지병원) ‘조건부 허가’ 취소 청문을 26일 비공개 진행했다. ‘의료법 위반이니 허가 취소하겠다’는 제주도와 ‘병원 투자 자체가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와 제주도 강요에 의한 것’이라는 녹지그룹 입장이 부딪혔다.

언론은 그간 병원 개원을 최종 허가했던 제주도의 책임을 주로 짚었다. 녹지병원 설립 절차와 의료 영리화를 지적하는 언론도 “제주도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강조하는 한편, 정부를 두고는 “손을 놓고 있었다”는 표현을 주로 썼다.

하지만 제주영리병원사태가 여기까지 오기까지 문재인정부는 마냥 손놓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정부는 손을 놓았다기보다 JDC를 통해 팔을 걷어붙였다. JDC는 영리병원 개원을 일관되게 주장했다. JDC는 국토교통부 산하 공기업으로, 녹지병원이 들어설 ‘제주헬스케어타운’의 사업시행자다.

JDC와 헬스케어타운 사업은 2006년 기업 활동을 활성화하기 위해 제정된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에 근거를 두고 있다. JDC 이사와 대통령, 국토부 장관이 이사장 인선에 관여한다.

▲ 국토교통부 산하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는 웹사이트 의료사업 소개란에 “2015년 말 국내최초로 외국의료기관(녹지국제병원)에 대한 보건복지부 사업계획 승인은 제주가 세계 의료관광을 선점할 기회가 될 것으로 본다”고 했다. JDC 웹사이트 갈무리
▲ 국토교통부 산하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는 웹사이트 의료사업 소개란에 “2015년 말 국내최초로 외국의료기관(녹지국제병원)에 대한 보건복지부 사업계획 승인은 제주가 세계 의료관광을 선점할 기회가 될 것으로 본다”고 했다. JDC 웹사이트 갈무리

JDC는 지난해 진행한 제주도 녹지병원 숙의형 공론화조사위원회 공론조사에서 개원 찬성 쪽을 대리했다. JDC가 녹지그룹을 대신해 직접 2차례에 걸친 도민토론회에 나서서 찬성 쪽에서 토론했다. 공론화조사위원회가 지난해 10월 압도적으로 반대를 권고하자, JDC는 공론조사를 받아들이기보다 원희룡 지사의 결정을 기다리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보건복지부는 박근혜 정부 당시인 2015년 녹지병원 사업을 승인했다. 승인 당시에도 녹지병원은 녹지그룹이 사업 경험이 전무한 부동산투기회사이고 내국인 우회투자 의혹이 이는 등 숱한 논란을 낳았다. 박근혜 정부가 사업계획서를 승인에 1차 책임이 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복지부도 녹지병원 개원 허가를 유도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제주도가 허가 여부를 결정할 당시 최대 쟁점은 ‘병원이 외국인만 진료해도 되느냐’ 여부였다. 당시 녹지병원은 ‘외국인 전용 병원’으로 알려진 가운데, 이 ‘내국인 진료 제한’이 상위법인 의료법의 진료거부 금지조항에 어긋나 풀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복지부는 지난해 제주도 측의 관련 질의에 ‘내국인 진료 제한은 의료법 위반이 아니다’라는 유권해석을 전달했다. ‘조건부 허가’와 ‘불허’를 저울질하던 제주도에 ‘외국인만 진료해도 되니, 개원 허가가 가능하다’는 신호를 준 셈이다.

▲ 제주영리병원 철회 및 의료민영화 저지 범국민운동본부가 지난달 11일 서울 효자동 청와대 앞에서 결의대회를 열고 정부에 녹지국제병원 철회 및 공공병원 전환을 촉구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 제주영리병원 철회 및 의료민영화 저지 범국민운동본부가 지난달 11일 서울 효자동 청와대 앞에서 결의대회를 열고 정부에 녹지국제병원 철회 및 공공병원 전환을 촉구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복지부가 최종 책임을 제주도에 미뤘다는 비판도 있다. 복지부는 지난 2017년 9월 제주도가 공문을 보내 녹지병원 개설허가 신청에 공동책임으로 대응하자고 요청하자 이를 거절했다. 복지부는 “정부는 의료영리화 정책을 추진하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허가권자는 도지사이므로 심의 결과에 따라 허가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답했다. 복지부가 승인한 결과를 뒤집을 책임을 제주도에 지우면, 녹지그룹이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할 가능성도 제주도가 감당해야 한다.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지난해 12월5일 병원 개원 허가를 발표하며 “제주도 헬스케어타운의 원래 사업자였던 JDC, 중앙정부 또는 국가기관이 이것을 인수해 비영리병원 또는 관련된 시설로 사용하는 것이 이론상 가능한 방안이었다”며 “현실적으로 (책임 질) 주체도 없고, 재정 등 구체적인 운영 능력이 없었다”고 항변했다.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과 담당자는 한 토론회에 출석해 “복지부 입장에서는 기존의 행정에 대한 신뢰 문제도 있다. 정부는 정책의 일관성과 신뢰성을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보건의료시민단체는 “녹지병원의 사업시행 자격이 미달하면 그 순간 복지부가 충분히 승인을 철회할 수 있는데 안 한 것”이라며 “복지부의 책임 회피”라고 비판했다.

김재헌 ‘제주영리병원 철회 및 의료민영화 저지 범국민운동본부’ 공동상황실장은 “박근혜 정부에서 허가한 사안이라 현 정부가 바꿀 수 없다는 말은 당시 적폐청산을 바라던 국민정서에도 전혀 맞지 않는 발언이었다. 녹지병원 개설 과정에서 불거진 다양한 문제점에 한 번이라도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봤다면 그런 발언은 나올 수 없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당시 의료민영화 반대·영리병원 설립 금지를 공약했다. 보건의료단체들은 어느 것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 녹지병원 설립은 그대로 추진됐다. 현행법 개정을 둘러싼 논의는 시작도 못했다. 김재헌 범국본 상황실장은 “문재인 정부는 더 이상의 영리병원은 없다고 공언했다. 영리병원을 허용하는 제주특별법이나 경제자유구역법 등 관련 법 개정에 들어가지 않으면 이 말은 거짓인데, 전혀 착수하지 않고 있다”고 우려했다.

[제주영리병원 논란①] 제주영리병원, 누가 왜 원하나
[제주영리병원 논란②] 영리병원은 지난 25년간 여야 모두의 작품
[제주영리병원 논란③] 문재인 정부 의료영리화, 박근혜 때와 다를까
[제주영리병원논란 ④] 공공병원 맞아? 서울대병원의 ‘수상한’ 자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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