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그렇게 3대 3으로 문자를 딱 맞춰서 소개해야 직성이 풀리시겠나?”

지난 21일 오전 ‘KBS 생방송 일요토론’에 출연한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진행자인 이윤희 KBS 기자를 쏘아붙였다. 이날 방송은 ‘적폐수사, 정치보복인가? 적폐청산인가?’라는 주제로 1시간 10여분 동안 진행됐다.

사연은 다음과 같다. 일요토론 측은 토론 진행 중 실시간으로 시청자 문자를 접수 받았다. 이 기자는 방송 말미에 문자 3000여 건 가운데 6건을 소개했다. 소개한 문자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 지난 21일 오전 ‘KBS 생방송 일요토론’은 ‘적폐수사, 정치보복인가? 적폐청산인가?’라는 주제로 여·야 정치인들을 불러 1시간 10여분 동안 토론을 진행했다. 사진=KBS화면
▲ 지난 21일 오전 ‘KBS 생방송 일요토론’은 ‘적폐수사, 정치보복인가? 적폐청산인가?’라는 주제로 여·야 정치인들을 불러 1시간 10여분 동안 토론을 진행했다. 사진=KBS화면
① “지휘 여하를 막론하고 의혹은 끝까지 파헤쳐서 우리 역사에 다시는 권력형 비리가 고개 들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②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든 과거 정권 비리를 제대로 수사하라는 것이 국민의 뜻이다.”

③ “정치 보복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과거 대통령이 방대하게 국가에 피해를 준 것에 대한 국민 심판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④ “과거를 들추는 데만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어려운 경제를 살리는 데 주력했으면 좋겠다.”

⑤ “이 나라의 정치 보복이 너무 심각하다. 국민 대통합은 상대를 제거하는 것으로는 절대 이룰 수 없다.”

⑥ “지나간 것을 교훈 삼아야 하는데 잘못을 밝힌다는 명분으로, 보복하는 것으로 비쳐진다면 국민이 불신할 수 있다는 것도 의식했으면 좋겠다.”

‘정치보복이 아니다’라는 의견 3건, ‘정치보복이다’라는 의견 3건 등 총 6건을 3000건 가운데 취사 선택한 것이다. 

그러면서 이윤희 기자는 “적폐 청산은 반드시 해야 하지만 너무 과거 들추기에 치중하다보면 정작 어려운 경제라든지, 안보라든지 미래로 가는 길에는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와 기대가 교차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한 뒤 “(토론 패널로 나온) 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이 주신 의견과 맥을 같이 하지 않느냐”고 강 의원에게 물었다.

▲ 지난 21일 오전 ‘KBS 생방송 일요토론’은 ‘적폐수사, 정치보복인가? 적폐청산인가?’라는 주제로 여·야 정치인들을 불러 1시간 10여분 동안 토론을 진행했다. 사진=KBS화면
▲ 지난 21일 오전 ‘KBS 생방송 일요토론’은 ‘적폐수사, 정치보복인가? 적폐청산인가?’라는 주제로 여·야 정치인들을 불러 1시간 10여분 동안 토론을 진행했다. 사진=KBS화면

문자 ①~⑥을 합친 결과가 ‘정치 보복’을 주장하는 한국당 의원 의견과 맥을 같이 한다는 것이다. 이에 박 의원이 “꼭 그렇게 3대 3으로 문자를 딱 맞춰서 소개해야 직성이 풀리시겠느냐”며 진행자에게 따져 물은 것이다.

다시 이 기자는 “질문 3000여 건 가운데 몇 건이 적폐 청산이고 정치 보복인지 저는 알지 못한다”며 “어쨌든 우리 국민들 사이에 양쪽 의견이 공존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답했다.

박 의원은 “의견이 공존하지만 수많은 여론조사에서 60~70% 이상의 절대 다수가 적폐 청산과 이명박 전 대통령 수사를 원하고 있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실시간 댓글에 참여한 한 시청자는 시청자 게시판에 “시청자들의 의견을 3대 3으로 소개하는 것은 형평주의가 아니지요. ‘정치 보복이냐? 적폐 청산이냐?’라고 제시했다면 각 항목에 몇 프로 의견이 나왔는지 소개해야지 똑같이 소개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요”라고 비판했다.

이 장면은 고대영 사장 이후의 KBS가 어떠해야 하는지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부정한 것을 부정하다고 판단 내리는 대신, ‘기계적 중립’ 혹은 ‘여·야 물타기 공방’에 급급했던 KBS는 분명 시청자로부터 외면 받고 있다. 

사실로 확인되기 전까지 보도할 수 없다는 논리로 ‘최순실·박근혜 국정농단’ 보도를 뭉갠 KBS의 지난 사례를 꺼내는 것도 새삼스럽다. 지난 10여 년 동안 KBS는 ‘기계적 중립’을 체득·체화했기 때문이다.   

▲ KBS 일요토론 진행자인 이윤희 KBS 기자. 사진=KBS 홈페이지
▲ KBS 일요토론 진행자인 이윤희 KBS 기자. 사진=KBS 홈페이지
“양쪽에서 욕먹는 기사가 좋은 보도다.” MB 언론 특보 출신 김인규 전 KBS 사장은 지난 2012년 대선 국면에서 이처럼 말했다. 그는 2010년에는 “유신 시대 때는 7대 3, 군부 정권 시절에는 6대 4, 문민 정부에선 55대 45, 지금은 51대 49다. 과거 북한을 괴뢰 집단으로 써야 했다. 그 시절엔 그게 ‘공정’이었다”고도 말했다. 모두 양비론 혹은 기계적 중립을 강조한 말이었다.  

KBS 기자 출신 최경영 뉴스타파 기자는 기계적 중립에 대해 “양적으로는 1대 1 기계적 균형을 맞추지만 내용으로나 질적으로 악랄하게 자기가 비판하고픈 대상을 프레임에 가두는 방식”이라며 “김인규가 전두환을 찬양하고 야당을 비난하던 그 옛날 80년대 이후부터 KBS가 나름 독자적으로 개발해온 보도의 양태”라고 비판했다. 

정상화 궤도에 들어선 MBC의 최승호 사장은 기계적 중립에 대해 “기계적 중립은 굉장히 소극적인 방식일 뿐 아니라 면피성 보도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고대영 이후의 KBS는 보도 적폐인 ‘기계적 중립’을 스스로 타파할 수 있을까. 극우 집단의 태극기 집회와 박근혜 탄핵을 외친 촛불 집회를 동일하게 놓고 비교하는 보도가 뉴스일 수는 없지 않은가.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