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시절 이병기 대통령 비서실장이 국정 역사 교과서 찬성 여론을 띄우기 위해 KBS를 통한 홍보를 청와대에서 지시했다는 사실이 공개됐다.

이병기 전 실장이 주재한 2015년 9월30일자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이 전 실장은 “교과서 국정화 성공을 위해 국민을 설득하고 비판 세력을 제어해야 한다”며 “대국민 홍보 강화를 위해 KBS, EBS 등 매체를 활용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박근혜 정부가 공영방송을 바라보는 인식이 어떠한지, 지난 정권에서 KBS 보도 공정성이 왜 끝 모를 추락을 거듭했는지 파악할 수 있는 단서다.

이 무렵 KBS에서 문제가 됐던 보도 가운데 하나는 2015년 10월2일자 KBS 뉴스9 리포트 “교육부 이례적 비난… ‘北 교과서 보는 듯’”이었다.

교육부가 10월2일 기자회견을 통해 일부 검정 교과서에 대해 “마치 북한의 교과서를 보는 느낌”이라고 비난한 것을 보도한 내용이었다. 

지금은 폐지된 KBS 보도 비평 프로그램 ‘KBS뉴스 옴부즈맨’은 2015년 10월25일자 방송을 통해 이 보도를 도마 위에 올렸다. 방송 패널로 참가한 최창근 KBS뉴스 옴부즈맨위원(한·중 언론인포럼 회장)은 ‘정부의 여론전’을 지적하며 “(KBS가) 정부의 일방적인 주장만 담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당시 박재용 KBS 문화부장은 “교육부 기자회견이 앞으로 국정화 전환 발표를 위한 신호탄이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해 3사 가운데 유일하게 당일 메인뉴스에서 리포트로 처리했다”며 “이 기자회견이 갖는 의미를 꿰뚫어 본 것”이라고 ‘자화자찬’했다.

그는 “KBS가 교육부 움직임을 보도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주무 부처의 움직임이 국정화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뉴스 가치를 지닌다는 데 있다”고 주장했다.

▲ 이병기 전 대통령 비서실장. 사진=연합뉴스
▲ 이병기 전 대통령 비서실장. 사진=연합뉴스
이진로 KBS뉴스 옴부즈맨위원(영산대 광고홍보학과 교수)도 “7일자 KBS 리포트를 보면 3분의 2 정도가 교과부 입장이라 국정화 찬성 쪽에 가까운 보도였다. 그러나 일반 시민들과 역사학계, 교육계에서는 반대 의견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박 부장은 “이슈를 제기한 쪽을 중심으로 리포트를 구성하는 경향이 있다”며 “한국사 문제도 정부·여당 측이 먼저 이념 편향성 문제를 제기했다. 문제를 제기한 쪽에 무게 중심이 실린다는 느낌이 들 수 있다”고 해명했다.

보도에 문제가 없다는 KBS 간부 입장이 KBS 전파를 탔지만 실상은 달랐다. KBS 파업뉴스팀 분석을 보면 역사 교과서 국정화 관련 KBS ‘뉴스9’ 보도는 2015년 9월 기준 2건에 불과했던 것이 10월 기준 36건으로 급증했다. 박근혜 정부의 대국민 홍보 움직임과 발을 맞춘 정황으로 보여진다.

당시 교육부를 담당한 이경진 KBS 기자 역시 KBS 파업뉴스팀과의 인터뷰에서 “교과서 내용을 분석하고 학계 및 정부 입장을 모두 다루는 5개 꼭지 정도의 시리즈를 준비했다”며 “방송이 나가기로 한 날 오전 편집회의 전에 발제가 빠졌다”고 밝혔다. 이 기자는 “일선 기자들이 열심히 일하고 취재·발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편집권이 정말 무섭다는 걸 당시 느꼈다”고 덧붙였다.

KBS 편집권은 자의든 타의든 박근혜 정부 편향으로 행사됐다. 박근혜 정부는 KBS를 국정 홍보 도구로 판단했다. KBS 간부는 직접 방송에 나와 정부 편향 보도를 ‘자화자찬’했다. 현재 KBS 기자들은 공영방송의 존재 이유를 곱씹으며 망가진 편집권을 바로 세우기 위해 파업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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