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때만 되면 표심을 자극하는 말과 행동으로 유권자들의 환심을 사다가도, 당선 후에는 군림한다. 일반 국민들이 국회에 보내는 차가운 시선은 이와 같은 일부 국회의원들의 모습 때문이다. 사회적 약자에게 ‘막말’을 하거나 갑질을 하는 것도 모자라 외유성 출장 등으로 맡은 책무를 다 하지 않는 의원들은 일반 국민들에게 정치 혐오를 낳은 것이 현실이다.

22일 국회 정론관에서는 일반 시민들과 박주민, 박재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민소환제를 제정하라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한 시민은 “순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뽑은 그 국회의원들이 아무리 큰 잘못을 해도, 우리는 어쩔 수 없이 4년은 지켜봐야 했고, 그들은 보장된 4년을 누렸다”고 말했다. 이어 “국회의원들이 가진 그 특권을 박탈할 수 있다는 생각은 해보지도 않은 것이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어떤 단체에도 속하지 않은, 평범한 이들 시민들은 온라인 상에서 국회의원 소환제 통과를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였다. 지난 7월13일 시작한 온라인 서명운동은 한 달이 지난 현재까지 약 14만명이 참여하며 큰 호응을 받았다. 이들은 “단체나 조직이 아닌 개인 몇 명이 모여 시작한 운동에 어떤 성과가 있을지 반신반의 했지만, 생각지도 못하게 서명 첫날부터 폭발적인 반응을 보여주셨다”고 말했다.

이들은 기자회견 후 지금까지 받은 국민들의 서명을 국민소환제를 발의한 박주민·박재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전달했다.

▲ 22일 국회 정론관에서는 일반 시민들과 박재호 더불어민주당 의원(가장 왼쪽)과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가장 오른쪽)이 국회의원 국민소환제 제정 촉구를 위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차현아 기자.
▲ 22일 국회 정론관에서는 일반 시민들과 박재호 더불어민주당 의원(가장 왼쪽)과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가장 오른쪽)이 국회의원 국민소환제 제정 촉구를 위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차현아 기자.
국회의원 소환제가 관통하고 있는 문제의식은 선명하다. 국민을 위해 일해야 할, 국민이 직접 뽑은 국회의원들이 책무를 다하지 못했다면 의원직을 국민이 거둬들이는 것도 가능해야 한다는 논리다. 선거 이후에는 사실상 국민이 의원을 감시할 수 없다는 대의 민주주의 한계를 국회의원 소환제로 보완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주민 의원은 “‘국민은 선거날만 주인이고 선거날 이후에는 노예로 돌아간다’는 루소의 말이 있다. 대의제 민주주의를 비판하는데 가장 오래 사용돼 온 말”이라며 “현재 우리나라 선거제도와 정당제도는 이런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좀 더 국민을 생각하고 국민을 제대로 모시는 정치가 필요한 시기에 국회의원 소환법이 통과되면 국회가 제 기능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까지 발의된 국회의원 소환제 관련 법안은 △박주민 민주당 의원 △김병욱 민주당 의원 △황영철 바른정당 의원 등이 대표 발의한 세 개다. 세 법안 모두 현재 국회 소관 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세부적으로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각 법안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헌법에 근거한 국회의원 의무를 소홀히 하고 직무 유기 등 위법한 행위를 한 국회의원이 대상이 되며, 국회의원 임기가 6개월 혹은 1년 미만 남은 경우에는 소환할 수 없다. 세 법안 모두 지역구 의원과 함께 비례대표 국회의원 역시 소환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다만 박주민 의원 안은 다른 법안들과 달리, 소속 지역구 의원이 아닌 다른 지역구 국회의원에 대해서도 소환투표 청구가 가능하다는 점이 특징이다.

국회의원 소환제는 이번 20대 국회에서 처음 거론된 것은 아니다. 역대 국회에서도 국민소환제 관련 법안이 발의 됐지만 매번 통과되지 못하고 자동 폐기됐다. 매번 정치쇄신을 위한 제도개선 논의가 국회에서 있을 때마다 빠지지 않고 거론된 의제 중 하나였지만 논의만 진행되다 결국 흐지부지됐다. 국회가 이 법을 통과시키면 국회의원 직을 내려놓게 될 수 있는 ‘자승자박’ 상황에 빠질 것을 우려한 것 아니냐는 의심은 여기서 나온다.

이번 20대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도 국민소환제가 개혁과제 중 하나로 논의되고 있지만 관련 의원실 관계자들은 통과 가능성을 그리 높게 보고 있지는 않다. 한 관계자는 “지속적으로 법안이 발의되고 논의돼 온 법이고, 지금은 예전보다는 통과 가능성이 높은 상황은 맞지만 여전히 논쟁 지점이 많고 신중하게 검토돼야 하는 법인 것도 맞다”고 말했다.

