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반도체 직업병 참사의 공동가해자였다”
“정부는 반도체 직업병 참사의 공동가해자였다”
[기고] 삼성 반도체 공장 산재 인정 투쟁 10년, "공장은 정보 은폐, 정부 조사는 부실" 판결 등장… "피해자에게 위험 증명 전가 안돼"

“그래서 지금 뭐가 밝혀졌나요?”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활동을 하며 많이 받는 질문이다. 반도체 직업병 문제가 과학적으로 규명됐는지, 백혈병 등의 원인이 의학적으로 확인됐는지를 묻는다.

당연한 질문이다. 나 역시 그게 궁금했다. 소송으로 규명해보겠다는 생각도 했었고, 일부 성과도 있었다. 하지만 소송을 거듭할수록 더 분명해 지는 것은 병의 원인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원인 규명이 어렵다는 사실과, 그것을 어렵게 만든 뒷 배경이 점점 더 선명해졌다.

삼성은 직업병 논란이 불거지자 논란의 ‘규명’이 아닌 ‘은폐’를 택했다. ‘영업비밀’ 장막으로 공장 안을 덮었다. 법원이 자료를 요청해도 내놓지 않았다.

정부는 그러한 삼성을 통제하기는커녕 도왔다. 이를테면 「산보연(산업안전보건연구원) 등의 역학조사」. 직업병 피해를 호소하는 노동자의 업무환경을 공공기관이 직접 조사하는 것인데, 삼성이 제출하는 자료에 의존해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특정 물질의 노출여부를 조사조차 하지 않았으면서 “노출되지 않았다”고 결론 내리기도 했다.

▲ 삼성 반도체 공장 노동자가 방진복을 입은 사진. 사진=반올림
▲ 삼성 반도체 공장 노동자가 방진복을 입은 사진. 사진=반올림

그리고 최근에서야 법원이 공개를 명한 「2013년 안전보건진단 보고서」. 고용노동부가 삼성 공장의 안전상황을 진단한 결과인데, 고용노동부는 이 자료의 공개범위를 삼성이 직접 정하도록 했다. 보고서 내용 중 무엇이 영업비밀인지는 삼성만 알 수 있다고 했다. 결국 삼성이 보고서 전체가 영업비밀에 해당한다고 하자, 고용노동부는 그 전체를 비공개했다. 삼성에게는 그야말로 꽃놀이 판이었던 셈이다.

법·제도도 문제였다. 반도체 공장에서는 수백 종의 화학제품이 쓰이는데, 그 성분물질의 상당수가 역시 영업비밀로 감추어져 있다. 그리고 공장 내 유독가스 누출 내역을 알 수 있는 「가스 모니터링 시스템 작동 기록」. 삼성은 이를 제출하라는 법원과 고용노동부의 요구를 번번이 거부해 왔고 “1년이 지난 기록은 모두 폐기했다”는 주장도 했다. 이러한 정보들의 공개와 보관을 강제할 법적 수단은 지금도 없다.

“삼성의 자료은폐”, “정부의 조사부실”을 말하기 시작한 법원

결국 소송을 거듭할수록 드러나는 것은 장막에 감추어진 진실이 아니라 그 장막의 크기였다. 삼성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대한민국 정부와 사업장의 안전을 규율하는 법·제도가 함께 어우러져 이 문제의 진상 규명을 어렵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소송 전략을 바꿨다. 질병의 원인을 직접 규명하기 보다는 ‘규명을 어렵게 만드는 사정들’에 주목했다. 삼성과 정부가 무엇을 은폐하는지, 산보연 등의 역학조사가 얼마나 엉터리인지를 낱낱이 밝혔고, 그러한 사정들을 규범적으로 평가해 달라고 재판부에 말했다. 물론 질병의 ‘의학적 원인’, 업무와 질병의 ‘과학적 관련성’을 규명하려는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턱턱’ 가로막히는 장벽들을 고스란히 공개하고 고발했다.

마침내 법원이 화답했다. 점잖은 말투로 “근로자에게 책임없는 사유로 사실관계가 규명되지 않은 사정들”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소송에서 회사와 정부가 은폐한 자료들, 이를테면 “가스 모니터링 시스템 작동 내역”, “작업환경측정 자료”, “유해화학물질 현황”, “안전검사 실시 현황”, “보호구 지급 현황” 등이 여러 사건의 판결문에 나열되었다.

