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후보의 패색이 짙어가던 5월5일, 국민의당은 문준용씨의 미국 파슨스 스쿨 ‘동료’라는 이의 증언이 담긴 녹취록과 카카오톡 메시지 화면을 공개했다. 당시 국민의당은 녹취록과 메시지가 문재인 후보가 아들 채용 과정에 개입했다는 것을 입증할 자료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모두 조작된 자료였다.

국민의당은 왜 마지막 ‘한방’이 될 수도 있었던 중요한 네거티브를 이유미라는 한 당원에 의존했을까. 율사와 교수 출신 등 각계각층 전문가 출신 의원들이 즐비했는데도 사전에 조작된 증거라는 걸 확인해볼 수 없었던 것일까. 국민의당 주장처럼 이유미의 단독범행으로 결론이 나든 그렇지 않든, 공당으로서 제대로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던 책임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다.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는 국민의당 대선평가위원회 주최로 ‘국민에게 듣는다-국민의당 19대 대선 평가’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후보가 왜 실패했는지, 선대위의 문제는 없었는지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이 쏟아졌다.

국민의당 대선평가위원회에서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정연정 배재대 공공행정학과 교수는 지난 6월13일 국민의당 지역위원장 246명 중 118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일부 공개했다. 현재 국민의당은 대선평가위원회를 통해 지난 대선결과를 복기하고 있다. 대선평가위원회는 오는 7월 말 조사활동을 완료하고 8월 중순 경 보고서를 발간할 예정이다.

설문조사 결과 이번 대선에 대한 부정적 평가는 전체 응답자의 70%가 넘었으며, 긍정적 평가는 22%에 그쳤다.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이유 중에는 선대위의 조직적 운영의 실패를 지적하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설문조사 기타 응답 가운데 “실력보다는 연줄로 선대위가 구성된 것 같다”는 의견도 나왔으며 “지역위원장이지만 선대위가 뭐 하는지 모르겠다”는 의견도 있었다. “박지원 지도부가 부각되는 선대위”라며 “후보가 많이 가려져있다”는 의견도 제시된 것으로 나타났다.

정연정 교수는 “이번 조사과정에서 ‘국민의당 선거 과정이 폐쇄적이었다’는 평가가 상당히 많다”며 “후보 측근들의 사당화 유혹에 빠질 수 밖에 없는데 이를 견제하는 것이 당이다. 그러나 공당이 실제로 견제하고 걸러지는 장치가 작동하지 않았다. 이번 대선 동안 걸러져야 할 것들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 국민의당의 큰 책임이다. 조직적 무능력 상태에서 선거가 치러졌다는 느낌”이라고 지적했다.

국민의당 지역위원장들 중에는 지난 대선에서 진보와 보수 간 양강구도가 아닌 다자간 구도가 안철수 후보에게 불리했다고 보는 의견이 더 많았다. 정당연합이든 선거를 위한 연대를 하는 것이 맞았다고 보는 의견이 60% 이상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특히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와의 연대는 끝까지 했어야 한다고 보는 의견이 다수였고, 최소한 친문·친박 이외의 반패권 연대 정도는 있어야 했다는 게 다수 지역위원장들 의견이었다.

안철수 후보가 내건 ‘미래’, ‘4차 산업혁명’ 등의 메시지에 대해서는 응답자의 57%가 부정적인 의견을 제시했다. 다만 40% 정도의 긍정적인 의견도 있어, 국민의당 내부에서는 안철수 후보의 메시지에 대해 긍정과 부정의 의견이 압도적인 차이를 보이지는 않는 것으로 풀이된다.

▲ 안철수 국민의당 전 상임공동대표. 사진=민중의소리
▲ 안철수 국민의당 전 상임공동대표. 사진=민중의소리
다만 안철수 후보에 대한 외부 전문가들의 의견은 다소 달랐다. 안철수 후보가 내걸었던 ‘미래’라는 이미지가 너무 추상적이었다는 것이다. 안철수 후보 개인에 대해 대선 당시 보여준 모습은 사회 문제에 명쾌한 입장을 내놓는 호소력이 짙은 정치인이 아닌 전문가 이미지에 그쳤다는 지적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왔다. 진보와 보수 사이에서 ‘중도’, ‘미래’ 등의 이미지를 내세웠던 안철수 후보에게, 촛불 민심을 받들어 확실한 정권교체를 해달라는 요구가 높았던 유권자 입장에선 불안해보일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막판에 홍준표 당시 자유한국당 후보가 보수 진영의 소구력을 높여가는 과정에서, 안철수 후보는 정작 이와 차별화되는 전략을 취하는 대신 보수 진영을 의식하며 ‘안보’ 이미지를 내세웠던 것도 패착으로 지적됐다. 안철수 후보가 결과적으로 양쪽 사이에서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존재감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안철수의 메시지와 정책은 고용노동 학자들의 격차 문제에 대한 진단과 대안을 집약하긴 했지만, 이를 실현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누구와 혹은 무엇과 싸울 것인지를 밝히지 않았다. 단지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도덕적 당위만 말했을 뿐이다.”(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