이 법안을 거론할 때마다 등장하는 대표적인 반대 논리 중 하나는 ‘악용 가능성’이다. 정치인과 정당 간 대립 과정에서 상대 진영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악용될 소지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소환투표가 발동되면 즉시 해당 국회의원의 모든 권한이 정지되기 때문이다.

악용을 막기 위해 국회의원의 소환 기준을 명확히해야 하는 지 여부 역시 논의가 필요한 지점이다. 현재까지 발의된 관련 법률안들은 모두 헌법 46조에 근거한 국회의원의 △청렴의 의무 △양심에 따른 직무 수행 △지위 남용을 통한 이득 및 직위 취득 금지 등 의무를 어겼을 경우를 소환이 가능한 기준으로 설정하고 있다. 여기에 직권을 남용하거나 직무를 유기하는 등 위법·부당한 행위 등도 기준으로 포함했다. 황영철 의원의 안에는 여기에 국회의원의 ‘막말’ 논란도 소환 사유로 규정했다.

다만 2007년 도입돼 운영 중인, 지방자치단체장을 대상으로 한 주민소환제는 소환 사유를 명확히 규정하고 있지 않다. 헌법재판소는 2007년 주민소환제에 소환 이유가 명시되지 않은 것에 대한 위헌 여부 판단으로 “청구사유에 제한을 둘 이유가 없고, 업무의 광범위성이나 입법 기술적인 측면에서 소환사유를 구체적으로 적시하기 쉽지 않”다는 이유를 들기도 했다. 너무 높은 기준과 세밀한 조건들을 규정하면 사실상 제도가 유명무실하게 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은 여기서 나온다.

박주민 의원의 국민소환제안은 다른 의원들 법안과 달리 국민소환투표의 청구요건을 직전 국회의원 총선거의 전국평균투표율의 100분의 15로 규정하고 있다. 이는 다른 법안보다 청구 요건을 낮춰 소환투표 자체의 발동을 다소 쉽게 만든 것이다.

박주민 의원실 관계자는 “소환요건을 정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위법을 저질렀을 때 소환이 가능하도록 한 것이므로 마음에 들지 않는 국회의원을 타겟으로 끌어내리는 방식으로 악용될 가능성은 낮을 것”이라면서도 “주민소환제의 운영에서도 지자체에 문제가 있어도 인원 수나 방법 등의 기준이 너무 높아 발동이 안된다는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이번 법안 마련과정에서는 청구요건) 기준을 다소 낮춘 것”이라고 말했다.

관련 법을 검토한 전문가들도 이 법안이 마련된다고 해서 무분별하게 국회의원을 끌어내리는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소환 투표 청구 사유가 규정되지 않은 지방자치단체장에 대한 주민소환제도조차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실제 소환이라는 결과로 이어진 적이 없다. 국회의원 소환제 역시 소환 투표에 부쳐지기까지 그 방식과 내용을 두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등 관계기관들의 검토 등 여러 ‘통과’ 절차를 두고 있다.

2007년에 도입된 이래 지방자치단체장에 대한 주민소환제가 실시된 다섯 곳(하남시, 제주특별자치도지사, 과천시, 삼척시, 구례군수)의 소환투표는 모두 실제 소환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인구 수가 적은 군 단위의 기초단체장 소환투표는 현실적으로 필요한 유효투표수를 충족시키기도 어렵다는 한계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법의 취지가 무색해진 건 악용 사례보다도, 너무 높은 소환제 발동 기준이라는 지적이다.

국민소환제를 둘러싼 또 다른 논란은 위헌 가능성이다. 일단 소환제 관련 법안을 마련한 의원실 관계자들은 헌법 개정이 아닌 법안을 마련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헌법학자들 중에 법안의 통과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보는 의견도 적지 않다. 헌법에 따르면 국회의원 임기는 4년이며, 국회의원은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과 표결에 대해 국회 외에서는 책임지지 않는다. 사실상 국회의원의 임기와 활동에 대한 보장으로 해석할 수 있는 조항이다. 따라서 국민소환제의 법안 통과 이전에 먼저 개헌 사항에 포함시켜 논의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헌법학자인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통화에서 “헌법에는 국회의원의 임기를 규정한 조항이 있는데 이 헌법 조항에 따르면 국회의원은 기본적으로 임기가 4년으로 보장된다는 것”이라며 “국회의원도 당선된 이후 선거법 위반으로 벌금 100만원 이상 선고를 받으면 당선이 취소될 수 있지만, 이런 예외들은 이미 다 근거를 두고 마련된 조항이다. (소환제 역시) 임기 만료 전에 (소환제에 따라) 파면할 수 있다는 근거 조항이 헌법에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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