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KBS를 피감기관으로 한 국회 국정감사가 있었다. 이보다 앞서 한 야당 의원은 ‘MB 언론 특보’ 출신 김인규 전 KBS 사장(재임 시기 2009년 11월~2012년 11월)을 만났다. 고대영 KBS 사장에 ‘대승적 결단’, 즉 사퇴를 촉구하기 위해 김 전 사장 도움을 빌리려 한 것이다.

고 사장이 김 전 사장 최측근으로 알려진 데다 김 전 사장은 1973년 KBS 공채 1기인 ‘원로 언론인’이다. 이 의원은 ‘KBS맨’ 김 전 사장 권유라면 고 사장도 사퇴를 받아들이지 않을까하는 기대가 있었던 듯하다. 의원과의 만남이 있기 전에도 김 전 사장은 고 사장과 통화를 했지만 고 사장은 ‘사퇴는 없다’는 기존 입장을 꺾지 않았다고 한다.

언론노조 KBS본부를 중심으로 후배 언론인들이 ‘강대강’으로 퇴진을 압박하고 있는 상황에서 마땅한 출구가 없는 고 사장은 사퇴를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김 전 사장을 만난 의원이 기자에게 전한 말에 따르면 김 전 사장은 일부 MB 측근들과 불편한 관계였다.

▲ 김인규 전 KBS 사장이 2012년 7월26일 아시아태평양방송연맹(ABU) 회장 자격으로 평양 방북 상황을 보고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 김인규 전 KBS 사장이 2012년 7월26일 아시아태평양방송연맹(ABU) 회장 자격으로 평양 방북 상황을 보고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이를 테면 김 전 사장이 취임 직후인 2009년 11월 백운기 KBS 기자를 비서실장에 임명하자, MB 정부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호남 인사를 왜 뽑았느냐”고 따졌고 이에 김 전 사장이 “이런 것(KBS 인사) 갖고 또 이러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취지로 화를 냈다는 것.

국가정보원이 2010년 6월 작성해 청와대에 보고한 ‘KBS 조직개편 이후 인적쇄신 추진 방안’ 문건에는 백운기 등에 대해 “김인규 사장 신임 받아 잘 나가는 백운기 비서실장 이준용, 최철호 등 5인방 특별관리”라고 적혀 있다. KBS 장악과 관리를 목적으로 청와대와 국정원 간 교감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김 전 사장은 MB 정부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도 사이가 원만하지 못했다. 김 전 사장은 의원에게 “MB 주변에 왜 원세훈 같은 사람이 있느냐”는 뉘앙스로 원 전 원장을 비판했다.

반면 야당 의원이 직접 들었던 김인규 전 사장의 표현에 따르면 김재철 전 MBC 사장은 원 전 원장에 “쩔쩔매는” 신세였다. 원 전 원장과 김재철 전 사장의 ‘수직적 관계’는 15일자 경향신문 단독 보도에서 확인된다.

보도에 따르면 김재철 전 사장은 원세훈 전 원장과 임기 중 2차례 만났다. 만난 횟수는 그리 빈번했다고 볼 수 없으나 원 전 사장은 자신의 치우친 이념을 김재철 전 사장을 통해 MBC에 반영하고자 했다. 

원 전 원장은 MBC ‘시사매거진 2580’이 2010년 5월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주기 특집 방송을 준비하고 있다는 정보를 사전 입수하고 국정원 직원들에게 우려를 표했다.

▲ 원세훈 전 국정원장(왼쪽)과 김재철 전 MBC 사장. 사진=이치열 기자
▲ 원세훈 전 국정원장(왼쪽)과 김재철 전 MBC 사장. 사진=이치열 기자
이에 MBC를 담당하던 국정원 관계자는 2010년 5월13일 MBC 임원 ㄱ씨에게 “원세훈 원장님 등 우리 원 지휘부에서 노무현 서거 1주기를 맞아 MBC가 이를 부각 보도할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했고 ㄱ씨는 다음날 국정원 입장을 김재철 전 사장에게 보고했다. 

김재철 전 사장은 “공영방송을 자칭하는 MBC가 선거가 코앞에 다가와 있음에도 ‘노무현 서거 1주기’를 명분으로 대대적인 노무현 특집을 하는 것은 명백한 선거법 위반”이라며 사내 임원진 기구를 통해 제재 방안을 검토했다. 이러한 움직임에도 2580은 그해 5월23일 ‘바보 대통령 노무현, 서거 그 후 1년’ 제목의 특집 방송을 내보냈다. 

이 밖에도 검찰에 따르면, 김재철 전 사장은 국정원의 MBC 장악 문건과 입장을 반영해 MBC ‘PD수첩’ 제작진을 교체하고 김미화·김여진씨 등 정부에 비판적인 출연자들을 프로그램에서 퇴출시켰다. 

원 전 원장 생각이 MBC 담당 국정원 직원과 MBC 임원을 거쳐 김재철 전 사장까지 전달돼 실행됐다는 것이 검찰 판단이다. 원 전 원장에게 “쩔쩔매는” 인사였던 김재철 전 사장은 언론인으로서의 소신을 지키지 못한 ‘MBC 역사상 최악의 사장’으로 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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