“국민의 변화에 대한 열망을 껴안지 못했다. 촛불 민심의 자장권에서 치러진 선거였는데 이에 대한 고려가 소홀했다. 국민은 ‘청산’을 원했는데 그에 대한 답을 내놓는데 주저하는 모습이었다. 왜 그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4차 산업혁명’에 매달렸는지? (...) 정체성의 모호함 속에서 시간이 갈수록 ‘보수후보’ ‘안보후보’로 각인이 된 결과 진보-중도층에서 현저한 열세에 직면했고, 안 후보의 승산이 없어지자 보수층도 대거 홍준표 후보에게로 이동하는 상황이 초래됐다.”(유창선 정치평론가)

“안철수는 인간과 사회, 역사에 대한 이해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안철수는 연구자, 한발 더 나아가 사업가와 교육자의 적성을 가진 인물이다. 폄하가 아니라 누구나 적재적소가 있지 않나. 스마트폰으로 망치질을 하면 되겠나. 안철수는 스마트폰 같은 존재다. 스마트폰을 망치로 쓰고 있는 게 안철수 후보의 상황이다.”(노동일 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물론 안철수 후보 뿐만 아니라 안 후보를 적극 도와야 할 역할을 맡았던 당 선대위 문제도 있었다. 국민의당 지역위원장들 설문조사 결과에서 엿볼 수 있듯, 대선을 앞둔 국민의당 선대위는 마치 ‘모래알’처럼 흩어져 조직적으로 움직이지 못했다는 것이다.

유창선 정치평론가는 “선거가 일사분란하게 통제가 돼야 하는데 폐쇄적으로 선거가 치러졌다는 건, 후보 입장에서는 당이 뒷받침을 못하니까 결국 자기 중심으로 (선거를) 치른 것”이라며 “국민의당은 후보 따로, 당 따로였다. 이런 모든 것들이 벼락치기한 정당의 모습”이라고 비판했다.

대선 당시 국민의당 반장을 맡았던 김정윤 SBS 기자도 “5월 초 국민의당 의원분들은 내 지역만 챙기면 되지 않나, 이 큰 선거에서 이기던 지던 또 하나의 지역선거를 한다는 그런 느낌이었다. 우리 지역만 지키고 온다는 분위기였다”며 “솔직히 선대위가 모래알 같다는 느낌이었다. 선대위 모인 사람도 출신 계파 다르고, 생각 다르고 해서 여기저기 얘기를 듣고 난 후에 이를 종합하는 고충이 있었다”고 회상했다.

특히 이유미 제보조작 건을 당 선대위 차원에서 인지하지 못했다는 것과 관련해 쉽게 납득이 어렵다는 지적도 나왔다. 노동일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조작 사실을 지도부가 전혀 몰랐고 오직 이유미 혼자 꾸민 일이냐. 그게 당이냐”며 강하게 질타했다. 노 교수는 또한 “몰랐다면 면죄부는 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게 무슨 대선 치르는 조직이라고 할 수 있나. 처절한 반성을 할 일이지 당원 혼자 꾸민 일이고 추미애 대표가 가이드라인 줬다며 이렇게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이날 참석한 다수의 토론자들은 국민의당이 현재는 위태로운 상황이지만 진보와 보수라는 양대 이념 구도와 탈지역 구도를 만들, 한국 정치에서 소중한 존재라는 점도 인정했다. 지금은 대선 참패와 이유미 조작사건 등으로 힘든 시기를 겪고 있지만, 쇄신을 통해 양대 정당 사이에서 대안 정치세력으로서 존재가치를 얻어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만 이를 위해 모호한 정체성을 걷어내고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얻어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노동일 교수는 “국민의당은 존재할 가치가 있다. 다당제 구도는 매우 소중하며 양당 구도로 돌아가서는 안된다”며 “이번 이유미 사건이 마무리되면 다당제 구도가 한국 정치에서 정착할 수 있도록 주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정윤 기자도 “솔직히 안철수와 국민의당이 집권 안한 게 다행이라는 얘기도 나온 상황이다. 그런 불신을 걷어내는, 아래로부터 정치세력으로서의 신뢰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어느 누구를 대변하는 정치세력인지를 명확히 하면서 지금의 모호한 정체성을 쇄신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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