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씨 증거조작사건으로 벼랑 끝까지 몰린 국민의당은 재기에 성공할까. 대선의 최종 책임자인 안철수 대표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 지지율이 바닥까지 떨어진 국민의당 내부에서는 여전히 혁신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하지만 ‘증거조작’ 파문 이후 국민 앞에 책임있는 사과와 뼈를 깎는 개혁 없이는 당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안철수 없으면 국민의당 재기할까?

국민의당이 혁신을 외치고 있는 가운데 가장 많이 언급되는 인물은 결국 ‘안철수’다. 지난 10일 국민의당 대선평가위원회가 주최한 토론회에서도 공공연하게 안철수 전 대표의 정계은퇴가 거론됐다.

이날 토론회 참석자로 참석한 강경태 신라대 국제학부 교수는 “지금 팔이 썩어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몸이 아프더라도, 그 팔을 자를 수 밖에 없다”며 “국민의당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결자해지’로 안철수 전 대표가 정계를 은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동일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역시 “선거 패인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후보의 상품성이 떨어지고 경쟁력이 부족하다는 얘기”라며 “상품이 좋으면 굳이 마케팅을 하지 않아도 잘 팔린다”며 안 전 대표를 지목했다. 국민의당 대선 실패의 가장 큰 책임은 안철수 전 대표에게 있기 때문에 안 전 대표의 책임있는 행동, 즉 정계은퇴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안철수 전 대표는 현재 당 내에서 어떤 직책도 맡고 있지 않다. 심지어 대선 기간에 의원직까지 내려놓았기 때문에 사실상 국민의당 현 상황에 대해 안 전 대표가 행동으로서 책임을 져야 한다면 방법은 정계은퇴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계은퇴를 하지 않으면 안 전 대표는 말로만 사과를 해야 한다. 지난해 국민의당 리베이트 사건에서는 빠르게 사과하고 대표직 사퇴까지 했지만 성급하게 빠져나가는 것 아니냐며 오히려 역풍을 맞기도 했다.

안철수 전 대표 책임론은 전당대회를 앞둔 시점에서 당 지도부 차원의 개혁 방향을 둘러싼 논쟁 중 가장 핵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당은 탄생부터 ‘안철수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왔던 만큼, 기존과 다른 혁신의 방향을 보여주려면 안철수의 색채를 빼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안철수 전 대표가 정계은퇴를 하지 않으면 국민의당 지지율이 계속 지금과 같을 것”이라며 “이번 사건도 국민의당 리베이트 사건과 비슷하다.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 없이 적당히 미봉책으로 끝난다면 실망감이 굳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안철수당으로서의 이미지가 강한 정당인만큼 새롭게 거듭나려면 안철수 전 대표와 국민의당이 분리되는 것이 가장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이다.

다만 ‘안철수 색깔’을 지우는 것만이 국민의당 혁신의 전부라고 볼 수는 없다. 그동안 안철수 전 대표 이미지에 기대어 총선과 대선을 치르는 데 급급했을 뿐 정작 당 체계를 제대로 세우는 일에 소홀했던 것이 국민의당의 패착이었다면, 안 전 대표를 대체할 리더십을 찾는 게 진짜 관건이지 책임만 묻는 것은 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박시영 윈지코리아컨설팅 부대표는 “안철수 전 대표를 딛고 새로운 국민의당의 모습으로 뭔가를 만들어내는 것이 핵심이지, 안 전 대표가 정계은퇴를 한다고 해서 다른 구심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안 전 대표를 제외하고 유력 대선주자가 있는 것도 아니”라고 지적했다.

박 부대표는 “내부에서 새로운 리더십을 채워야 한다. 이후 외부에서 참신한 인사를 영입해 선대위원장을 맡기는 등을 통해 최소한의 도약부터 해나가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사진=노컷뉴스
▲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사진=노컷뉴스
국민의당, 어떤 혁신의 길로

가장 많이 거론된 국민의당의 또 다른 문제점은 당내 시스템 부실이다. 11일 오전 당 대표 출마선언을 한 정동영 의원은 기자간담회에서 “지난 1년6개월 동안 국민의당은 정상체제보다 비대위 기간이 더 길었다”며 “비정상적인 운영 속에 이유미씨 사태와 같은 불행이 은폐돼 있었다”고 꼬집었다. 지난 10일 국민의당 대선평가위원회 주최 토론회에서도 국민의당 대선 참패와 이유미씨 조작사건의 배경에 당이 조직적 무능력 상태였다는 점이 지적된 바 있다.

정동영 의원은 국민의당 위기를 타파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보수 야당도 포함한 정책 연대 시나리오도 꺼냈다. “민주당 뿐만 아니라 바른정당, 자유한국당의 극우세력과 수구세력을 뺀 나머지 분들과 이런 청산과 개혁에 힘을 합치는 것이 맞다”는 것이다. 정 의원은 다른 당과의 연대를 통해서라도 야당으로서의 힘을 키워 민주당의 개혁 ‘경쟁자’로 자리매김을 하는 방향을 국민의당의 갈 길로 제시했다.

