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호 KBS 이사장이 지난 15일 KBS 이사회에서 사퇴를 일축했다. 이 이사장은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2노조·새노조)를 “방송장악 계획을 실천에 옮기려는 새 정권의 홍위병”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KBS 이사진 업무추진비 집행 등을 감사하고 있는 감사원에 대해 “문재인 정부가 감사 경위를 소상히 밝혀야 한다”고 압박했다.

이에 KBS 새노조는 16일 “최악의 인물을 사장으로 앉히고 KBS 이사회 스스로 거수기를 자처하며 권력에 부역하는 동안 KBS는 삼류 방송으로 전락하고 말았다”며 “이 이사장과 고대영 KBS 사장이 함께 한 2015년 11월 이후 추락은 더욱 극심하다. 이 이사장이 고 사장과 KBS를 박근혜 정권의 충견으로 만드는 사이 우리들은 국민들의 손가락질과 발길질은 당하며 거리에서 쫓겨났다”고 비판했다.

이 이사장은 현재 ‘방송법 개정’을 주장하고 있다. 정치권으로부터 독립된 KBS 사장 선출 방식이 필요하다는 이유다. ‘자유한국당-이인호·고대영-KBS노동조합(1노조)’으로 이어지는 ‘방송법 개정’ 프레임은 꼼수라는 비판에도 고대영 사장 체제를 연장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 이사장은 KBS 이사에 임명되기 전부터 ‘박근혜 낙하산 논란’을 불렀다. 2014년 5월 당시 길환영 KBS 사장과 박근혜 청와대의 KBS 세월호 보도 개입 의혹이 김시곤 KBS 보도국장을 통해 폭로됐고 KBS 양대 노조(1·2노조)는 파업에 돌입했다. 길 사장은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그해 6월 임명권자인 박근혜에 의해 해임됐다.

▲ KBS 구성원들로부터 사퇴 압박을 받고 있는 이인호 KBS 이사장이 지난 9월5일 오후 서울 여의도에서 영화 ‘공범자들’을 관람했다. 사진=언론노조 KBS본부
▲ KBS 구성원들로부터 사퇴 압박을 받고 있는 이인호 KBS 이사장이 지난 9월5일 오후 서울 여의도에서 영화 ‘공범자들’을 관람했다. 사진=언론노조 KBS본부
길 전 사장 후임은 조대현 전 KBS 사장이었다. KBS 이사회는 2014년 7월9일 조대현 전 KBS미디어 사장을 차기 KBS 사장으로 내정했다. 당시 7명의 KBS 여권 추천 이사 가운데 2명이 조대현 후보자에 투표해 여권 표가 분산된 결과였다. 야권 추천 이사 표가 합쳐진 6표로 조 후보자가 사장 내정됐다.

이 시기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 비망록 2014년 7월11일자(KBS 사장 내정 이틀 뒤)를 보면, “부처-정상화·공공기관 개혁-면종복배”라는 메모가 있고 그 공공기관으로 “KBS 이사”를 지칭해 표기했다. 이에 비춰보면 박근혜 청와대가 여권 이사들의 분산표를 ‘반란’으로 인식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이길영 KBS 이사장은 자리를 내놔야 했다. 지난해 11월 KBS 새노조는 “이길영 전 KBS 이사장이 최성준 방통위원장과의 면담 자리에서 먼저 사퇴 요구를 받고 사표를 제출했다고 최근 새노조에 밝혔다”고 폭로했다. 이길영 전 이사장은 ‘건강상의 이유’를 들어 2014년 8월27일 KBS 이사장에서 사퇴했는데 이 과정에 최성준 전 방통위원장의 외압이 있었다는 주장이었다. 최 전 위원장은 “이길영 이사장이 먼저 사의를 표명하셨다. 사퇴를 요구한 적 없다”고 반박했다.

방통위는 그해 8월29일 이길영 전 이사장 후임으로 ‘뉴라이트 학자’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를 KBS 이사로 내정했다.

이인호 이사장의 KBS 이사회가 2015년 10월 고대영 사장을 KBS 사장으로 내정할 때도 ‘청와대 낙점 논란’이 일었다. 언론노조가 청와대의 고대영 KBS 사장 선임 개입 의혹을 국민감사청구한 결과, 감사원은 지난해 9월 청구를 기각하면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이인호 KBS 이사장은 KBS 사장 임명제청과 관련해 각계의 다양한 의견을 청취하는 과정에서 (박근혜 정부의) 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과 전임 KBS 이사장인 손병두의 조언도 들었으나 특정인을 임명제청하는 것을 논의한 적은 없었고 KBS 이사 추천은 방송통신위원회의 권한이고 자신조차 이사 재선임 여부가 문제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이사 추천에 관해 누구와도 논의한 적 없다고 답변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 이사장은 청와대 홍보수석의 조언에 대해 “여러 사람의 조언 가운데 하나였다”고 해명했다. 자신을 둘러싼 ‘낙하산 논란’을 망각한 채 ‘방송 독립’을 주장하는 이 이사장에 KBS 내부가 들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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