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벽 같던 ‘김장겸 체제’가 급속도로 무너지고 있다. 김장겸 MBC 사장이 13일 오후 방송문화진흥회(MBC 대주주)와 MBC 주주총회를 거쳐 공식 해임된 가운데 백종문 MBC 부사장도 14일 사직서를 제출했다.

백 부사장은 지난달 31일 MB 정부 국가정보원의 MBC 장악에 공모한 혐의로 서울중앙지검 국정원 수사팀(팀장 박찬호 2차장검사)에서 피의자 조사를 받았다. 

백 부사장은 최승호 MBC 해직 PD와 박성제 해직 기자를 2012년 ‘증거 없이 해고했다’고 실토한 ‘백종문 녹취록’의 당사자다. 대검찰청은 최근 서울서부지검에 이 녹취록에 대한 수사 재개를 명령했다. 백 부사장은 MBC 기자·PD에 대한 부당노동행위 혐의로 검찰 피의자 조사까지 앞두고 있다.

당초 김 사장 해임으로 백 부사장이 사장 권한 대행을 수행할 예정이었으나 최기화 기획본부장이 대행하게 됐다. 최 본부장 역시 백 부사장과 함께 서울서부지검에서 수사 중인 MBC 부당노동행위 사건의 피의자다. 

방송장악 수사가 진행될수록 검찰로 불려나가는 MBC 임원진들이 늘어나고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상황이 본격화하면 ‘김장겸 체제’ 인사들의 잇따른 사직과 사퇴는 수순이 될 전망이다.

▲ 자신에 대한 해임안을 소명하기 위해 지난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방송문화진흥회(MBC 대주주)를 찾은 김장겸 MBC 사장이 파업 중인 MBC 기자들과 타 매체 기자들의 쏟아지는 질문을 무시하고 발길을 돌려 나가고 있다.사진=이치열 기자
▲ 자신에 대한 해임안을 소명하기 위해 지난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방송문화진흥회(MBC 대주주)를 찾은 김장겸 MBC 사장이 파업 중인 MBC 기자들과 타 매체 기자들의 쏟아지는 질문을 무시하고 발길을 돌려 나가고 있다.사진=이치열 기자
전국언론노조 MBC본부는 14일 “백 부사장은 MBC 암흑기인 최근 9년 간 편성제작본부장, 미래전략본부장, 부사장으로 승승장구하며 MBC 파괴에 앞장선 부역 언론인의 대명사”라며 “언론 적폐 청산이 임박하자 서둘러 귀갓길을 재촉하려 사표를 낸 것으로 보이지만 백종문씨가 가야 할 곳은 감옥”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부당하게 편성에 개입하고 방송 종사자를 탄압한 백씨의 범죄 행위와 진상을 추가로 밝혀내고 회사에 끼친 손해에 대한 배상을 끝까지 청구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언론노조 MBC본부를 중심으로 한 ‘MBC 재건’ 작업은 속도를 내고 있다. 김연국 본부장은 14일 기자간담회에서 “MBC 적폐 경영진과 어떠한 협상도 없다”며 파업 잠정 중단 이후에도 ‘내부 투쟁’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오정환 보도본부장, 김도인 편성제작본부장 등 여전히 핵심 보직에 ‘김장겸 체제’ 인사가 앉아 있다는 점에서 보도와 시사 부문 조합원들의 제작 거부는 계속될 방침이다. ‘72일’ 파업에 참여한 한 보도국 조합원은 “지금 보도국으로 들어가 뉴스 제작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우릴 믿어준 국민을 배반하는 꼴”이라며 “새로운 뉴스 체제 밑그림을 그리는 역할을 하면서 내부에서 치열하게 싸울 일만 남았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언론노조 MBC본부는 지난 9년 집권 세력과 언론 부역자들이 공영방송을 장악한 역사를 가감 없이 기록하는 보고서(가제 ‘MBC 방송장악 백서’)를 작성하고 있다. 현장을 목격한 조합원들의 증언과 진술을 토대로 작성한다는 원칙이다. 지난 9월 총파업 돌입 이후 준비 작업을 거쳐 각 부문 별로 기초 자료 수집과 1차 원고 작성 등이 마무리되고 있다.

▲ 국가정보원과 공모해 MBC 방송·제작에 불법적으로 관여한 혐의를 받는 백종문 전 MBC 부사장이 지난달 31일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했다. 백 전 부사장은 취재진에 혐의를 부인했다. MBC 언론인들은 김장겸 MBC 사장 퇴진을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항의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 국가정보원과 공모해 MBC 방송·제작에 불법적으로 관여한 혐의를 받는 백종문 전 MBC 부사장이 지난달 31일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했다. 백 전 부사장은 취재진에 혐의를 부인했다. MBC 언론인들은 김장겸 MBC 사장 퇴진을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항의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이후 ‘MBC 재건 리포트’라는 이름으로 △공영방송으로서 MBC가 지향할 가치에 대한 새로운 강령과 규범 △보도 공정성과 제작 자율성 보장을 위한 제도적 장치 △위법 경영 철폐 및 의사결정 투명성과 합리성 제고 방안 △지역 MBC 사장 선임제 개선 등 수평적 네트워크 복원 방안 △비정규직·중규직 문제를 포함한 노동환경 개선 방안 등도 담을 예정이다.

이를 통해 제작과 편성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편성규약 개정과 공정방송 조항이 명시된 단체협약 체결 등에 대한 계획이 그려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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