정 의원은 이와 함께 2004년 열린우리당 창당 전후 자신이 내걸었던, 속도감있고 역동적인 개혁정치를 주창하며 내세웠던 ‘몽골기병론’을 재차 언급하며 위기에 빠진 당에 활력을 찾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현재 여러 패착과 악수를 거듭한 끝에 국민의당은 내부 분열과 시스템 미흡의 문제가 총체적으로 드러난 상황이다. 국민적 신뢰도를 회복하지 못할 경우 당장 8월27일로 예정된 전당대회에서 어떤 지도부가 선출되든 지지율 반등이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서 전당대회 시점을 미루자는 주장이 나온 이유이기도 하다.

국민의당이 ‘안철수 색 지우기’ 못지 않게 국민 앞에 새로운 이미지로 거듭날 혁신 역량을 끌어모으는 것이 관건이다. 하지만 현재 국민의당 상황에서는 새로운 인물과 이미지를 찾기가 마땅치 않다. 당 대표 출사표를 던진 정동영 의원을 포함해 국민의당 대다수 중진 의원들은 대중들 앞에서 새로운 혁신의 이미지로 다가가기 어렵다.

외적인 요건도 국민의당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 문재인 정부 지지율이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는 상황에서 야당의 비협조적인 태도가 예상만큼 파급력이 없기 때문이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나 강경화 장관 등에 야당이 반대하고 나섰지만 정작 여론은 야당에 우호적이지 않다. 지금은 야당으로서의 정치력을 발휘하려 해도 ‘발목잡기’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형국이다.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은 “야당이 무슨 개혁 경쟁을 하겠냐”며 “결국 문재인 정부 하에서 (야당의) 역할이 자리잡혀 나가면서, 야당 역할에 대한 요구가 생겨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소통과 통합의 행보로 가고 있지만, 일부 측근 중에는 (이와 달리) 과거와 유사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집권여당의 행보(성과)에 국민의당(의 역할)도 달려있다”고 짚었다.

예정된 정치적 이벤트가 없다는 것도 국민의당 혁신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 2018년으로 예정된 지방선거까지 기다리기에는, 내부 이탈을 막고 지지율을 끌어올릴 컨벤션 효과를 노릴 요소가 마땅치 않다. 국민의당 입장에서는 더욱 힘든 상황이다.

▲ 국민의당 김동철 원내대표와 이용호 정책위의장, 이언주 원내수석부대표가 1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자료를 보며 이야기를 하고 있다.사진=노컷뉴스
▲ 국민의당 김동철 원내대표와 이용호 정책위의장, 이언주 원내수석부대표가 1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자료를 보며 이야기를 하고 있다.사진=노컷뉴스
국민의당이 다시 자리매김을 하려면, 외부적 요인이 아닌 내부 혁신 의지를 통해 내년 지방선거를 맞이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일각에선 새 지도부 체제가 시작된 이후부터 올해 연말까지 혁신에 실패할 경우 국민의당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현재 국민의당의 이름을 계속 가져갈 지 발전적으로 해체할지 혹은 다른 당과 합당할 것인지 여부가 남아있다”며 “지지율 회복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면 내년 지방선거를 고려해 볼 때 올 연말에는 (세 가지 시나리오 중에서) 결단을 내야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박시영 부대표도 “국민의당이 힘을 잃고 그 상태로 몇 개월이 흐르면 기초단체장 등 밑에서부터 흔들리기 시작할 것”이라며 “이렇게 무너지면 개별 의원 차원에서 민주당 등으로의 입당이 이어지면서 결과적으로 국민의당이 소멸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연말까지는 힘을 갖고 가겠지만, 연말 전후에도 국민의당 새 지도부가 반동의 모멘텀을 만들지 못하면 내부 탈당 움직임은 막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 당장 국민의당이 할 수 있는 혁신 과제로 정치 전문가들은 ‘사과’를 꼽는다. 국민의당에 대한 여론을 더 싸늘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 이유미 조작사건을 대하는 태도라고 보기 때문이다. 국민의당은 11일 특검법까지 발의하며 문준용씨 특혜채용 건을 계속 이어간다는 방침이지만, 법적·도덕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꼼수라는 비판 여론이 높은 상황이다.

김만흠 원장은 “이유미 사건 그 자체에 대해서도 제대로 사과를 해야 하지만, 당 차원에서 시스템을 정비해 철저히 사과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우선”이라며 “당 내부 정비부터 제대로 해야 한다. 이유미 사태에 대한 책임있는 반성을 하고, 지지부진하게 대응했던 것에 대해 스스로 정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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