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PD수첩이 12일 오후 “MBC 몰락, 7년의 기록” 편을 통해 무너진 MBC를 반성했다. 2010년 김재철 전 MBC 사장이 임명된 뒤 ‘언론 적폐’ 세력이 MBC를 장악한 역사를 폭로했다. 공기가 흉기로 변했을 때 피해를 입는 이들은 세월호 유가족과 같은 시민이라는 걸 PD수첩은 강조했다.

MBC 정상화 신호탄을 알린 방송이 ‘PD수첩’이라는 점은 의미가 있다. MB 정부의 무분별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정책을 비판했다가 제작진이 체포 당하는 등 PD수첩은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갖은 고초를 겪었다.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던 제작진들은 대법원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지만, 국가권력이 덧씌운 ‘좌파 방송’ 프레임은 자칭 보수들의 구호로 여전하다.

뉴라이트 출신 방송문화진흥회(MBC 대주주) 이사들은 PD수첩 방송에 노골적으로 개입하려 했고 이 프로그램을 무너뜨리는 것을 일대 사명으로 삼았다. 백종문·윤길용 등 PD수첩 출신 간부들은 권력의 주구 역할을 자처했다. 이날 방송분에 등장한 MBC ‘언론 적폐’ 간부들은 후배 PD들의 질문에 제대로 된 답변 하나 꺼내지 못했다. 

PD수첩 PD와 작가진 교체를 비롯한 일련의 탄압 배후엔 MB 국가정보원이 있었다. 이날 방송에서 공개된 ‘국정원 문건’이 이를 입증한다. MBC 간부들은 국정원의 마름에 불과했다.

▲ 12일 방송된 MBC PD수첩 MBC의 몰락, 7년의 기록 편.
▲ 12일 방송된 MBC PD수첩 MBC의 몰락, 7년의 기록 편.
흥미롭게도 김장겸 사장을 몰아낸 2017년 ‘72일’ 파업의 시작도 PD수첩이었다. PD수첩 제작진은 노동 문제를 다루려 한 아이템이 윗선에 막히자 지난 7월 제작거부에 돌입했다. PD수첩 제작거부는 ‘공정방송’ 파업의 도화선이 됐다. 파업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들은 “저널리스트로서 우리 양심을 지키고 싶다”(이영백 PD)며 거리로 나왔다.

‘엠X신’이라며 MBC를 불신했던 시민들은 ‘김장겸 물러나라’로 호응했다. 하지만 ‘MBC도 지켜보겠다’며 비판적 시선도 거두지 않고 있다. 

박건식 PD는 방송이 끝난 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사무실에 전화가 빗발치고 있다”고 밝혔다. 항의 전화든 격려 전화든 사무실이 뜨거워졌다는 것에 고무됐다. 지난 5년의 ‘언론 장악’ 시기엔 기대할 수 없었던 반응이다. 호흡기를 달아준 시민들이 숨을 불어넣고 있는 것이다.

지난 정부에서 해체됐던 시사교양국은 최승호 신임 사장 체제에서 시사교양본부로 격상됐다. MBC는 13일 시사교양본부장으로 2010년 ‘김재철 퇴진’ 투쟁을 하다가 해고된 적 있는 이근행 PD를 임명했다. 2012년 파업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해고된 강지웅 PD는 시사교양본부 시사교양1부장으로 PD수첩을 이끌 예정이다. 해직 언론인들의 전진 배치는 시사교양 명가 MBC를 되살리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PD수첩의 남은 과제는 ‘좋은 방송’일 뿐이다. 지난해 촛불집회에 참여했던 시민들은 ‘언론 적폐 청산’을 1순위 과제로 꼽았다. MBC 구성원들에게 적폐 청산 사명을 부여했다. 김장겸 사장을 몰아내고 ‘최승호 체제’가 닻을 올릴 수 있었던 배경은 시민들의 비판과 관심에 있다. 이 때문에 이용마 MBC 복직 기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러분. 우리 잊지 맙시다.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서게 된 것은요. 작년 엄동설한을 무릅쓰고서 나와 주셨던 촛불 시민들의 위대한 항쟁, 과연 그게 없었다면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서 있을 수 있었을까요? 아마 아직도 우리는 암담함 속에 패배감 속에 젖어 어찌해야 할지를 모르고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 촛불시민들의 항쟁, 그분들을 결코 잊지 않아야 할 겁니다. 앞으로 우리의 뉴스와 시사, 교양, 드리마, 모든 방송 프로그램에서 그분들의 목소리가 담길 수 있도록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오는 19일 오후 방영될 새 PD수첩의 두 번째 아이템은 ‘KBS 방송장악 10년’이다. PD수첩 취재에 협조한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조합원 3명은 인사위에 회부됐다. PD수첩이 고대영 KBS 사장 퇴진을 촉구하며 총파업 중인 KBS 언론인들의 10년 투쟁을 어떻게 조명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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