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증원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을 둘러싼 여야의 기싸움이 팽팽하다. 문재인 대통령의 협조 요청에도 야당은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을 기세다. 하지만 정작 자신들이 과거에 내놓았던 공무원 예산 관련 입장을 뒤집고 추경 예산에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2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정부조직법에서 여당은 양보할만큼 했다, 추경안에 야당이 묶은 부당한 족쇄도 야당이 풀어주실 것을 엄중하게 당부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야당이 오늘도 반대로 일관한다면 문재인 정부가 날기 전에 날개를 부러뜨릴 작정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고 강하게 질타했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도 20일 민주당 정책조정회의에서 김동철 국민의당 원내대표를 향해 “저랑 통화할 때 ‘추경에선 안되지만 목적예비비로 (공무원 증원 예산을) 하라’고 말한 바 있다”며 “지금 와서 뒤집으면 어쩌자는 거냐. 정치 그렇게 하시면 안된다”고 질타했다.

민주당이 20일 야당을 향해 강경한 발언을 이어가는 이유는 지난 19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간사를 맡고 있는 국민의당 황주홍 의원과 바른정당 홍철호 의원, 자유한국당 김도읍 의원 등이 공무원 증원 계획에 반대 목소리를 내고 나섰기 때문이다.

19일은 여야 당 대표와 문재인 대통령 간 오찬 회동 자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야당 대표들에게 추경 예산 처리를 도와달라고도 언급했던 날이기도 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오찬 회동을 통해 “추경을 좀 도와달라”며 “(국회 논의가) 99% 진전된 것 아니냐. 남은 1%를 채워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왼쪽)와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 사진=노컷뉴스
▲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왼쪽)와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 사진=노컷뉴스
지금까지 야당의 추경안 처리 반대에 아예 근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1조2000억원 규모로 편성된 추경안 중 총 80억원으로 편성된 공무원 증원예산이 핵심인데, 국민의당은 이미 올해 본예산에 인건비 명목으로 편성된 500억원의 예비비로도 충분히 공무원 증원을 위한 예산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본예산은 지난해 여야 합의를 통해 국회에서 통과된 예산이다.

지난 6일 이용호 국민의당 정책위의장은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국민의당의 추경 관련 입장을 설명한 바 있다. 정부와 여당은 이번 추경에 포함된 80억원이 올해 채용될 공무원들의 채용 부대비용과 훈련 등에 필요한 예산이라고 설명하지만, 국민의당은 본예산에 편성된 500억원이 공공부문 인력증원 관련비용의 명목이므로 사실상 정부의 추경안과 같은 예산이라고 지적했다. 공공부문 인력 충원을 위해 추경이 시급하다는 정부여당의 주장은 틀렸으며 사실상 ‘급조된 추경’이라는 주장이었다.

예결위 소속 야당 의원들은 급하게 추경예산을 통해 공무원을 늘리게 되면, 향후 이들에 대한 유지 비용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19일 야3당 예결위 간사들이 기자회견에서 “부처 별로 5년간 중장기 수요계획을 국회에 제출해야 한다”고 밝힌 이유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이 일반공무원까지 모두 증원에 찬성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던 발언을 구체적으로 뒷받침할 정책을 내놓을 것도 요구했다.

그러나 정작 이날 야3당은 국민의당의 주장을 받아들여 본예산 예비비 500억원을 공공부문 일자리 늘리기 예산으로 사용하자는 더불어민주당의 제안을 거절했다. 김도읍 자유한국당 의원은 19일 기자회견 직후 기자들과 만나 “80억원이든 목적예비비 500억원이든 결과는 공무원 17만4000명을 추가로 확대하겠다는 것”이라며 “목적예비비를 사용해 공무원 조직을 17만4000명을 추가확대하는 건 근본적으로 반대하는 게 야3당의 확고한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합리적인 근거를 가지고 추경 예산을 반대했다는 야당의 본 취지가 퇴색했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더불어민주당이 20일 일제히 야3당의 추경 반대목소리에 강하게 반발하고 나선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특히 500억원의 예비비가 포함된 본예산 수정안은 김동철 국민의당 원내대표가 4명의 발의자 중 한 명으로 참여해, 여야 합의를 통해 이미 본회의에서 통과된 것이라는 점에서 야당이 이를 반대할 근거는 빈약하다. 새누리당은 당시 “공시생 내년에는 1만명 더 합격, 예산 500억 추가 확보“라는 현수막을 붙이기도 했다. 

김태년 의원은 “박근혜 정부가 공약한 공공부문 일자리가 안 지켜져서 예산을 확보하자고 얘기했고, 당시 정부여당이 반대했다. 그래서 목적예비비로 (500억원을) 편성했던 것”이라며 지난해 12월 500억원 예비비가 본예산에 편성됐던 사연을 설명하면서 “(목적예비비 편성에 대해) 자기들 실적이라고 홍보 다했다. 예산은 법률이어서 지킬 의무가 있다. 지금 와서 다른 소리 하면 안된다”고 비판했다.

20일 열린 국민의당 의원총회에서는 추경합의와 관련해 다소 이견이 표출되는 모습도 보였다. 이용호 국민의당 의원은 “이 부분(목적예비비 500억원) 관련해서 지나치게 오래 끄는 것은 자칫 국정 발목 잡는 것으로 오해 받을 가능성이 있다”며 “협상과 합의에도 골든타임이 있다. 여야가 늦지 않게 추경도 합의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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