▲ 2015년 12월22일 '삼성직업병문제의 올바른 해결을 촉구하는 노숙농성' 77일차를 맞은 날, 방진복을 입은 221명의 참가자들은 삼성전자 강남사옥 일대를 돌며 직업병 재발방지대책과 배제없는 보상, 진정어린 사과를 촉구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2015년 12월22일 '삼성직업병문제의 올바른 해결을 촉구하는 노숙농성' 77일차를 맞은 날, 방진복을 입은 221명의 참가자들은 삼성전자 강남사옥 일대를 돌며 직업병 재발방지대책과 배제없는 보상, 진정어린 사과를 촉구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법원은 정부 측 조사결과의 문제점도 구체적으로 짚었다. 예컨대 최근 법원은 유방암 피해자의 업무환경에 대한 산보연의 조사 결과를 “매우 부당한 처사”라고 비판하며, “근로복지공단은 문제가 있는 역학조사를 근거로 처분한 잘못이 있다”라고 했다.

그러한 사정들이 “근로자에게 유리한 간접사실”로 해석되면서 승소 판결이 이어졌다. 올해 2월부터 연이어 나온 다섯 건의 판결에서 모두 이겼다.

그리고 올해 8월, 대법원에서 기념비적 판결이 나왔다. 삼성LCD 희귀질환(다발성경화증) 피해자의 산재소송에서 대법원은 “산업재해보상보험이 첨단산업분야 근로자를 보호해야할 현실적ㆍ규범적 이유”를 말했다. 작업환경이 빠르게 변할 뿐 아니라 영업비밀이 많고, 관계 법령, 안전대책, 교육 등도 부실하여 직업병 발병 위험을 규명하고 예방하는 것이 모두 어렵다는 취지다. 그래서 더욱 산재보험제도의 목적에 충실해야 하고, 따라서 “사업주의 협조 거부 또는 관련 행정청의 조사 거부나 지연 등으로 작업환경상 유해요소를 특정할 수 없었다면” 이는 “근로자에게 유리한 간접사실로 고려 할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법원은 이 사건에서 삼성과 정부가 무엇을 은폐하였고, 정부 측 조사가 얼마나 부실하였는지 구체적으로 지적했다. 특히 산보연 역학조사에 대해서는 “근로자가 유해물질에 노출된 수준을 객관적으로 확인ㆍ측정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반도체 직업병 문제를 대하는 법원의 태도에 전환점이 생겼다. 이 문제를 처음 세상에 알린 고 황유미 씨가 세상을 떠난지 10년만이다.

대한민국 정부도 사과하라

반도체 산업은 오랜 시간 국가 경제를 이끌어왔다. 지난 20년간 대한민국 수출품 통계에서 반도체는 거의 매년 1위였다. 실제 직업병 피해자들은 ‘애국한다’는 마음과 자부심으로 과중한 업무와 스트레스를 감내했다 말한다. 이 나라가 빚을 진 노동자들이다. 그들이 너무 많이 병들고 죽었다. 10년째 계속되고 있는 문제다. 지난 달에도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했던 이혜정 님이 온몸이 딱딱하게 굳는 병(전신성경화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 동안 정부가 무엇을 했는지 법원이 말하고 있다. 직업병 예방은커녕 보상조차 소홀했던 정부의 실책과 과오들이 여러 사건에서 켜켜이 쌓여, 결국 대법원 판결문에까지 기록되었다. 단언컨대 대한민국 정부는 반도체 직업병 참사의 공동 가해자였다.

반도체 직업병 피해자들은 지금 삼성을 향해 진정한 사과와 합당한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그 선봉에 여전히 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가 서 있다. 반올림과 함께 삼성 본관 앞에서 노숙농성을 한지 2년이 넘었다. 길 위에서 세 번째 겨울을 맞으려 한다.

하지만 대한민국 정부도 이들에게 사과해야 한다. 그들의 고통을 진심으로 공감하고 위로하는 모습부터 보여야 한다. 그리고 선언해야 한다. 위험이 규명되지 않아도 사전적으로 예방할 것이고, 관련성이 확인되지 않아도 폭넓게 보상하겠다고. 기업의 영업비밀은 결코 노동자의 생명·건강에 우선할 수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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